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히 사적인 낱말들 (5)
영화나 소설 속에서처럼 어쩔 수 없는 이별은 많지 않다. 하지 않아도 되는 말이지만 자존심 상 반드시 해야 해서, 지나고 나면 하나도 중요하지 않을 일들이지만 그때는 상대방보다 한참 더 중요해서. 그렇게 대개 이별은 불가항력적인 것들 보다는 ‘어쩔 수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던’ 것들 때문에 일어난다.
만약 이별이 가역적이라면 서로에 대한 배려와 절실함은 없을지도 모른다. 혹 실언으로 관계를 그르쳤다면 그때로 다시 돌아가 돌이킬 수 없는 말을 주워 담으면 그만이므로. 지금 알고 있는 것을 그때도 알 수 있다면 소홀함은 존재할 수 없으므로.
가역성은 안도감을 주지만 소중함을 간과하게 한다. 처음에는 조심스럽고도 충격적이던 불화가 점점 일상이 되는 경험이 반복되면 완전한 결별에 대한 두려움은 무뎌진다. 서로에 대한 실망과 원망이 가득한 상태에서, 헤어지고도 시간이 한참 지나서야 겨우 깨닫게 될 상대의 소중함을 미리 인식하기는 어렵다.
그리하여 연인은 서서히 되돌릴 수 없는 이별에 내몰린다. 그 비가역성을 직면하고서야 우리는 겨우 되돌릴 수 없는 인연의 속성을 진지하게 마주한다.
이는 분명 고통이다. 그러나 그 진지함과 고통을 통해 우리는 정말로 놓쳐서는 안 될 다음의 인연에 한걸음 더 좋은 사람이 되어 다가갈 수 있다.
되돌릴 수 없는 것을 슬퍼하는 이유는 그것을 소유해야 한다는 착각 때문이다. 동안을 갈구하며 무리한 시술을 더한 외모는 아름답다기보다 어색하다. 젊은 날의 업적만을 반복하여 과시하는 것은 우러름 보다는 안쓰러움을 불러일으킨다. 소유는 찰나일 수밖에 없다는 삶의 본질을 받아들이지 못한 이의 애처로움이 그로부터 전해지기 때문이다.
비가역의 냉정함에 대해 철저히 무력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소유가 아니라 되새김이다. 그 해, 그날의 벚꽃 아래에서 아이와 떨어지는 꽃잎을 누가 먼저 잡는지 내기하는 순간은 그때 그 순간, 단 한 번이지만, 그 기억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되새기는 데는 기한과 제한이 없다.
새벽녘 일찍 일어나 어스름하게 뜨는 해 곁에서 책을 보는 여느 아침. 그 부스럭에 선잠이 깬 아이가 눈을 감은 채로 방문을 열고 아빠를 찾는다. 아이를 안고, 마침 소파 위에 있던 담요를 덮고, 아이의 이마 내음을 맡으며 옆에 두었던 책을 다시 집어든다. 삶의 한 장면을 골라 그대로 멈추어야 한다면, 반드시 떠오를 한 장면이다.
이 순간을 영원히 소유하고 싶은 충동, 아이가 언제까지고 아빠를 지금처럼 원해 주기를 바라는 욕심이 가득 일지만 내 좁은 품이 아이 인생의 전부일 수는 없다. 일 년에 한두 번 겨우 떠나는 것이 휴가라면, 열 번 남짓한 휴가를 함께한 후에 아이는 내 품을 좁다 불평하며 떠날 것이다. 삶은 그렇게 짧고, 비가역적인 소중한 순간은 그렇게 찰나다.
이 순간을 평생 내 것으로 둘 수 없으나 단지 아이를 안았던 찰나의 따뜻함을 평생 그리워할 수는 있다. 이 따뜻함이 곧 사라질 것임을 자각하는 것이야말로 곧 사라질 매 순간에 오롯이 몰두할 수 있는 열쇠다.
아이는 나를 떠날 것이고 나는 늙어갈 것이다. 늙어감의 정도에 따라 이 순간에 대한 인식과 느낌, 감동은 제각기 다를 것이다. 나는 되돌릴 수 없는 모든 순간의 감동에 깨어있으려 하며, 잘 그리워하기 위해 모든 순간을 기억하려 한다. 정해진 이별을 준비하며, 되돌릴 수 없는 것을 그리워할 슬픔을 고대한다.
소유로 두지 않아도 그 귀함을 되새길 수 있다면 되돌릴 수 없는 것, 너무도 그립지만 다시 올 수 없는 순간이 존재한다는 것이 그리 허무하지만은 않게 된다.
가역성이 쉽고 포근한 것이라면 비가역성은 냉엄하며 그리운 것이다. 그리움의 농도는 그 돌이킬 수 없는 것이 내게 소중했던 정도에 비례한다. 나는 이를 영원히 소유하지 못함을 슬퍼하는 대신 그저 그리워할 것이라 다짐한다. 그것이 내 곁을 떠날 것이란 사실에 절망하는 대신, 이 짧은 삶에도 그러한 순간이 존재했음을 감사할 것이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이미 지난 되돌릴 것들을 떠올리느라, 되돌릴 수 없는 것이 되어가는 소중함을 또다시 놓치고 있지는 않는지를 되새길 것이다.
우리에게 허락된 것은 늘 곁에 두는 것이 아니라 늘 그리워하는 것이다. 산과 바다를 그리워하고 때로 찾을 때면 늘 나를 받아준다 하더라도, 그것들이 내 것은 아닌 원리와 같다. 내가 사랑하는 것들이 모두 내 것일 수는 없어도, 한때 깃들었던 순간의 기억을 사랑할 수는 있다.
나는 가역적인 것들이 주는 안도를 좋아하지만, 비가역적인 것들을 사랑한다.
P.S
아내의 생일 선물로 편지와 함께 사진이 프린팅 되는 케이크를 준비했다. 처음으로 카톡 프사를 함께하는 사진으로 바꿨던 날의 사진을 골랐다. 그때 우리의 젊음을 되돌릴 수는 없기에 젊은 우리의 아름다움은 해가갈 수록 배가된다. 그런데, 되돌릴 수 없는 그때를 떠올리며 바라보는 아내는 또한 그때 보다 더 아름답다.
나는 아직도 충분히 아내를 사랑하지 못해 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