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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고 싶고, 또 살고 싶어요.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두두의 마음 편지

by 아는 정신과 의사

사연)


안녕하세요!

올려주시는 글들 종종 읽고 있습니다.^-^

저는 취준생이며 24살입니다.


어렸을 때부터 오랫동안 동경해왔던 직업을 갖기 위해 공부하고 있습니다. 건강한 신체에 그러한 정신이 깃들어야 해낼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사실 7년여 전쯤 자해를 한 적이 있습니다. 자해를 한 이유는 살기 위해서였습니다. 제 자신에게 죽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알려주기 위해서요. 그 후로도 망각곡선처럼 몇 번이나 죽고 싶었던 시기를 버티며 살아왔습니다. 사람들에게 마음이 아프다는 티를 잘 내지 않아 주변 사람들은 제 지난날들이 어땠는지 모릅니다. 아버지는 저를 철없다 하시고 어머니께서도 제가 순탄한 인생을 살아왔다고 하십니다.


사람은 다 각자의 사정만큼은 아프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제가 유별나게 힘들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근데 수험 기간이 2년 가까이 지나면서 안 좋은 생각이 더 많이 듭니다. 최근에는 연예인들의 자살 사건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 뉴스들을 보면서 한편으론 부럽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아 저들은 이제 편해지겠구나...

선생님은 고통을 견딜수록 강해진다고 생각하시는지요? 저는 너덜너덜해진 것 같습니다. 앞으로 몇 번이나 버틸 수 있을까 종종 생각합니다. 제 한 발은 삶에 다른 쪽은 죽음에서 줄타기를 하고 있는듯합니다. 운이 좋아 오늘을 살고 있구나 싶습니다.


수험생인 만큼 열심히 살려고 하지만 잘 되지가 않습니다. 겉으로 표현하지 않고 맘속으로 애태우며 살아온 탓인지 문제가 표면으로 드러나는 기분입니다. 조그마한 일에도 감정 제어가 안 돼 눈물을 뚝뚝 흘려 주변 사람들을 당혹하게 만듭니다. 학원에 다닐 때는 남과 비교하며 부족한 저를 많이 탓하느라 시간을 보냈고, 집에서 공부할 때는 과거의 그런 저를 비난하며 시간을 낭비하곤 했습니다. 그래도 그런 게 문제라고 인식한 후 제 나름대로 노력한 결과 많이 나아졌습니다. 잠들기 전에 혼잣말로 괜찮다고 위로하고 조금 늦어도 잘 할 수 있다고 격려합니다.


선생님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저는 숨 막히게 찾아오는 감정들에 마음이 아픕니다. 그리고 이런 감정들이 터져 나올까 봐 늘 주의를 기울입니다. 저는 합격하고 싶고 또 동시에 제 삶이 끝났으면 싶습니다. 편해지고 싶습니다.


말씀드렸다 싶이 제가 하고 싶어 하는 일은 건강한 정신을 요하는 일입니다. 그리고 동시에 생명을 담보로 하는 위험한 일이기도 하고요. 최근에는 빨리 합격해서 현장에서 근무하다가 죽고 싶다는 생각도 합니다. 적어도 자살하는 것보다는 값진 삶이 될지 않을까요..


사실 어떠한 답을 구하고 선생님께 글을 쓰는 것은 아닙니다. 익명성을 담보로 제 얘기를 털어놓는 이유는 조금이나마 자유로워지고 싶어서입니다. 세상은 넓고 사람은 다양하니 저 같은 인생이 세상 어딘가에 또 있을지도 모르죠ㅎㅎ.. 선생님 제가 자유로워지고 싶은 건 인생인지 아니면 이런 생각에서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이런 질문 자체가 인생인지도 모르죠.


아무쪼록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렇지 않으셔도 감사하고요. 앞으로도 선생님 글 종종 읽겠습니다.

평온한 주말 밤 되세요!



두두의 마음 편지)


안녕하세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이두형 입니다.


말씀하신대로, 사람은 각자 자기 삶의 아픔만큼의 무게를 지고 살아갑니다. 누구의 짐이 더 무거운지, 그 짐은 진짜인지 가짜인지는 크게 중요치 않겠지요.


그리고 그런 아픔은 반드시 삶에 도움이 되는 것도, 그렇지 않은 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어느 한 쪽이 맞는지를 모르겠다는 의미라기보다는, 어쩌면 정해진 사실이 없는 듯 하다는 의미입니다.


마음의 상처를 안고 수많은 나날을 이를 원망하며 살아왔는데, 더 많은 세월이 지나고 나름의 행복을 안고 돌아보니 그 상처 마저도 의미가 있었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곤 합니다. 그가 말하는 대로, 실은 마음의 아픔 역시 삶의 자양분이지만 나중에 비로소 깨달은 것일까요? 물론 시련과 역경이 그 이후의 행복과 개인의 성숙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 결과는 많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보다, 상처와 아픔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삶은 이어진다는 관점으로 이해합니다.


우리의 삶은 늘 흐르고, 이어집니다. 행복한 순간을 만나 영원히 정지하지도, 극복하지 못할 슬픔 앞에 멎지도 않습니다. 행복은 흐르는 삶 속에서 기쁨을 많이 만나거나 슬픔을 잘 피해서 주어지는 것이라기 보다는, 평안과 슬픔 그리고 무던함 속에서 삶이 점차 내가 바라는 행복을 향할 때 오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즐거움, 기쁨, 행복으로만 가득한 순간들만으로 평생을 채울 수 있는 이는 아마 없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불행만으로 점철되었다는 이의 삶 안에서도, 조그만 기쁨, 감사, 평안의 순간들이 있습니다. 어제는 아픔이, 오늘은 기쁨이, 혹은 그 반대로, 어떤 순간들이 있을 지 모르게 이어지는 것이 삶입니다.


그런데 때로는 과거의 슬픔이 너무도 짙은 나머지, 새로이 시작하는 오늘을 같은 감정으로 물들이고 지금 이 순간의 선택과 행함에 영향을 미칠 때가 많습니다. 특별히 슬프거나 불안할 이유가 없는 하루의 시작이 우울로 물들어 있을 때, 사람에게 데인 상처가 깊어 좋은 사람을 만날 기회조차 피하고 싶을 때, 실패의 기억이 두려운 나머지 어떠한 시도도 하고 싶지 않아질 때 와 같이...


그래서 저는 우선, 다른 것에 앞서 가장 먼저, 그간의 내 삶, 그간의 나를 안아주시기를 권해 드리고 싶습니다. 이제는 다 지난 이야기다 라거나, 그런 과거도 그 나름의 의미가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단지 원하든 원하지 않았든 내게 주어진 단 한번 뿐인 내 삶이 있고, 그동안의 세월을 나는 노력하고, 때로 버티고, 가끔 울고 또 웃으며, 그렇게 살아왔습니다. 힘들고 고단했던 그간의 나 가 내 마음속에 있습니다.


남들은 잘 몰라줄 지라도, 나는 알고 있습니다. 그간의 내가 얼마나 진심으로 살아왔는지. 그 마음을 위로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그저 고생 많았다고, 그 덕에 오늘을 살아가고 있다고, 고맙게 생각한다고, 어깨를 다독여 주시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마음을 다독이며, 지금의 나를 돌아봐 주시기를 권해드립니다. 이제 성인이 되었으니, 나이가 들었으니 어린 시절과는 달리 모든 것을 해낼 수 있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여전히 부족하고 막막한 부분도 많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도 무력했던 그때 보다 조금 나아간 점, 조금 더 할 수 있는 일을 돌아보시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그를 바탕으로 내가 원하는 삶과 행복을 위해 지금 여기에서 할 수 있는 가장 작은 일을 떠올리고, 그 일을 하며 오늘의 의미를 되새겨 보시면 좋겠습니다.


짧은 글로는 차마 다 적지 못한, 깊은 마음 속 힘들었던 기억이 많으실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때로 고민하면서도, 바라는 삶을 향해 오신 나날들과 오늘, 그리고 내일을 위로하고, 축복하며, 격려합니다.


도움이 되셨기를 바랍니다.



*함께 읽기를 권해드리는 글

https://blog.naver.com/dhmd0913/2216565730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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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https://pixab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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