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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대로 되지 않는 사람 사이의 관계로 힘이 듭니다.

두두의 마음 편지

by 아는 정신과 의사

안녕하세요, 여러 포스트를 읽다가 선생님의 글들이 인상 깊어 여기까지 오게 된 독자입니다.


저는 대인관계, 의사소통에 관한 고민이 있습니다...


친한 친구, 혹은 연인과 함께 하다보면, 마음이 상할 때가 있습니다. 보통 저의 힘든 마음을 털어놓을 때 발생하는 일입니다. 충고, 조언, 평가 보다는 위로와 지지를 바라고 털어놓지만, 대게 충고나 조언, 평가가 돌아오게 됩니다. 예전에는 저를 이해해주지 않는 가까운 사람에게 너무 서운하고, 가슴 아프고, 정말 많이 슬펐습니다.


그러면서 요즘은 선생님의 글이나 상담을 통해 나를 생각하는 마음에서 충고, 조언, 평가를 하는 것이라는 것까지 이해한다고, 감사하네.라고 생각을 하려하고, 그렇게 생각 될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리고 나서가 문제입니다.... 저는 그렇게 이해를 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이해를 못한 걸까요... 무조건 상대와 그때에 대해 이야기를 해야 직성이 풀립니다... 그 때, 제가 어떤 이유로 기분이 나빴는지를 이야기하고, 사과를 받고 싶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하지만, 왜 마음이 상했는지 상대는 이해 못 할 때가 있기도 하고, 잘못된 것을 말하면 고쳐야 되는 것 아니냐고 화를 내기도 하고, 계속 이런 상황이 반복되다가 대화가 안 통한다며 이별을 맞기도 했습니다.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습니다. 억울함? 슬픔? 서러움 마음이 많이 들고, 점점 대화를 하기가, 솔직하기가 어려워지고 눈치를 많이 보게 됩니다. 무슨 말을 해야할지, 어떻게 반응해야할지, 모르겠습니다.


저에게 가까운 사람들이니 잘 지내고 싶기도 하고, 제 마음을 털어놓고 싶기도 한데, 매번 문제가 생기니 너무 힘이 듭니다. 어떤 글을 보고 사랑받고 싶은 마음에, 떠나갈까봐 무서운 마음에 그러는 걸까 싶기도 합니다. 선생님, 그러면 친구 중 정말 가까운 친구라는 것도 없고, 연인도 제가 생각하는 의미가 아니고 그런걸까요...? 친구, 연인, 가족 다 다른 관계라는 이야기도 들었었는데, 첫 만남 등으로 인해 다른 것은 알겠지만, 감정을 소통하는 데에서 다른 걸 모르겠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무엇이 도움이 될까요... 조언을부탁드립니다.





두두의 마음 편지)



안녕하세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이두형입니다.


누구에게나 늘 어려운 게 인간관계가 아닐까 합니다. 어쩌면 우리가 경험하는 마음의 어려움이란, 관계에 그 뿌리를 두고 있는 지도 모릅니다. 홀로 살아갈 수 없고, 관계 속에서 스스로의 정체성을 찾는 인간이기에 이에 대한 고뇌는 어쩌면 숙명일지도 모릅니다.


관계의 문제에 대한 고민을 주셨습니다. 저는 ‘관계의 문제’ 란 단어를, ‘나의 생각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관계’ 로 조금 바꾸어 볼까 합니다.


관계를 어떻게 정의하느냐는 사람마다 모두 다를 것입니다. ‘진정한 관계, 진실한 관계’ 를 들었을 때 떠올리는 관계의 모습도 모두 다를 것이구요. 글을 통해 미루어 보면 질문자님께서는 ‘충고, 조언 보다는 충분히 들어주고 공감해주는 관계, 위로해주는 관계’, ‘표면적이지 않고 속 깊은 이야기까지 솔직히 나눌 수 있는 관계’ 를 진정한 관계로 정의하시는 것 같습니다.


저는 질문자님의 이러한 생각에 상당 부분 동의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러한 정의가 ‘옳은’ 것이냐 하면,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틀렸다는 것이 아니라, 이는 애초에 개인의 가치관에 따르는 문제기 때문에 개개인의 생각에 달린 부분이며, 옳고 그름이란 존재할 수 없는 영역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늘 다른 사람의 관계에 대한 정의에, 그 사람과의 관계를 맞추어야 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타인은 내가 생각하는 것과는 ‘다른 방식’ 으로 관계를 정의하고 있을 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은 늘 염두에 두어야 할 것 같습니다. 예컨대 나는 누군가의 삶에 대해 깊이 관심을 가지고 서로를 이해하는 것이 친밀한 관계라 생각할 수 있지만, 다른 누군가는 친할수록 서로의 프라이버시를 지켜주는 것을 중요히 여길 수도 있겠습니다. 나는 힘든 이야기를 나눌 때면 그저 공감해주고 들어주면 좋겠다고 생각을 할 수도 있지만, 다른 사람은 적극적으로 아픔에 대해 함께 생각해주고 해결책을 함께 고민해 주거나, 때로는 쓴소리를 아끼지 않는 것이 진정한 친구가 할 역할이라 생각하고 있을 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한 가지 짚고 넘어가고 싶은 부분이 있습니다. 혹여나 타인이 나 자신에 대해 좋지 않게 생각하고 있을 까 봐 두려운 마음, 특히 내가 생각한 대로의 친밀한 관계가 이루어지지 않을 때 이러한 생각으로 인한 두려움을 느끼지는 않으신지요? 우리는 누구나 타인에게 인정받고 사랑받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마음이 지나치다 보면 슬픔과 불안의 씨앗이 될 수도 있습니다. 각자의 가치관이 모두 다르기 때문에, 세상 모든 사람에게 인정받고 사랑받을 수 있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전 글에서도 언급한 바 있는데, 세상에 10명의 사람이 있다고 하면 그 중 2명은 나를 매우 좋아할 것이고, 4~5명은 나를 그저 그렇게 생각할 것이며, 적어도 두세 명은 나를 싫어할 것입니다. 누군가와의 관계가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은 내가 잘못되었다는 증거라기보다는, 세상이 이루어진 원리, 각자의 가치관을 가지고 함께 살아가는 인간의 근원적인 숙명에 가깝습니다.


또한 내가 생각하는 대로, 원하는 대로 관계가 이어지는 것을 통해, 누군가가 내게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것 역시 때때로 불필요한 불안과 우울을 유발할 수 있습니다. 앞서 언급한 대로 관계에 대한 가치관과 생각 역시 모두가 다르기 때문에, 내가 생각한 관계의 양상을 비추어 타인의 마음을 짐작하는 것은 맞을 수도 있지만 틀릴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생각과 다르게 관계가 흘러갈 때 이에 대해 상대방과 끝까지 이야기를 나누고 납득하고 싶은 마음에서도, 어쩌면 상대방이 ‘나를 싫어하는 건 아니야, 나를 이상하게 생각하는 것은 아니야’ 라는 마음을 확인하고 싶은 마음, ‘내가 지금 조금 이상해 보일 순 있지만, 깊이 이야기하면 너는 나를 이해하게 될 거야’ 라는 바람이 숨어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 역시 불필요한 오해를 살지도 모릅니다. 상대방은 나를 싫어하거나 이해하지 못한 것이라기 보다, 단지 관계에 대한 생각이나 정의가 달랐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글이 길어졌습니다. 전해드리고 싶은 말씀을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우선 나 스스로 나름대로 내린 관계에 대한 정의를 통해 다른 사람의 마음을 짐작하고, 나의 생각대로 관계가 이뤄지지 않을 때 지나치게 걱정하는 것은 아닌 지를 돌아보시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혹, 누군가가 내게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지고 있다는 느낌이 들 때 지나치게 불안하거나 슬픈 마음을 느끼시는 건 아니신 지를 돌아보시면 좋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사람 사이의 관계에 대해 학문적인 이야기가 아닌 제 나름대로의 생각을 덧붙일까 합니다. 우리는 살아가며, 모두와 깊은 마음을 나누기에는 지나치게 많은 사람들과 관계를 맺게 됩니다. 어찌 보면 많은 사람들과는 겉돌 수밖에는 없겠고, 그로 인해 공허감이 느껴지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살아가다 보면 가족이든 친구든 연인이든, 깊은 마음을 나누게 될 누군가를 만나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 마음을 나누는 형태는 내가 상상하고 정의 내려왔던 모양과는 다를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렇게 이루어지는, 내 생각과는 다를 수도 있는, 몇 안되는 깊은 마음의 나눔이 우리를 위로하고 또 살아가게 하는 것 같습니다.


아무쪼록 도움이 되셨길 바랍니다. 작은 행복이 깃드시는 한 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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