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사연: 자꾸만 부정적이고 우울한 생각을 떠올리고, 이로 인해 스스로 우울해지고, 우울해지면 더욱 그러한 생각이 떠오르는 어려움에 대한 사연)
두두님 댓글을 읽고 눈물이 나더라고요. 가족들에게 말하지 않은 마음을, 얼굴도 뵙지 못한 두두님께 얘기하고 위로받는 제가 이상해서요. 두두님께는 감사하구요, 글로 설명이 안되네요. 제 모습이 못난건지,진짜 우울증이 생긴건지, 여러 복합적인감정입니다
요새, 자꾸 살고싶지않다는 생각을합니다. 남겨진 가족들이 슬퍼 할까봐 힘들어 할까봐. 남들이, 저도 남겨진 가족들도 불쌍하다 여길까봐. 그리고, 지금의 감정은 지나고 나면 순간 이고 앞으로 행복의 순간도 있을꺼 라는 생각으로 하루 하루 살아가고 있거든요. 왜 자꾸 이런 생각들의 늪에 빠지는걸까요?
남편,아이들 지금 제감정을 전혀모릅니다. 남편에게는 같이 하는 일이 서로 힘들다는 걸 알기에 힘든 제 맘을 표현하기가 어렵고, 아이들 에게는 엄마의 지금 맘 상태를 알리고 싶지 않고, 친정 식구들에게는 이런 제 맘을 얘기 하면 걱정하고, 못난 언니가 된듯하여 말하고 싶지않고,
두두님 예전의 저와 지금의 저는 너무 다른 모습입니다. 왜 자꾸 제가 저를 우울의 숲으로 밀어 넣는 걸까요? 댓글을 안주셔도 그냥 이렇게 표현하는 것만으로 조금은 나아집니다. 이렇게 글을 남길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해요.
두두의 마음 편지)
안녕하세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이두형 입니다.
끝이 없는 부정적인 생각의 고리, 이에 대한 몰입, 많은 분들이 힘들어 하는 부분입니다. 글쓴이님이 이상해서, 모자라서, 무언가가 잘못되어서 그런 것이 아닌, 그러한 현상이 일어나는 근본적인 이유에 대해 먼저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삶이 힘들 때, 삶의 이유를 찾지 못할 때, 문득 모든 것이 공허할 때, 자꾸만 후회를 떨칠 수 없을 때 우리는 우울해집니다. 우울한 기분은 점차 우리를 무기력하고 의욕을 잃게 하며, 삶의 소소함에 대한 감동을 무뎌지게 합니다. 이는 커다란 허무를 부르고, 그 허무에 대한 몰입은 다시금 우울의 사이클을 돌리며, 종국에는 죽음에 대한 생각마저 떠올리게 합니다.
'생각'이라는 것은 대개 우리가 해결책을 찾을 때 하는 행동입니다. 즉, 우리는 어떤 문제를 마주했을 때, 그 원인과 과정, 결과에 대해 여러모로 '생각하여' 그 해결 방안을 찾으려 합니다.
그런데, 예컨대 아주 오래된 과거의 상처와 같이, 우리가 어찌할 수 없는 일이나 감정에 대해서도 마음은 반복적으로 생각하여 문제를 해결하려 합니다. 즉 내가 왜 이렇게 우울해 졌는 지, 내 삶이 왜 힘든지, 우리가 왜 이별했어야 하는 지, 어떻게 하면 허무하지 않을 지 ... 생각에 생각을 거듭한다고 해서 뾰족한 답을 얻기 힘든 삶의 근원적인 고민을 마주했을 때 조차 우리는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이는, 앞서 말했던 우울의 사이클을 불러일으키기 쉽습니다.
예를 들어 지나간 이별에 대해 떠올리는 이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시간이 많이 지났고 상대에겐 이미 다른 연인이 생겼음에도, 함께 하던 그 때 내가 좀 더 잘했어야 했는데, 그 때는 그러지 말았어야 했는데 라며 후회와 생각을 반복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그 후회로 인해 밤에 잠도 한숨 자지 못하고, 그로 인해 지쳐 정작 내게 중요한 일들, 새로운 만남도 전혀 하지 못하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요.
본디 해결책을 찾기 위한 것이었던 생각의 패턴이, 내가 원하는 결과로 이어지지 않고 끊임없이 또다른 우울하고 힘든 생각들로 빠져드는 고리가 만들어져, 점차 나는 더욱 우울한 마음이 되고, 더욱 우울하고 힘든 생각, 후회들로 빠져들게 될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힘든 마음, 힘든 생각은 그 자체로는 잘못이 없고,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생각이 문제니, 이걸 해결해야지, 이제는 하지 말아야지!' 라고 생각을 억누르고 힘든 마음을 참아내려 하면, 오히려 그러한 생각과 마음을 더욱 더 유발하기도 합니다.
그 대신, 그러한 생각이나 마음이 떠오를 때는 그저 아, 내 마음속에 또 슬픈 생각이 '떠오르는구나',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드는 구나' 라며 나 자신의 마음을 있는 그대로 바라봐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지금 여기에서, 내게 소중한 것들을 위해 할 수 있는 가장 작은 일을 '실천' 해 보시면 좋겠습니다.
예를 들어 아이가 내게 소중한데 자꾸만 아이에게 못해준 것만 생각나고 미안함과 후회가 가득하다면, 예전해 못해준 것들에 대한 후회를 반복하며 하루를 보내는 대신, 그러한 생각이 드는 것만을 알아차리고 '지금, 여기에서' 아이에게 해 줄 수 있는 가장 작은 정성, 아이가 좋아하는 음식을 해주거나 함께 좋은 곳에서 작은 추억을 만드는 등, 지금 할 수 있는 가장 작은 일, 가장 작은 한걸음을 '행하며' 하루를 보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대단하고 멋진 일을 해야한다는 부담감에 한 번 더 힘들어지시는 것이 아니라 정말 작은 일, 예컨데 그간 우울하고 무력하여 전혀 외출을 하지 못했다면 세수를 하셔도 좋고, 침실을 정리해 보셔도 좋겠습니다. 꼭 차려입고 외출을 하려하기보다는 가볍게 산책을 하거나,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셔도 좋습니다. 생각의 고리로 인해 삶을 정지하는 대신, 아주 사소하고 작은 일일지라도 내게 의미 있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비록 지금 마음이 힘들고, 슬픔과 후회, 허망함에 대한 생각이 자꾸만 떠오를 지라도 그저 이를 알아차리고, 내 삶, 내가 생각하는 가치, 내가 상상하는 행복에 다가가는 일들로 일상을 채워가다 보면, 오랜 우울로 지친 마음이 다시 감동을 시작하게 될 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무쪼록 도움이 되셨기를 바랍니다. 사연을 나눠주셔서 감사드립니다.
p.s.
중년의 우울은 호르몬을 비롯한 여러 생물학적인 기전과도 밀접하게 연관이 있을 수 있고, 오래된 우울 증상 역시 뇌의 생리에 밀접한 영향이 있을 수 있습니다. 약물 치료를 비롯한 생물학적 치료로 기분을 개선하는 것은, 편안한 마음과, 내가 원하는 행복으로 다가가는 데 여러모로 도움을 줄 수 있기에 여건이 되신다면 가까운 정신건강의학과의 진료도 함께 고려해 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