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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키우는 마음, 마음의 병은 사치 같아요.

육아, 사랑하지만 힘들어. 우울할 자격이란 존재할까.; 두두의 마음 편지

by 아는 정신과 의사



처음 시작은 임신때였어요. 한밤중에 베란다 밖으로 뛰어내리고 싶은 충동이 생겼고 그런 생각을 했다는 것만으로 충격이었죠. 그러다 아기를 낳고, 남편과 함께 있으면 그런 생각을 안하다가 혼자 아기를 볼때 문득 베란다 밖으로 뛰어내리면 나는 것 같겠다하고 속이 뻥 뚫리더라구요.


그런데 얼마전 혼자 아기를 보는 데 너무 예뻐서 발끝을 아기와 내 발을 닿고 같이 밥을 먹는데 마음은 한없이 가라앉더라구요. 이런 기분이 너무 싫고 또 호르몬 장난 같고 언제쯤 벗어나려나 반복되는구나 하는 찰나에, 그래 딱 10년만 살고 죽자고 생각하니, 미소가 나왔어요 속이 뻥 뚫리고 지금 바쁜 일상이 할만하다고 생각하며 가라앉은 마음이 위로 쑥 올라오더라구요. 그래서 이 생각이 가장빨리 나를 끌어올리는 구나 해서, 또 힘들 때 10년뒤 나는 죽는다라는 생각에 기분이 좋아졌어요.


그러다 어제 그렇게 힘든 날도 아닌데, 또 아기를 보고 식사를 치우고 부엌에 갔는데 과일칼을 손목에 살짝 가까이 가져가보고 여기 근처겠구나 생각이 들면서 우울한 마음이 또 사라지더라구요.


저는 일을 하고 있지만 육아도 남들보다 좋은 환경이라고 생각하고 도움도 많이 받는 다고 생각은 해요. 아쉬운건 일할때 퇴근을 늦게할까봐 일을 줄이고 싶어하는 내모습이 마음에 안든다라는 정도 같은데, 약속을 잡는 건 당연히 미루다미루다 해야한다는 생각, 착한 내 아이에게 최선을 다 못한다는 미안함, 아직 너무 아기인데 중요한 시기에 내 시간을 갖을때 미안함, 이정도인데..


마음의 병을 갖는 다는 건 사치같고 그래서 혼자 해결해보려 한 생각들이, 점점 더 자살 생각으로 구체화시키는게 이제 멈추고 싶어요. 여지껏 기대서 좋았는데.. 아닌 거 같아요..기분이 좋아진다는게..


책을 읽어 볼까요? 무슨 책을 찾아볼까요.








두두의 마음 편지)


안녕하세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이두형입니다. 답글에 앞서 한 가지 함께 생각해 보고 싶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우울에는 이유가 필요할까요?, 우울할 만한 자격이라는 것이 존재할까요?'


마음이 힘든 데 반드시 어떤 이유나 자격이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사람들의 삶은 너무도 세밀하고 복잡하기 때문에, 겉으로 표현되는 몇 몇 부분으로 그 사람이 힘들만 한지 아닌지를 판단할 수는 없습니다.


사람들은 곧잘 타인의 상황이나 마음을 재단하고 평가하지만, 실은 오로지 자기 자신만이 스스로의 마음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자기 자신이 돌아보았을 때도 그렇게 힘들만한 상황이 아닌데 마음이 힘들 때 역시 있습니다. ‘주어진 상황이 어떻든, 스스로 어떻게 생각하든, 힘든 건 힘든 것이며 슬픈 건 슬픈 것이다.’ 라는 말씀을 우선 드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아이에게 드는 마음에 대해서도 함께 이야기를 나눠 보고 싶습니다. ‘어떠어떠해야 한다.’ 는 당위 명제는 우리를 자주 지치게 합니다. 예컨대 아이를 사랑한다면 아이를 위해야 하고, 아이를 위하려면 엄마의 마음에는 긍정적이고 아름다운 것만 깃들어야 한다고 생각할 수 있지요. 그러한 생각으로 우리의 마음을 바라보았을 때, 우울하고 지치는 것은 그 자체로 무언가 잘못되었고, 사랑하는 아이에게 잘못을 저지르는 것이라 간주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울하다는 것, 아이가 부담스럽다는 것은 아이를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 아닙니다. 아이의 웃음을 보고 있자면 한없이 사랑스럽다가도, 육아가 버거울 땐 아이 없이 살아가던 시절이 그리워질 수도 있는 것입니다. 또한 이러한 생각이 아이에 대한 사랑이 부족함을 증명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아이를 위하는 마음이 크면 클 수록, 아이에게 소홀하다 여겨지는 부분도 더욱 속상하겠지요. ‘나는 아이를 사랑해, 그리고 때론 우울하고 지쳐서 아이를 돌봐줄 힘조차 없을 때도 있어.’ 는 모순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저 힘든 것일 뿐이고, 힘든 엄마도 아이를 사랑합니다. 오히려 사랑해서, 더 잘 해주고 싶어서, 더 좋은 엄마가 되고 싶어서 힘이 듭니다.


그러니 마음을 있는 그대로 봐 주시면 좋겠습니다. ‘나는 다른 엄마들에 비해 육아 상황도 좋고 힘들 이유도 별로 없는 데다가, 아이를 위해서라면 우울하지도 않고 아이랑 잘 놀아줘야 하는데 왜 힘들까. 힘들면 안 되는데, 힘들 자격도 없는데 어떡하지’ 라는 생각이 들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에 지나치게 몰입하여 지금 힘들고 우울한 나를 ‘어딘가 잘못되고 문제가 생긴 것으로’ 바라보기 보다는, 그저 ‘나는 아이를 사랑해, 그리고 지금 나는 우울할 때도 있구나.’ 라 우울하고 지치는 마음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면 어떨까요.


아이를 위해주고 싶지만 마음이 따라주지 않을 때도 있구나, 객관적으로는 특별히 힘들 이유가 없는 것 같지만, 지금은 마음이 우울하구나 라 있는 그대로 스스로의 마음을 그저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아무리 우울하고 슬플 때도 가끔은 기쁜 순간이 있는 것처럼, 아무리 상황이 좋고 평안한 때라도 우울하고 힘든 순간도 있게 마련입니다. 그리고 육아란 것은, 사랑하는 아이를 한 인격체로 성장시키고 싶다는 부담감을 수반하기에 아무리 현실적인 상황이 좋더라도 힘들 수 밖에 없습니다. 더군다나 일을 하며 아이를 돌보신다면 누구라도 버겁다는 기분을 느낄 것입니다.


그리고 우울과 죽음에 대한 생각에 빠져드는 부분에 대해서도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마음에는 습관이 있어서, 잘 지내다가도 힘들 때는 예전에 힘들 때의 마음으로 돌아가기도 합니다. 죽음을 떠올리실 정도로 오래도록 힘드셨던 경험이 있다면, 특별한 마음의 동요 없이 살아가다가도 우울함이 찾아올 때는 그 때의 마음과 생각들이 일종의 버릇처럼 다시 찾아올 수도 있습니다.


사연에서 말씀 주신 정도의 마음이라면 때로는 일상생활에 불편함을 유발할 수도 있고, 아이를 위하는 마음에도 방해가 될 수 있겠습니다. 반드시 치료해야하는 우울증이란 ‘병’이 있어서라기보다는, 때때로 찾아오는 우울함이 ‘나의 일상과 소중한 아이를 위하는 데 불편하니’ 이에 대해 가까운 정신건강의학과를 방문하시어 상의를 해 보시는 것도 권해드립니다.


정신과 의사가 아니라 어린 아이를 둔 아빠로서,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과 현실적인 버거움 앞에서 혼란한 그 마음을 십분 이해합니다. 제 아내와 아이를 축복하듯 글쓴이님 가족의 행복을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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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pixab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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