지극히 사적인 낱말들 (3)
아내는 국물과 채소를 좋아한다. 고기도 좋아하지만 식사마다 몇 점 겨우 맛보는 정도. 배도 금방 불러한다. 반대로 나는 완전히 단백질 지방파에 꽤 먹는다. 종류와 요리방법을 막론하고 고기 한 근 정도는 한 끼 식사 반찬으로 다 먹는다. 꼭 고기가 아니라더라도 생선, 두부, 계란, 하다못해 분홍소시지 부침이라도 있어야 식사를 한 듯하다.
해 질 녘이면 ‘뭐 드실?’ ‘식기 전에 빨리 오슈.’라는 카톡이 온다. 신혼 때에 비해 카톡 톤은 많이 담백해졌지만 카드 명세서에는 정육점 결제내역이 많이 추가되어 기름져졌다. 담백한 부위를 좋아하는 아내지만 제육 (나는 3년 정도는 제육만 먹고살 자신이 있다.)을 볶을 때는 기름진 앞다리살이나 삼겹살을 골라 볶아준다.
예측과 통제가 불가한 삶에 지칠 때면 기다려지는 예측가능한 저녁의 루틴. 메인 반찬에 단백질과 지방이 담뿍할 때. 다른 사람은 눈치채기 힘든, 나만 이해할 수 있는 일상의 배려가 느껴질 때면 나는 다정함을 느낀다.
상식 상 충분히 건넬 수 있는 조언이라도 누군가에게는 부담과 압박이 될 수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위로로 이해되는 이야기가 누군가에게는 상처가 될 수 있다. 상대를 이해할수록 우리는 그에게 무해하게 다가갈 수 있다. 그 이해는 단순히 함께한 시간이 아니라 서로에게 마음을 기울인 밀도에 비례한다.
관계의 농도가 짙으려면 호기심과 끈기가 필요하다. 사랑은 운명일까 노력일까. 어릴 적에는 운명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하고 싶었던 것 같다. 원하는 인연이 어긋나거나 기대했던 인연에 실망하는 일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아닌 운명이라는 말이 편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돌아보면 어긋난 인연을 설명하기에 운명이 아니었다는 쉬운 말보다는, 상대에 대한 호기심과 그 호기심을 유지할 끈기가 부족했음이 더 맞다는 생각이 든다.
타인의 사소한 취향을 기억하는 것은, 나만 알고 나만 귀하도록 만들어진 뇌의 배열에 이질적인 타인의 회로를 조금씩 추가해 나가는 일이다. 그에게는 귀하지만 내게는 사소한 것, 내게 귀한 것이 그에게는 사소할 수 있다는 새로운 패턴에 익숙해지려면 인위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그렇게 관계의 고됨을 느낄 때면 서로를 이해하는 과정이 등산과 비슷하다고 느낀다. 등산을 하다 몸이 지치면 ‘황금 같은 휴일에 굳이 왜 사서 이 고생을 하고 있지?’ ‘집에서 누워 넷플릭스나 볼 걸’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힘들다는 것은 그 정도에 비례하여 고대하던 아름다움에 가까워졌다는 의미다. 능선 너머 도시며 강,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풍경을 보다 보면 비로소 이 장면을 위해 그 고됨이 존재했구나 알게 된다.
굳이 함께하지 않아도 되는 서로가 이끌린다. 그러나 이끌림의 설렘, 환상을 깨는 다름의 불편감에 이내 고되 진다. 그럼에도 인내를 잃지 않고 서로를 품는다. 익숙하지 않은 그의 취향을 기억하고, 내 몸에 배게 하는 불편함을 일상으로 하다 보면, 어느새 그 사람의 웃음도 내 몸에 밴다. 그의 웃는 순간에 동조될 때, 익숙지 않은 취향의 어색함과 불편함이 오히려 다른 서로를 하나로 묶어줄 실마리임을 깨닫게 된다. 함께라는 말에 비로소 부끄럽지 않게 되었을 때, 우리는 그 관계만의 다정함을 나누게 된다.
다정함은 두려워 눈치 보는 소심함이나 억지웃음을 짓는 비굴함과는 다르다. 인위적일 순 있지만, 인위적인 호감이나 유익을 구하려는 목적은 아니다. 당신과의 인연을 귀히 여기고 싶다는 다짐, 상처를 주고 싶지 않다는 조심스러움, 서툴거나 오해를 살 수 있어도 그러한 마음이 가득함을 깊이 전하고 싶다는 바람이다.
송이가 큰 꽃을 좋아하는 당신. 무심함으로 당신의 기분을 상하게 했거나, 상술이 의도한 기념일 같은 특별하지만 대단히 특별하지는 않은 날이면 꽃을 주문해 본다. 나의 퇴근보다 퇴근 시간이 빠른 꽃집 사장님은 ‘잘 준비해 놓을게요.’라는 문자와 함께 문을 열어둔 채 귀가한다. 주인 없는 꽃집의 익숙한 자리에 놓인 다발을 들고 현관을 들어서면 ‘이제는 그만 사들고 와. 진짜 돈 아까워~’ 라 익숙한 핀잔이 돌아온다. 그리고, 그럼에도 다음날에는 화병에 가지런히 당신의 취향에 따라 재배열된 꽃이 놓여 있다. 3일 한정으로 식탁을 밝혀주는, 결혼 전에는 너무도 낯설었던 화병이 더 이상 낯설지 않게 되는 즐거움이 있다.
우리가 서로에게 다정하고 있다는 안온한 기쁨이다.
당신의 허기가 궁금하고, 당신의 흥미가 궁금하다. 당신의 기분을 세심히 살피고 싶다. 원래 둔감하고 표현을 잘하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핑계 뒤에 숨고 싶지 않다. 사소한 이벤트가 낭비며 무의미한 이유를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대신, 비논리적인 작은 사치로 당신을 기쁘게 하고 싶다.
그렇게 사랑한다는 부끄러운 말 대신 ‘잘 잤어?’ ‘오늘은 괜찮았어?’ 라 건네본다. 퇴근할 때 즈음이면 보고 싶어,라는 쑥스러운 말 대신 전하는 ‘뭐 먹고 싶어?’ ‘오늘 오징어가 되게 연해’라는 말을 기다린다.
우리를 구원하는 다정함, 그 크기는 조그맣고 형태는 둥그며 질감은 부드러운 털과 같고 소리는 나직하다.
P.S
그래도 운명은 있는 걸까. 정처 없이 그날 그날 마음 가는 대로 살며 그때 그때 일상의 타임라인을 지키기도 벅찬 극 ‘P’인 나로 하여금, 사소한 취향을 기억하고 싶어 노트에 하나하나 내가 아닌 너의 취향을 쓰게 만드는 당신이라면 운명이라고 할 만할 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