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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힘들면 사랑할 자격이 없을까요?

경계성 인격장애, 그리고 사랑의 본질. 두두의 마음편지

by 아는 정신과 의사


안녕하세요, 경계성 성격장애를 갖고 있는 20대 여자입니다. 이전에 이 성격으로 인해 한 친구와 많은 일을 겪은후, 상담을 받고 호전이 된후 그 전부터 친하게 지내던 친구와 1년반동안 장거리 연애를 하며 잘 지내오다 이번에 한번 다투다 보니 제가 다시 저런 의심과 행동, 분노를 다시 하고 있다는걸 느꼈습니다.

정말 저를 잘 이해 해주고, 받아주는 남자친구에게 처음으로 상처를 많이 준거 같아 현재 죄책감과 수치심이 많이 들고, 또 다시 돌아 오게 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는 제 자신을 발견하던중 이 선생님이 쓰신 포스트를 읽게 되어 질문 하나 드리고 싶어서 댓글을 남깁니다..

객관적으로 봤을때, 이런 성격장애를 앓고 있을경우, 연애 혹은 결혼은 상대방에게 너무나 큰 짐이고 상대방을 너무 힘들게 하는 부분이라고 보여집니다. 연애에 있어서 항상 오해를 받기 쉽고, 제가 좋아하는 마음과 생각들이 모두 이 성격장애로 인해 생긴것이라 생각될거 같고, 그래서 주위 소중한 사람들에게 피해를 안주려면 그런 깊은 관계 혹은 연결을 느끼지 않으려고 노력하며 살아야 한다고 느껴집니다.

이번엔 거리가 있는 연애이고 그 친구에 대한 믿음이 그 전부터 있어와서, 안정적으로 그가 없는 제 삶도 어느정도 구축했고 상대방의 연락 부족이나 관심부족에 너무 큰 의미를 부여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항상 객관적으로 보고, 그리고 다른부분으로 힘들어하는 친구를 보듬고 하며 잘 지내면서 저는 이번엔 정말 저런 장애 때문이 아닌, 정말 좋아하고 특별한 사이를 맺고 있다고 생각하고 믿었는데, 이번 일로 인해서 너무 혼란 스럽습니다..

무언가가 잘못된것만 같고 그 친구를 위해서라면 헤어지는게 맞다는 생각이 들다가도, 너무나 큰 상실감에 제가 다시 어떻게 될까 두렵습니다..






두두의 마음 편지)


안녕하세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이두형 입니다. 적어주신 글들에서 그간 글쓴이님이 얼마나 스스로의 마음에 대해 고민하고, 또 그러한 마음이 혹여나 사랑하는 이에게 상처가 되지 않을까 조심하며 노력해 왔는지 고스란히 전해집니다. 글에 앞서 그간의 그 노력과 세심한 배려에 대해 진심으로 수고 많으셨다는 말씀을 꼭 전해드리고 싶습니다.

우리는 종종 누군가에게 사랑에 빠집니다. 그의 성품이 따뜻해서, 외모가 매력적이라서, 부유해서, 사회적인 지위가 높아서, 혹은 우리가 모르는 깊은 마음 속 이유로.. 그리고 상대방 역시 상대방 나름의 이유로 나를 특별하게 생각합니다. 그 이유가 늘 같진 않고, 인연을 이어가다 보면 서로를 사랑하는 이유가 달라지기도 합니다.

그래서 누군가와 함께 할 때 중요한 것은 서로가 왜 서로를 그토록 사랑하느냐 보다는, 그러한 사랑이 서로에게 행복을 주느냐, 더 나은 삶으로 서로를 인도하느냐 일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기에, 더 이상 사랑을 나누는 당사자 중 한 사람, 혹은 두 사람 모두에게 그 관계가 행복을 가져다주지 못하거나 오히려 아픔을 준다면 그 사랑은 수명을 다합니다.

이는 당사자 중 누군가의 어떤 부분이 부족한가 와는 관계가 없습니다. 예컨대 글쓴이님은 스스로의 ‘성격장애’ 로 인한 부족함을 염려하시지만, 지금 만나시는 그 분에게도 단점은 있을 것입니다. 단점이 있는 것은 상대방도 마찬가지 이고, 단지 ‘그런 부분 까지 감안하고서도’ 서로 함께하는 것이 행복하기에 서로가 사랑하기로 ‘선택했을’ 뿐이며, 더 이상 그 행복이 유효하지 않을 때는 이별을 택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사랑이란, 대개 서로에게 다시없을 행복을 선사하는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특별한 관계로 시작하여 더 이상 감동을 주지 않거나 심지어 남보다 못하게 서로를 상처 주는 관계로 종종 끝을 맺곤 합니다.

때때로 오랜 시간이 지나도 함께하는 것이 서로를 고양시키고 행복하게 해 주는 관계들도 물론 많습니다. 결혼이 그 대표적인 예가 되겠지만 반드시 결혼을 해야지만 그러한 관계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아니, 혼인 관계로 인해 서로에 대해 사회적, 경제적 연결고리가 단단해져 더 이상 함께하고 싶지 않아도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사랑하는 이와의 관계를 지속하고 싶은 것은 당연한 마음이지만, 그 마음만큼 이별도 필연적인 관계의 한 속성이고 때로는 둘 중하나가 원치 않더라도 이를 받아들여야 할 때도 찾아오게 마련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사실을 받아들일 때 비로소 우리는 그와의 ‘지금, 여기에서의 관계’에 집중할 수 있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상대방을 구속하는 마음속에는 다음과 같은 마음들이 숨어있을 수 있습니다.


'나는 이 만한 사람을 다시 만날 수 없을 거야.'

'나에게 이 사람은 내가 만날 수 있는 최선의 사람이고, 나는 이렇게 사랑할 사람을 다시 만날 수 없어.'

'이 사람은 절대 놓쳐서는 안 될 사람이야.'

'이 사람과 헤어지는 건 나에게 큰 실패야.'


와 같은 마음들 입니다. 이러한 마음들은 이별에 대한 심한 불안을 유발하고 상대에 대한 구속을 유발합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이렇게 형성된 불안과 구속이 오히려 관계를 아프게 만들고 함께하는 시간들을 행복에서 멀어지게 합니다.

관계는 의외로 간결하여, 함께 보내는 시간들이 행복하면 가까워지고, 그 시간들이 불편하고 힘들면 멀어지는 속성이 있습니다. 그리고 아무리 내가 같은 마음으로 상대방을 대해도, 내가 짐작하지 못하는 이유로 상대의 마음이 나와 함께 하는 것을 원치 않을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어디까지 인지를 명확히 하고, 아무리 간절히 원하고 노력하더라도 때론 나의 바램 대로 어찌할 수 없는 타인의 마음 역시 존재한다는 것을 겸허히 받아들이는 일입니다.

그래서 글쓴이님께도 다음과 같은 말씀을 전해드리고 싶습니다. 사랑에는 언제나 이별의 속성이 있습니다. 이러한 부분을 애써 외면하고,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고 생각할 때 우리의 마음에는 역설적으로 구속이라는, 불화의 씨앗이 싹을 틔우고 자라납니다.


그러니 ‘그가 이제 내게 마음이 식었을까?, 나를 떠난다고 말하면 어떡하지?, 어떻게 하면 어떻게든 그를 내 곁에 붙잡아 둘 수 있을까?’ 를 고민하는 마음 대신 ‘오늘 그와는 어떤 시간을 보낼까? 어떻게 그와 행복한 주말을 보내 볼까?’ 를 떠올리시며 관계를 이어나가 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그리고 그와의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설사 불행해지더라도 관계를 지속하는 것 ’ 이 아니라, 그저 ‘오늘, 지금의 행복’ 임을 떠올리셨으면 좋겠습니다.


한 가지 사족으로, 글쓴이님께서 스스로를 '경계성 성격장애' 의 틀 에 맞추어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당부를 드리고 싶습니다. 지금까지의 글쓴이님의 노력이나 치료자분의 진단이나 노력을 부정하는 것은 전혀 아닙니다.


그리고 실제로 이러한 정신병리적 개념이 나의 마음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어 더 나은 관계로 나아가는 디딤돌이 됩니다. 그러나 때로는 이러한 진단명, 그리고 그에 따르는 일련의 증상들이 스스로를 가두는 낙인이 되기도 합니다.


'나는 경계성 성격장애 환자이고, 그래서 타인과 안정적인 관계를 형성하지 못하며 늘 관계에 대해 불안해하곤 할 거야.' 라거나, '내가 이렇게나 사랑하는 데도 관계가 잘 이어지지 않는 건 나의 성격 문제 때문일 거야.' 라고 생각하는 경향성이 그것입니다. 특히 이러한 경향성은 관계가 잘 이어질 때 보다 그렇지 못할 때 두드러집니다.

그러한 생각이 옳은 지, 그른 지보다도 중요한 것은, 그러한 생각들이 '실제로 관계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 지' 입니다. 그 누구도 타인을 사랑하도록 강요할 수는 없고, 상대방이 나를 사랑하는 것은 내가 그를 사랑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가 나를 사랑하는 것이 자신에게 행복이기 때문입니다.

아픔이나 어려움이 있다는 것이 관계에 있어서 잘못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내가 상대방에게 사랑을 강요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아니, 애초에 사랑이란 강요할 수 없는 성질의 것이기도 합니다.

'이런 나'를 사랑하기로 한 것은 그의 선택이며, 우리는 모두가 제각각의 부족함을 가지고 있는 '이런 나' 입니다. 다만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이런 나지만 함께하는 행복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 이며, 영원히 함께하기를 원했지만 함께 하는 것이 더 이상 어느 한쪽에게는 행복이 아니게 될 수도 있음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이번에는 상대방이 그러했다면, 언젠가는 상대방이 나를 원할지언정 나의 마음이 떠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경계성 성격장애’ 라는 나 자신을 이해하는 한 가지의 마음의 틀이 글쓴이님을 가두는 감옥이 되지 않고, 스스로를 이해하고 이를 바탕으로 더욱 상대를 세심히 배려할 수 있는 도구로 쓰이기를 기원합니다.


다소 길어진 글을 간추려 보겠습니다.

관계가 가까워졌다가 멀어지는 것은 어떤 잘못으로 인한 것이라기보다는, 자연스러운 관계의 속성에 가깝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마음이 진심이라면 나의 부족함이 망친 관계에 대한 생각에 몰입하기보다는 이를 겸허히 받아들이되,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노력, 함께 하는 행복을 위해 어떻게 할 수 있을 지에 대해 고민하고 이를 기반으로 그와 보내는 지금, 여기에서의 시간에 몰입하시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관계란 나 혼자가 아닌 타인과 함께 하는 것이기에 언제나 내가 원하는 대로만 인연이 이어지지는 않을 수도 있음을 상기시키면 좋겠고, 상대방을 아끼는 마음이 지나쳐, 지금 사랑하는 이를 살아가며 다시는 만날 수 없는 멋진 사람으로 이상화하고 이로 인해 마음이 무리하고 있지 않은 지는 한 번 쯤 돌아보시면 좋겠습니다.

1년 반 동안 관계를 이어 오셨다면, 그 시간들이 이미 그 자체로 얼마나 서로가 서로에게 진심이었는지를 알려준다는 생각도 듭니다. '경계성 성격장애' 란 진단에 비추어 스스로의 부족함을 발견하고 이로 인해 좌절하기 보다는, 그러한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얼마나 노력해 왔는지에 대해 그간의 나 자신에게 격려와 위로를 건네주시면 좋겠습니다.

그 마음을 바탕으로 미래에 어떤 결과가 이어지든 나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그와의 지금, 여기에서의 시간들을 어떻게 행복으로 채울 수 있을 지를 생각해 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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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pixab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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