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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교를 하다 보면, 스스로가 자꾸만 부족해 보여요.

두두의 마음 편지

by 아는 정신과 의사

안녕하세요, 저도 고민이 있어서 댓글 달아봅니다. 제 고민은 행복을 잘 느끼지 못하는 겁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과 자꾸 비교하게 되구요.


나이는 꽤 많은데 아직 취업을 못한 상태입니다. 저보다 6살 어린 동생은 이번에 대기업에 취업을 했구요. 정말 축하할 일이지만 축하함과 동시에 질투심도 생기고, 마음이 불편합니다. 그 이유는 아무래도 제가 능력이 없어서 회사에 못들어가는 것 같이 느껴지기 떄문입니다. 그 전에 회사도 2번 정도 다녔었는데, 두 번 다 3개월정도로 짧게 다니고 그만두게되었습니다. 아무래도 제 능력의 부족인 것 같아서 그만두게 되는 상황이 생기다보니, 마지막 퇴사 이후로 1년동안 제대로 된 일을 구하지 못했어요. 그래서 우울증처럼 자꾸 안좋은 생각만 들고요.


해결해야 하는 것도 알고, 제가 지원서를 넣어야 하는 것도 알고, 제 인생인 것도 알겠는데 자꾸 미루게 되고, 막상 자기소개서를 쓰다가도 회사에 들어가서 또 적응을 못할 것 같아 두려운 마음이 듭니다. 그러면 또 미루고, 딴 짓을 하다가 하루가 그렇게 가버립니다.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르겠어서 고민을 올립니다. 약의 도움을 받으면 좀 괜찮아질까요?





두두의 마음 편지)


안녕하세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이두형입니다.


그저 살아가기에도 버거운 세상인데, 맞추어야 할 기준마저 참 많은 세상입니다. ‘이 나이에는 이 정도는 자리 잡아야 해’ ‘이 정도는 되어야 한 사람 몫은 하는 거야’... 그런데 그런 기준들을 잘 들여다보면 웬만한 사람들이 쉽게 만족시키기 어려운 정도인 경우가 많습니다. 평균을 가장한 판타지가 오고 가며 평범한 대다수의 삶을 ‘평균 이하’로 호도합니다. sns와 1인 미디어의 발달은 이러한 세태를 가중시킵니다. 과시를 위해 성공하려 하고, 성공을 과시하며 안도합니다. 아니, 어쩌면 인간의 마음 안에 내재된 과시욕을 점점 날것 그대로 드러내는 시대가 되고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이러한 세태가 틀렸다, 이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은 아닙니다. 다만 그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의 마음에 대해 이야기해 보고 싶습니다. 나의 삶은 세상 어느 누구와도 같지 않고,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모두 각자의 속도와 방향을 따라 살아갑니다. 아무리 좋고 매력적인 방향이라도 나의 속도보다 너무 빠르다면 따라가다가 이내 지쳐버릴 것이고, 적당한 속도라도 내가 원치 않는 방향이라면, 이를 향하는 나는 늘 ‘이 방향이 맞을 까?’ 고민하고 또 공허할 것입니다.


남들은 잘 알아주지 않지만, 나 자신은 지금까지의 내 삶을 깊이 잘 알고 있습니다. 남들의 기준으로 볼 때는 미흡해 보이는 부분이 있을 지라도, 삶의 과정, 또 선택의 기로에서 내가 얼마나 고민했었고 또 노력했는지를 스스로는 잘 알고 있습니다. 겉으로는 부족하고 서툴러 보일 지라도, 나는 나만의 속도와 방향으로 나아가는 중입니다.


그래서 우선 그 마음, 내 삶을 돌아봐 주시고 인정해주시면 좋겠습니다. 무조건 있는 그대로의 나 자신도 괜찮다는 공허한 위로를 드리고 싶은 것은 아닙니다. 다만 다른 사람이나 세상의 잣대로는 견줄 수 없는, 나만이 알고 있는 삶의 과정을 깊이 이해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왜 그 때 그런 선택을 할 수 밖에 없었는지, 일견 부족해보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얼마나 노력해 왔는 지, 어떤 마음으로 살아왔는지.. 이를 '있는 그대로' 돌아보고, 위로하고 또 수용하다 보면 다음 나아갈 한 걸음이 어렴풋이 보일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요즘 취업이 얼마나 어려운지는 저를 비롯해 모두가 공감할 것입니다. 제가 잘 모르는 상태에서 섣불리 말씀드리긴 어렵습니다만 2차례 구직에 성공하셨다는 것은, 이미 그만한 능력을 사회로부터 인정받은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업무를 매끄럽게 해내는 것, 직장 내 대인관계를 세련되게 이어가는 것이 쉬운 일이라면, 아마 인터넷에 그토록 많은 직장 스트레스 글들이 올라오지는 않을 것 같아요. 글쓴이님께서 특별히 무능하기 때문에 그런 일들을 겪진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또한 질문자님의 질문에서 ‘잘 해내야 한다’ 는 마음이 많이 느껴집니다. 물론 이러한 마음이 잘못되거나 틀린 것은 아니고, 어느 면에서는 성과를 내는 원동력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사회생활이란 수능 시험 처럼 커다란 하나의 일을 오랜 시간 공들여 해 내야 하는 과정이라기 보다는, 끊임없이 이어지는 과제들의 연속일 것입니다. 매 순간마다 완벽하지 못할 까 봐 두려워하고 내가 원했던 기준치에 도달하지 못했을 때 다른 사람들이 나를 좋지 않게 볼 까봐 두려워한다면 심적인 에너지의 소모가 과도할 수 있고 종국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싶게 될 수 있습니다.


미루는 마음 역시, 막상 어떤 일을 시작하면 원했던 만큼의 결과가 주어지지 않을 까봐 미리 두려워할 때 찾아올 수 있습니다. 저는 미리 계획한 바의 80%, 아니 절반만이라도 성취해 낼 수 있다면 대성공이라 생각합니다. 제가 게을러서 일수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삶의 모든 변수를 미리 예측하고 계획에 반영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완전히, 완벽히 해낼 수 있다는 생각이 들기 전 까지 삶의 다음 스텝을 유예하기 보다는, 조금 불완전하고 두려움이 앞서더라도 과감히 다음의 삶을 향해 나아가 보시기를 권해드리고 싶습니다.


삶을 나아가다 보면 또 다시 생각대로 풀리지 않는 일을 마주할 수도 있고 사람들 사이에서 불편함을 겪을 수도 있겠습니다. 그것은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우울, 슬픔, 불안 같은 힘든 감정은 선택이 틀렸다거나 삶이 잘못되었음을 증명하지 않습니다. 등산을 하며 산 정상을 향할 때 느껴지는 피로감처럼, 의미 있는 내 삶을 위한 과정의 일부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산을 오를 때, 단지 정상을 밟으려고만 하는 것이 아니라 오르는 과정에서 스치는 바람, 들꽃, 산세의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처럼, 글쓴이님이 원하시는 삶으로 나아가면서도, 지금 여기에서 누리실 수 있는 사소한 행복들을 놓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글쓴이님께서 적어주신 생각과 감정은 저를 포함하여, 아마 이 시대, 이 사회를 살아가는 이라면 누구나 공감할만한 이야기가 아닐까 합니다. 그래서 글쓴이님의 내일을 더 응원하고 싶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바람이나 계획만큼 완벽한 내일을 맞이하진 못할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그 마음 때문에 그저 이 자리에서 머무는 대신 딱 한 발 만큼만, 지금 이 자리에서 내가 옳다고 믿는 방향, 내가 그리는 삶으로 향하는 한 발자국 만큼만을 내딛기를 이어간다는 마음으로 나아간다면, 지금은 내가 미처 알 지 못하는 어떤 모습의 행복이, 나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나를 적셔가지 않을까 합니다.


짧은 답변으로는 드리고 싶은 모든 말을 적지 못해, 아래에 제가 썼던 글들을 함께 보냅니다. 아무쪼록 도움이 되시기를 바라고, 따뜻한 연말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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