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연) 맨날 보기만 하다가 처음으로 댓글 남깁니다... 1. 언제까지 어린 시절의 학대로 인해 생긴 트라우마에 갖혀 살아야 하는 걸까요. 저희 엄마는 "너가 태어나기 전에 이혼을 했는데 하고보니 니가 뱃속에 있어서 다시 합쳤다. 그런데 지금까지 단 한순간도 행복하지 않았다. 이 모든 것은 너때문이다." 라고 저를 때리면서 말했습니다. 부부간의 불화가, 시댁과의 갈등이 모두 저때문이라며, 외모와 성격, 성향까지 모두 아빠를 닮은 저에게 책임전가 하였습니다. 죽도록 맞았고, 라디오를 집어던져서 머리가 터지고, 바둑돌을 비닐에 넣어 휘두르는 것을 막다가 손가락이 터졌고, 갈비뼈가 기형이 되었습니다. 이 모든 것 위에 바닥난, 아니 생기지도 못한 자존감의 틀이 있습니다. 저는 태어나지 말았어야 하며, 죽고 싶어 환장한 사람입니다. 또 어린 시절에 케어를 받아본 적이 없어서 제 스스로 저를 케어할 줄 모르고 스스로를 학대한다고 합니다. 주변에서 걱정하는 것조차 어색하고 민폐끼치는 것 같아 숨기고 싶습니다. 그런데 다치고 아픈게 숨겨지지 않을 만큼 클 때가 많습니다. 돌아보면 이 모든 것의 시초는 엄마의 학대라고 생각하는데, 한달이 지나면 27살이 되는 제가 언제까지 엄마 탓을 할 건지 스스로가 한심하게 느껴지지만 한편으로는 제스스로를 케어하거나 아낄 생각은 없습니다. 한마디로 답이 없어요. 2. 현재 우울증 약을 복용하고 있습니다. 약은 6년째 복용중이고 상담은 3년 정도 했습니다. 모든 사람들은 죽지 못해 살고, 마음속으로는 항상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줄 알았습니다. 어렸을 때는 남들도 제가 생각하고 경험하는 것들과 똑같이 하는 건 줄 알았기 때문에요. 14살 때 자살시도를 했었고 약을 60개 정도 먹었으나 그당시 엄마는 집을 나갔었고 아빠는 트레일러 운전사라는 직업특성상 집에 거의 안계셨기에 저는 혼자 쓰러졌다가 이틀만에 깨어났습니다. 현재도 죽고 싶어서 환장한 상태이고 구체적인 계획이 있고 실행할 의사가 있습니다. 처방전 상 기재된 병명은 만성우울증, 양극성 정동장애2형, 공황장애, 불면증, 알콜사용 입니다. 현재는 약을 하루라도 안먹으면 다음 날 일상생활이 불가할 정도인데, 그렇다고 언제까지 약을 먹어야 할지, 언제까지 상담을 받아야 할지 답답합니다. 3. 현재 상담을 하고 있는 선생님은 레지던트이고, 이제 전문의 시험준비와 군복무 때문에 상담을 종료해야 합니다. 그런데 저는 현 시점에서 상담치료를 종료할 수는 없고 다른 선생님을 찾아봐야 한다고 합니다. 선생님께서 제안하신 것은 첫번째는 후임에게 인수인계, 두번째는 로컬 병원에 내원인데, 로컬병원에서 상담을 받으면 편하긴 하겠지만 비용적인 측면에서 부담이 많이 클 거라고 하시네요. 제가 상담을 시작했던 것은 상담의 필요성을 느껴서가 아니라 지금 상담하고 있는 이 선생님의 특성 때문에 이 선생님을 따라 간 것이었습니다. 상담 중에는 타이핑을 전혀 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내용을 다 기억하시는 점. 그래서 지금 상황이 무척 괴롭습니다. 저는 상담이 아니라 선생님을 따라 간 것이었는데 다른 선생님을 찾아야 한다는 점과 차트를 들고 가더라도 세부사항에 대한, 유년시절이나 지난 직장, 현 직장 내 문제 등을 처음부터 다시 얘기해야 한다는 것이 너무 막막하고 시간도 아깝습니다. 차라리 타이핑을 쳐서 미리 보내고 싶을 정도 입니다. 그렇다고 한들 지금처럼 "그 주임님이...", "최팀장님이..." 이렇게 말 할 수 없을 것이고, "지금 회사에 어떤 주임이 있고 지난 회사에 어떤 팀장이 어떻게 했고 그것 때문에 지금 주임이 뭐 어떻게 하는 면에서 힘들게 느껴지는데..." 라고 다 풀어서 다시 설명해야 하는 것에 대한 막막함 입니다. 참... 답답합니다. 상담을 최대 두 달을 안해봤는데 딱 4주 넘어가니깐 사람이 미쳐간다는 것이 뭔지 알겠더라구요. 이제는 정말 결정해야 할 때가 왔는데, 대학병원에서 인계받은 선생님이랑 안맞으면 다른 선생님으로 바꿀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 섣불리 결정도 못하겠습니다. 다 그만두고 싶습니다. 정말...
두두의 마음 편지) 안녕하세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이두형입니다. 우선, 말로 표현하기 힘들 깊은 마음의 아픔을 용기내어 나눠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누구라도 힘들 수 밖에 없었을 오래된 상처와 마음의 아픔에 대해서 진심으로 위로의 말씀을 드리고 싶고, 그토록 아프고 힘들었음을 견디며 살아오신 그간의 시간들을 위로하고, 격려드리고 싶습니다. 너무 힘드셨을 것 같습니다.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굳이 제가 말로 하지 않아도, 남겨 주신 글을 보면 누구나 글쓴이님의 사연에 함께 아파하고, 얼마나 힘드실 지 공감할 것 같습니다. 1.에 대하여 사람은 누구나 본능적으로 평안과 행복을 원합니다. 특히나 자립하기 힘든 어린아이는, 이를 위해 양육자의 보호가 필요합니다. 아이의 마음의 상처는 불편함이 아닌 생존의 위협이고, 따라서 그러한 아픔은 마음 속에 깊이 각인됩니다. 안타깝게도 어린 시절의 그러한 상처는 성인이 되고, 경제적, 사회적, 심리적으로 자립할 수 있는 상태가 되어서도 마음 속에 깊이 남아 오늘을 살아가는 내게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지금의 나를 괴롭히는 것은 그 때의 상처라기보다, 엄밀히 말하면 그 상처의 흔적 입니다. '저는 태어나지 말았어야 하며, 죽고 싶어 환장한 사람입니다.' 라는 글쓴이님의 말씀이 참 안타까웠고, 이에 대해 위로를 드리고 싶었습니다. 아마 저를 포함하여 글을 읽는 모든 분들이 글쓴이님께서 어째서 그런 생각을 가지게 되셨는 지에 대해 십분 공감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글쓴이님께서는 '태어나지 말았어야 하는' 분이 아니고, '죽고 싶어 환장한' 분도 아닙니다. 단지 오래된 마음의 고통, 슬픔으로 인해, 나는 태어나지 말았어야 하고, 죽고 싶어 환장한 사람 '이라는 생각이 자주 마음에 드는' 것일 것입니다. 글쓴이님 께는 어린 시절의 아픔이 많았고, 그 아픔이 만들어낸 생각과 감정들에 오늘날에도 불편함을 많이 겪고 계십니다. 그 아픔을 겪던 그 때의 마음을 기억하고 계십니다. 이는 분명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들이, 글쓴이님은 아프도록 운명지워 졌고 모든 삶을 고통 속에서만 살아야 한다는 것을 증명하지는 못합니다. 마치 불행으로만 점철된 것 같은 글쓴이님의 삶 속에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소중한 사람들과 따뜻하게 주고받았던 말들, 잠깐이나마 웃었던 기억, 아주 작은 행복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는 시간이 많이 흘러서, 물론 누구나 그렇듯 완벽하진 않지만, 자립하여 홀로 스스로의 행복을 향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고, 힘든 마음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해 고민할 정도까지 나아가 왔습니다. 어떻게 하는 게 우울에 좋다, 어떤 치료를 받아야 한다는 구체적인 말들에 앞서, 저는 글쓴이님께 다음의 말씀을 전해 드리고 싶습니다. 법륜 스님의 '즉문 즉설'의 한 구절입니다. '어느 누구도 행복할 수 있다, 그리고 어느 누구도 행복할 권리가 있다.' 어린 시절에 학대를 받았든, 이혼을 했든, 자식을 먼저 잃었든, 어떠한 사람도 행복할 권리가 있습니다. '태어났기에 소중하다, 사람이니 존중받아야 한다.' 와 같이 아름답지만 조금은 공허할 수 있는 말을 굳이 드리고 싶진 않습니다. 다만 세상을 살아가는 한 사람으로서, 어린 시절 어떤 상처를 받고 어떤 험한 말을 들었든, 글쓴이님은 분명 행복할 수 있고 그럴 권리가 있는 분이십니다. 사족을 더하자면, 적어주신 어머니의 말과 행동은, 그분의 삶의 아픔으로 인한 그분의 문제이겠지요. 그러한 말과 행동이 있었다는 것으로 인해, '나는 그러한 사람이다' 라 생각할 이유는 없다는 조심스러운 말씀을, 꼭 함께 드리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결코, 글쓴이님의 잘못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해야 과거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지독한 과거가 있었으니 '그러므로' 나는 불행할 수 밖에 없어 라는 생각 대신에, 나는 정말 슬프고 힘들었어, '그리고' 이제는 행복해도 되고, 그럴 수 있고, 그럴 권리가 있어, 라는 생각을 먼저 되내어 보시면 좋겠습니다. 아무리 가혹하고 아픈 기억일지라도 이는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은 아니며, 나는 현재를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되새기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데 아직 이에 익숙하지 않고, 자꾸만 불안하고 슬픈 생각과 감정이 찾아와 힘드니 필요하다면 정신과를 방문하고 상의를 해 보아야 겠다, 라는 관점으로 진료를 이어가시기를 권해드리고 싶습니다. 2.에 대하여 약물 치료의 지속에 대해 질문을 들을 땐, 저는 다음과 같이 말씀을 드립니다. 불안, 우울 과 같은 감정은 없애야 할 문제라기 보다는 생리적으로 당연히 존재하는 삶의 한 부분이며, 이러한 부분이 과도하여 불편함을 느낄 때는 이를 조절하는 것이 내 삶에 도움이 되고, 치료는 그러한 역할을 해 주는 것입니다. 행복은 내가 싫어하고 불편해 하는 마음의 증상이 완전히 사라졌을 때 느껴지는 감정이라가 보다, 때로 슬프고 힘들 때가 있더라도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며 소소한 기쁨을 느끼는 것이겠지요. 내 삶에 마음의 병이라는 심각한 문제가 있으니 약으로 그 문제를 해결해야 하고, 잘 해결되면 약을 끊을 텐데 그러고 있지 못하다는 관점 보다는, 마음 속에 행복으로 나아가는 데 지나치면 불편한 부분이 있어서 이를 편안한 방향으로 조절하기 위해, 마치 조금 더 건강해지기 위해 영양제를 먹듯 약물 치료를 이어간다는 마음으로 치료를 보시면 조금 더 편안하시지 않을까 합니다. 3.에 대하여 정신치료의 지속과 중단에 대해서도 질문을 주셨습니다. '참 특별하지만 결국은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것'이 정신과 의사와 환자의 만남 같습니다. 서로가 잘 맞지 않을 수도 있고, 이별을 원치 않더라도 한 쪽이 아프거나 이사, 죽음 등의 피치 못한 사정으로 인해 헤어질 수 있는 것이 사람과 사람의 만남일 것입니다. 이는 정신과 의사와 환자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구에게도 하기 힘든 이야기를 털어놓는 다는 점에서 새로운 정신과 의사를 만난다는 것은 참 부담스러운 일이고, 또 물론 새로 만난 분이 지금의 선생님만큼 편하리라는 보장은 없겠습니다. 다만 이는 가족, 친구, 연인, 동료 와 같은 다른 인간관계에서도 모두 마찬가지겠습니다. 역으로 지금 선생님보다 더욱 편안하고 의미있는 면담을 이어갈 수도 있겠지요. 잘 맞지 않는 분이 계시다면 또 다른 선생님과의 면담을 구하셔도 무방합니다. 모든 인간관계에는 인연이 있고, 시작과 끝이 있기에, 면담의 종결과 시작에 있어서도 너무 큰 부담을 느끼시지 않으시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이 선생님 만큼 편하지 않을 지 몰라' '언제 처음 부터 내 이야기를 전부 털어놓지?' 와 같은 걱정 보다는, 그저 누구에게도 하기 힘든 이야기를 편히 할 수 있는 또 다른 선생님을 만나 보아야 겠다는 가벼운 마음으로 면담에 임하시기를 권해드립니다. 써 주신 내용으로 미루어 보았을 때는, 지금 처럼 정신치료를 이어가신다면 원하시는 삶을 향해가는 데 많은 도움이 되실 것 같습니다.
편지가 길어졌습니다. 아무 쪼록 도움이 되셨길 바라며 어제의 아픔에 대한 생각을 대신해 오늘, 지금 이 순간의 소소함에 대한 마음이 차올라가를 기원하겠습니다. 들러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