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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사는 걸까요? 사는 의미를 잘 모르겠어요.

두두의 마음편지

by 아는 정신과 의사


안녕하세요~ 어쩌다보니 이웃하게된 이웃입니다.
선생님글이 너무따뜻해서가끔 들르는데요..
사실 고민이좀.. 있습니다..

요새 사는의미를 잘 못느끼겠어요.
아무런 생각없이 살다가도 갑자기 울컥울컥하고
모든생활이 무기력해지고 있어요.
왜 살아야될지 모르겠고..

내마음을 위로해주고 싶은데
어떻게 위로해줘야될지 모르겠어요..
상담이 필요할까요?







두두의 마음편지)


안녕하세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이두형 입니다.

진료실에서 면담을 하다보면, 비슷한 고민을 상의주시는 분들이 많이 계십니다. 그리고 저 역시 같은 생각이 들 때가 많습니다. ‘산다는 건 무엇일까, 삶의 의미란 어떤 것일까, 왜 살아야 하는 것일까.’


그러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삶의 의미를 모르는 것, 왜 살아야 할 지 이유를 찾기 힘든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게 아닐까?’


산다는 게 무엇인지, 어떤 것이 삶의 의미인지를 확실하게, 문제에 대해 답을 내놓듯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아니, 자기 자신만의 나름의 이유를 단정적으로 이야기하더라도 그것은 그 사람에게 해당되는 것이지, 각기 다른 가치관으로 각자의 삶을 살아가는 모든 타인들에게 적용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삶의 의미를 언제 고민하는 지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살아간다는 무게가 지나치게 버거울 때, 하루를 버티는 것조차 힘이 들 때면 ‘왜 이렇게까지 힘들며 살아가야 하는 걸까.’ 라는 생각에 빠져드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긴 삶 속에서 우리가 늘 그러한 생각에 빠져드는 것은 아닙니다. 간절히 바랐던 일이 이루어지거나, 특별한 기대 없이 들린 여행지의 풍경이 너무도 아름다울 때, 새근새근 잠든 아이의 모습이 너무 사랑스러울 때, 그럴 때 우리는 말로는 정리할 수 없지만 알 수 없는 충만함에 빠져듭니다. 단순히 기쁘다고 표현하기에는 부족한, 그 살아가는 맛은 내가 평소에 생각하던 삶의 의미가 만족되어서 다가오는 건 아닐 것입니다.


글쓴이님께서 제게 삶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여쭤 보신다면, 저는 다음과 같이 말씀드릴 것입니다.


‘저 역시 아직도 삶을 살아가는 이유가 무엇이다 라 정의 내리지는 못합니다. 다만 내게 소중한 것, 내게 가치 있는 것을 따르며 살아가다 보면, 어떻게 다가왔는지도 모를 행복감을 마주할 때가 있었고, 제 삶으로 말미암아 제가 사랑하는 이들이 웃기도 합니다. 그래서 가끔은 왜 사는지 모르겠다는 허무감도 있는 그대로 느끼며, 때로는 버티며, 그리고 때로는 다가오는 행복에 감사하기도 하면서 그저 그렇게 또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삶의 의미와 별개로 글쓴이님의 마음에 대해 드리고 싶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아무런 의미를 느끼지 못하고 무기력한데, 때로는 울컥울컥 한다’ 는 글에서 글쓴이님이 혹 스스로의 마음을 억누르는 부분이 있으신 건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큰 상처가 될 만한 일을 겪으셨을 수도 있고, 사소한 스트레스나 고민이 오래도록 누적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여러 과정으로 인해 힘들어진 마음은, 그 힘듦을 인식하고 싶지 않아 감정을 틀어막고 느끼지 않으려 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마음은 늘 무기력하고, 의욕이 나지 않으며, 삶에 대한 감동도 느끼지 못하기도 합니다.


혹 감당하기 힘들어 외면해왔던 고민이나, 오래도록 경험하여 이제는 특별하게 느껴지지 조차 않는 우울함이 마음 한 구석에 깊이 자리 잡고 있는 건 아닌지에 대해 돌아보셨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스스로가 힘들다는 인식을 하는 것 자체가 부담스럽고 힘든 일일 수도 있습니다.


힘든 마음은 삶의 의미를 고민하게 합니다. 하루를 보내는 무료함, 또는 하루를 버티는 버거움에 대한 명확한 이유라도 설명해내고픈 마음일 것입니다. 그러나 삶이 우리에게 선사하는 것은 ‘이래서 살아가는 구나’ 라는 어떤 깨달음 이라기보다는, ‘살아있어서, 지금 이 순간을 맞이할 수 있어서 다행이야.’ 라 생각할 수 있는 순간들이 아닐까 합니다.


다만 그러한 생각에 빠져 드는 것, 살아갈 힘도 삶을 이어가고 싶은 마음도 잃어가는 것, 마음이 삶의 작은 순간들이 주는 기쁨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마음이 깊은 우울에 젖어가는 신호일 수도 있으니 이에 대해 돌아보는 계기로 삼으시면 어떨까 합니다. 혼자서 감당하기 힘든 어려움이 있거나, 혹은 오래도록 자리 잡아 어떻게 다뤄야 할 지 어려운 슬픔이 있다면 가까운 정신건강의학과에 들러 상의해 보시는 것도 권해드리고 싶습니다.


가을이 가면 겨울이 오듯 삶이 흑백으로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봄이 영원하지 않듯 겨울만이 지속되지는 않습니다. 따스함이 눈을 비추어 흐르는 물에 푸른 새싹이 돋듯, 마음의 응어리가 녹은 자리에 작은 행복이 다시 돋아나시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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