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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중한 사람과의 사이가 멀어져요.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관계란 무엇일까. 두두의 마음 편지

by 아는 정신과 의사

안녕 하세요. 저는 34살 기혼 여성 이예요..


제가 요즘 부쩍 더 마음이 힘들어서 어떻게 해야 하나 싶어서 여기저기 찾아보던 중 여기까지 오게 되었네요. 저는 요즘 가족처럼 친하게 지내오던 동생과의 관계 때문에 서로 너무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어요..


그 동생과는 서로의 집안사정이며 저의 아픔도 알고 시간이 허락할 땐 서로 여행도 가고 맛있는 것도 먹으며 제가 많이 믿고 의지하고 있는 동생 이예요. 그런데 그 동생에게 남자친구가 생긴 근 3달 동안 서로 다른 이성관과 성에 대한 가치관에 대해 감정소모가 많이 이루어지다 보니 그 친구는 이제 저와의 관계를 정리하려고 하더라고요...


저의 끝없는 잔소리와 집착, 의심, 불신으로 그 동생이 힘들고 숨이 막혔겠다, 생각이 드는데.., 많은 부분 제가 잘못했다는 걸 알면서도..고쳐지지 않는 제 모습에 화도 나고요.. 십삼 년이라는 시간동안 이런 적이 없었는데....좋은날이 더 많았는데 이렇게 끝나는 건가 하는 생각도 들고 동생이 행동하는 모습을 보면서 내가 관계를 망쳐버린 거구나... 생각이 들어요..


저는 늘 제가 소중하다고 생각한 인연들에게는 정말 최선을 다해 잘해주었다고 생각하는데 그들은 제가 많이 의지 하면할수록 그리고 제가 힘들 때는 모두 절 외면 하더라구요... 그 이유와 원인은 항상 저 때문인 거 같구요... 이 동생도 정신적으로 성숙한 아이라고 생각해서 제가 정신적으로 많이 의지했었는데..결국은 이런 사이가 되버리고...


남편도 있고 아이도 있는데.. 제 가족이 채워주지 못하는 공허함과 외로움을 그 동안은 타인에게서 찾아서 위로 받으려고 했는데 이젠 스스로 어떻게 혼자서 이겨내 보려고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할까요..?


찾아보니 제가 경계성 인격 장애와 많은 부분 일치하던데...저에게 이런 문제가 있다면 치료를 받아보고 싶은데.. 그 동안 상담센터를 다녀보았지만 마음에 맞는 곳을 찾기 어렵더라구요...병원은 기록이 남는다고도 하고 약물부작용이 심해서 좀 꺼려져서 안 갔는데.. 병원에 가서 약물치료와 상담치료를 받아보는 게 많은 부분 도움이 될까요?


이제 저는 이 동생과 어떻게 지내야 할까요..? 저에 대한 마음이 떠나서 생각을 정리할 시간을 달라는 동생에게 죄책감과 수치심까지 들면서도 관계를 유지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데... 그 동생과는 여기까지 하는 것이 서로에게 좋은 걸까요..?





두두의 마음 편지)


안녕하세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이두형 입니다.


어떠한 사이이든 마음을 깊게 주고받은 관계가 멀어지는 경험은 우리에게 큰 아픔을 줍니다. 누군가와 멀어질 때, 우리는 단지 그 때의 아픔으로만 힘들어하는 것이 아니라, 아주 어린 시절 부터 지금까지 경험했던 관계의 단절을 다시금 겪습니다. 차갑게 돌아서는 이성의 뒷모습을 보며 어릴 적 나를 혼자 두었던 부모에 대한 그리움이 깊은 마음속에 무의식적으로 떠오를 수도 있고, 회사에서 적응이 힘들 때 오래된 따돌림의 아픈 기억이 되살아날 수도 있습니다.


글쓴이님께서도 오래도록 마음을 나누신 분과의 관계가 어려워지며 많은 아픔을 경험하시고 계실 것 같습니다. 어쩌면 짧은 글로는 미처 표현하지 못한, 깊은 마음 속 숨어있는 어릴 적 이별의 아픔이나 외로움, 소외감을 다시금 경험하고 계실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그 아픔 속에는, 그 분과 좋은 감정으로 함께 하실 때는 느끼지 않아도 되었던, ‘내 마음 속 공허함과 외로움을 다시금 마주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도 있을 것 같습니다.


관계란 무엇일까요? 그리고 관계는 어떻게 맺어야 하는 것이며, 서로가 서로의 삶에 관여할 수 있는 부분은 어디까지 일까요? 당연한 말이지만 이러한 물음에 정답은 없습니다. 모든 사람의 삶과 가치관이 다르기에, 세상에 존재하는 사람의 수만큼 이에 대한 답이 존재할 것입니다. 그리고 관계란 이토록 다른 우리가 만나 함께 가꿔가는 것이기에 더더욱 정해진 답이란 있을 순 없겠습니다.


주신 글을 반복하여 읽어 보았습니다. 글쓴이님께서는 관계를 이유 모를 공허함을 다독여주는 수단으로 생각하고 계신 것 같고, 그러한 관계가 잘 이어지지 않아 외로움이 다시 밀려올 땐 ‘또 다시 홀로 남는 것 같다, 다들 내가 힘들 땐 나를 외면하는 것 같다.’ 고 생각하시는 듯합니다.


짧은 댓글의 내용으로만 미루어 보느라 비약이 많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신 글의 내용으로 보았을 때, 아마 글쓴이님께서는 그 분과 함께하는 시간이 소중했고 또 개인적인 위로를 많이 받으셨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두 분이 함께하시는 시간들이 아름다웠기에 주어진 ‘결과’ 이지, 그러한 위로를 ‘원인’으로, 즉 그런 위안을 서로 나누기 위해서 관계가 시작된 것은 아닙니다. 어떠한 속상함이나 어려움이 있더라도 서로를 위로하는 관계를 영원토록 유지해 나가자는 계약이 존재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겠습니다.


이는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만약 상대방이 글쓴이님에게 지나치게 의지하여 부담스럽다거나 개인적인 부분에서 맞지 않는 면이 있어 멀리하고 싶다면, 그렇게 하실 권리가 있습니다. 어느 누구에게도 다른 누군가를 위해 자신을 희생해야 할 의무는 없습니다. 조금 더 현실적으로 말하자면, 자연스러움을 넘어서는 의무를 요구하는 관계는 지속되기 어렵습니다. 관계의 본질은 ‘혼자 있을 때 보다 더 좋은 것’ 입니다.


또한, 마치 한 쪽은 이별을 원하지 않지만 다른 한 쪽은 헤어짐을 이야기하는 연인처럼, 관계의 당사자 중 한 사람은 만남을 지속하기를 원하지만 다른 한 쪽은 더 이상 함께하기를 원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이는 서로 다른 가치관의 사람들이 만남을 지속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일어날 수 있는 일이고, 누군가의 잘잘못을 따질 영역은 아닙니다. 단지 함께하는 것이 서로 좋아서 만남이 시작되었지만, 어느 한 쪽, 혹은 둘 모두가 관계를 지속하는 것으로 좋은 것 보다는 싫은 것이 더 커 질 때 자연스럽게 관계는 소원해진다는 것일 뿐입니다.


지금 그 동생 분에게 느끼시는 감정이나 생각은, 조심스럽게 드리는 말씀이지만 그 분과는 관계가 없는 글쓴이님의 슬픔과 불안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미 그 분이 글쓴이님과 멀어지고 싶어하는 상태에서 (실제로 그런 것인지, 혹은 다소간 불편함을 표현하는 것인지에 대해서도 객관적으로 생각해 볼 필요는 있겠습니다.) 글쓴이님의 부탁으로 관계를 이어간다고 하여도, 예전에 받으셨던 위안이나 안식은 더 이상 주어지지 않을 가능성이 많아 보입니다. 그 위로는 다름 아닌 ‘이 친구와 나는 한 없이 깊은 관계야, 늘 나를 따뜻하게 바라봐주고 나를 떠나지 않을 거야.’ 라는 느낌이었을 것 같고, 무리해서 관계를 이어간다고 해도 글쓴이님의 마음에서 더 이상 그 분을 이렇게 인식하기는 힘들 것이기 때문입니다.


글쓴이님의 마음이 틀렸다거나 글쓴이님이 두 분의 사이에서 잘못하셨다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나의 마음과, 내가 관계를 인식하는 관점이 현실 속의 관계에, 비단 그 동생 분 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과의 관계에 어떻게 작용해왔는지를 한 번 쯤 돌아보시면 좋겠습니다.


만약 나에게 근원적인 불안과 외로움이 있고, 이를 메우기 위한 수단으로 관계를 생각한다면 나는 그 관계의 상대방에게 ‘위로해 주고 나를 보듬어 주는 사람’ 이란 역할을 강요하게 될 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그만큼 그가 내게 소중해지기 때문에 나 역시 ‘그가 떠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는 마음에 지나치게 무리하여 잘해주려 할 수도 있고, 그에게 집착할 수도 있겠습니다. 이러한 경향은 상대방과 나 모두에게 부담으로 돌아오고 관계를 어렵게 만드는 이유가 될 수도 있겠습니다.


사람의 마음은 의외로 단순하여 단지 함께 있을 때 즐거움이 드는 사람을 찾고 불편한 사람을 피합니다. 그러니 다음과 같이 조언을 드리고자 합니다.


누군가와의 만남을 이어가실 때는, ‘그 관계가 어떤 것이다, 어떻게 되어야 한다, 서로는 서로에게 어떤 역할을 해야 한다.’ 라는 생각이나 개념에 사로잡히시기보다, ‘눈앞의 그와 함께하는 시간들을 어떻게 기쁘게 보낼 지’ 를 생각하고 이에 몰입하시면 어떨까 합니다. 같이 무엇을 먹을 지 고민하고, 또 다른 성인인 상대방을 평가하고 조언하는 이야기 대신 살아가는 이야기, 소소한 즐거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시면 좋겠습니다.


‘어떻게 하면 내가 그를 소중히 하는 만큼 그도 나를 각별히 생각해 줄까.’ ‘지금 어떤 이야기를 하고 어떻게 대하는 것이 상대방을 위하는 것일까.’ ‘어떻게 하면 이 사람과 오래도록 친하게 지낼 수 있을까.’ 를 고민하는 대신, 그저 지금 그와 함께하는 이 시간을 어떻게 하면 행복하게 보낼 수 있을까, 혹은 힘들어하는 그를 어떻게 하면 진심으로 위로할 수 있을까를 떠올려 보시면 좋겠습니다. 멋진 풍경을 같이 바라보고 마음을 나누며, 힘든 삶 속에서 그 시간들만큼은 평안함으로 꾸며 보시면 어떨까 합니다.


그리고 이별은 만남만큼이나 자연스러운 것임을, 헤어짐은 누군가의 잘못이 아니라 그저 더 이상 만남이 둘 모두에게 행복이나 기쁨은 아니기 때문임을 떠올려 보시고, 이를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슬픔과 두려움이 ‘그와의 관계와는 상관없는 내 마음 속에’ 숨어있진 않은 지를 돌아보시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노파심에 말씀을 드리자면, 혹 그분에게 남자친구라는 ‘다른 중요한 대상’ 이 생긴 것에 대한 두려움이나 불안감은 없으셨을 지요? 그로 인해 동생 분에게 지나친 간섭이나 집착이 일어나, 서로 불편한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던 것은 아닌지도 한 번 쯤은 생각해 보시면 좋겠습니다.


진료에 대한 질문에 답변을 드리자면, 살아가며 느끼는 공허함, 외로움 같은 근원적인 감정은 결국 나의 것입니다. 타인과의 즐거운 순간들로 잠시 덮을 수는 있겠고, 그 때의 기분으로 말미암아 끊임없이 그러한 순간들을 추구할 수도 있겠지만, 이는 일시적인 것이며 그러한 잠깐의 위안들로 소멸되지는 않습니다. 아니, 우리는 그러한 느낌들이 반드시 없애야하는 것들인지, 그 정체는 무엇인지조차 모르는 채, 마치 어두운 방 안에서 눈을 감고 눈앞에 무엇이 있는지도 모르는 듯 두려워하기도 합니다.


지금 나를 힘들게 하는 우울함, 불안함에 대한 실질적 도움을 받고, 그리고 이를 넘어 조금 더 내 마음과 내 삶에 대한 이해를 넓혀갈 수 있는 방법 중 하나가 정신건강의학과 진료입니다. 슬픈 마음이 하루를 보내기 힘들 정도로 마음을 채운다면, 남모를, 그리고 가까운 이에게 이야기해도 깊이 이해해 주지 못할 것 같은 고민이 있으시다면, ‘속 시원히 이야기나 해 보자.’ 는 가벼운 마음으로 가까운 정신건강의학과 진료를 받아 보시는 것을 권해드립니다. 의료 기록, 특히 정신건강의학과 적 면담 기록은 본인의 동의 없이 접근할 수 없으며 의료법으로 엄격히 보호받습니다.


만남이라는 것은, 자기 자신의 관점이라는 한계에 갇혀 있는 우리가 서로에게 손을 내미는 것입니다. 나조차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우리는, 어쩌면 죽을 때 까지 어떤 타인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할 지도 모릅니다. 괜찮습니다. 함께 커피를 한 잔 마시고, 서로를 바라보며, 시덥지 않은 농담으로 잠깐 웃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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