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재수를 해서 대학을 들어갔고, 2년을 다닌 후 1년을 휴학, 공부해서 편입에 성공합니다
문제는 이 편입으로 인해 완벽주의와 강박이 생겨버렸고, 여태까지 내려놓을 수 없습니다..
제가 첫 대학을 들어갔을 때도 좋아하고 잘하는 건 영어뿐이었고, 좋지 않은 대학이었고, 그나마 할 줄 아는 건 영어밖에 없고, 딱히 좋아하는 것도 없고, 과도 안 맞았고 이래서 편입을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이유들로 편입은 저에게 정말 절실했습니다.
그런데, 너무 절실했던 건지 편입 시험 날이 다가올수록 점점 마음의 부담은 쌓여갔어요. 왜냐하면 저는 솔직히 부모님이 편입비용을 다 내주셨지만(학원비, 식비, 용돈, 교통비 등등 전부 다), 같은 학교 같은 과에서 편입을 준비하는 친구들이 2명 있었는데, 2명 다 각자 아르바이트해서 본인들이 준비했거든요. 문제는, 저는 이런 친구들을 보면서 '나는 이렇게 편하게 공부하는데, 쟤네들 보다 못 가면, 혹은 쟤네들이랑 상관없이 내가 편입에 실패한다면 난 진짜 개병신이고 내 능력은 그냥 거기까지야.' 실제로 이렇게 생각했고(실제로도 이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그러한 생각들로 인해 불면증, 조울증 등등 엄청 고통 받기 시작했습니다.
정말 친구들에게도 다 말하고 다녔습니다. 제가 공부할 때, 군대에서 휴가 나온 친구들이 밥 한번 먹자고 하는 거 다 뿌리치고, 놀자고 하는 거 다 뿌리치고 정말 절망적으로 공부했습니다. 단순 시험을 떠나 그냥 영어의 체득화를 위해 테드 자막 없이 보기, 지식IN에 번역해달라는 글 번역해주기 등등등....그래서 나중에 가서 친구들이 ‘이 새끼ㅋㅋㅋ 그때 놀자 그러는데도 한번을 안 나왔잖아’ 이렇게 얘기하면 저는 ‘내가 만약 떨어졌다면, 내 능력의 한계를 내가 내 두 눈으로 확인하게 되는 아주 비참하고 절망스러운 계기였을 거라고. 니들이 뭘 알아 개새들아!!!’ 하면서 장난치면서요. (사실은 200% 진심이지만요) 솔직히 이글 쓰는데도 조금 울컥합니다. 그때의 정말 절망적이고, 떨어질 생각에 잠도 못자는 절 생각하면;
그렇게 새 학교로 편입을 했지만, 불면증과 더불어 이번엔 번아웃이 찾아왔습니다. 놀면 안 된다는 죄책감. 뭐 하나 이룬 것도 없고, 어중이떠중이, 애매하게 학교생활을 했어요. 사실 대학교 다니면서 외박도 하고 게임도 하루종일해도 되는 마지막시기인거잖아요? 근데도 정말 '그래도 학생이면 학생답게 공부해야지'하면서 뺀 날도 많고...
더불어 제가 영어를 잘하고 좋아했으니, 동기들 중에서는 가장 영어를 잘 했습니다. 실제로 원론수업, 외국어수업만 골라 듣기도 했고요. 외국인 교수님들 앞에서 말하는 것도 동기들 뿐 저 뿐이었습니다. 근데 문제는, 이게 어느 순간 우쭐해지더군요. 잘하는 건 잘하는 거고, 제가 돈 받고 일하는 통역가나 번역가가 아닌데도, 정말 영어로는 완벽한 모습을 보여야한다 이런 강박증에 시달리게 되었습니다.
아무튼 그렇게 번아웃과 강박증과 완벽주의로 고통 받고 있습니다. 사실 유튜브와 책(higherself, school of life 등, 심리학책(나는 늘 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을 통해 왜 그러는지는 이제 알게 되었어요. 마냥 괴로워했는데, 제가 완벽주의 때문이라는 걸 알게 되었어요. 근데도 놓지를 못하겠어요. 사실, 그냥 마음이 따르는 데로 하면 가장 쉬운 건데, 그게 잘 안되네요. 머리로는 알겠는데...행동은 달라요... 지금도 취준생인데, 저때 생긴 후유증으로 자소서를 잘 못 쓰겠습니다. 이거는 붙을 것 같다 한 자소서 들도 서류탈락을 하니 더 더욱 제 취준에 대해서도 의문이 생기구요...
요즘에 진짜 가장 마음을 쿵 치는 노래가 바보처럼 살았군요 와 윤종신의 slow starter입니다. 슬로우 스타터 마지막 중에 ‘내 눈가의 주름 깊은 곳엔 뭐가 담길지 궁금하지 않니 답은 조금 미룬 채 지금은 조금 더 부딪혀봐’ 이 가사가 정말.. 맞는데.. 잘 안되네요 ㅠㅠㅠ 정말 이십대이면 더 부딪혀야 될 나이인데, 겁쟁이처럼 살고 있습니다.
지금 취준생이고, 졸업한지 1년이 됐고, 아무 스펙도 없는 저는 정말 블라인드로 채용을 하는 공기업에 목숨을 걸어야 합니다. 근데 이 증상으로 묶여있는 느낌이에요....세상은 성공과 실패 이분법적으로 나뉘지 않는다는 걸 머리로는 아는데..
어떻게 해야 더 나아질 수 있을까요? 생각보다 긴 글이 되어버린 것 같아, 번거로우실 수 있겠지만, 간단한 상담이라도 받고 싶어 댓글을 남깁니다. 어디 가서 이런 걸 얘기해야 할지도 사실 모르겠는 와중에 본 글이라 푸념한번 해봤습니다.ㅠㅠ 답변을 주신다면, 굉장히 감사한 마음으로 읽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두두의 마음 편지)
안녕하세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이두형 입니다.
주신 글과 그 안에 담긴 마음에 깊이 공감하며 여러 번 글을 읽었습니다. 그리고 저 역시 비슷한 마음으로 힘들던 때가 떠오릅니다. 입시 때, 무엇이 행복인지, 삶의 의미가 무엇인지도 잘 모르는 채 시험 문제 하나, 실습 점수 하나를 더 받으려 노심초사하고, 조금은 마음을 풀어줘도 될 때조차 ‘더 열심히 해야 하지 않나’ 라 늘 조마조마 하곤 하였습니다.
그 때의 마음을 지금의 시선으로 바라보면, 저는 ‘삶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고 표현하겠습니다. 내가 원하는 삶, 혹은 사회적으로 옳다, 좋다고 주입된 삶을 살아내기 위해 ‘이렇게 하는 것이 맞다.’ 는 것만으로 하루를 채우기 위해 늘 매진했습니다. 당연히 그다지 행복하지 않았고, 삶은 어떤 지점에 도달하는 찰나의 안도감과, 그 지점에 도달하기 위해 노력하고, 도달하지 못할까 봐 불안해하는 대부분의 시간들로 가득 채워졌었습니다.
더욱 속상했던 것은 무언가를 이루어냈다고 해서, 예컨대 의대 입시에 합격을 하거나 의사 면허증을 땄을 때도, 생각보다 그렇게 마음이 평안하고 행복하지 않음을 깨달았다는 것입니다. 그 대신 자꾸만 그 다음 해 내야 할 목표들을 떠올리며 불안해 지기를 반복하곤 하였습니다.
어느 시점부터는 그런 생각이 들더군요. ‘도대체 나는 무엇을 위해서, 이렇게까지 나를 몰아붙이며 살아가는 걸까.’ ‘내가 생각하는 행복이란, 이렇게 나를 몰아붙이기를 반복하다 보면 도달할 수 있는 것일까’
아마 글쓴이님께서는 어떤 일을 완벽하게 해 내는 것에 많은 의미를 부여하고 계실 것 같습니다. 그 생각이 나쁘다거나, 없애야 할 문제라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 생각에 대한 맹목적인몰입을 잠깐만 멈추고, ‘왜 이렇게 내가 열심히 할까?’ 라는 생각 대신에 ‘어떤 일을 완벽하게 해낸다는 것이 내게 어떤 의미일까?’ 라는 의문을 천천히 던져보시기 바랍니다.
혹 마음속에 ‘완벽은 사회와 주변 사람들에게 한 사람으로 인정받는 일이고, 어떤 일에 실패하면 나는 실패자가 되어서 다른 사람들로 부터 인정과 존중을 받지 못 할 거야.’ ‘그렇게 유난을 떨었는데 실패한다면, 나를 지켜보던 가족이나 친구, 그 밖에 주위사람들이 나를 비웃을 거야.’ 라는 생각이 숨어있진 않으신지요. 눈앞에 주어진 일과 나의 삶, 미래, 행복이 동일시되고, 완벽하지 못한 결과, 기대에 반하는 결과는 실패, 불행, 소외와 동일시되면서 마음속에는 성공에 대한 강박과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피어납니다.
그러나 어떤 것을 완벽하게 해 내는 것 이란 그 자체로 삶의 의미가 아니라, ‘원하는 삶을 사는 것, 존중받고 사랑받는 것’ 이라는 궁극적인 목표를 위한 수단, ‘중간 목표’일 뿐입니다. 우리는 흔히 중간 목표와 ‘행복’이라는 궁극적인 목표를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중간 목표가 주는 찰나의 안식과 기쁨에 취한 나머지, 이를 전부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돈만 많이 벌면’ ‘어느 학교에 입학을 하면’ ‘취직을 하면’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게 되면’ 그러면 행복해질 것이란 생각을 하지만 실제로는 어떨까요. 어떤 목표에 도달하면 그저 다음 목표를 향하는 걸음이 시작될 뿐입니다.
그리고 사연자분께서 말씀 하셨듯이 완벽해야 한다는 생각이 지나치면 완벽하지 못함에 대한 두려움으로 이어져 지나친 불안을 가중시키고, 완벽하지 못할 우려 때문에 아무것도 시작하지 못하게 되기도 합니다. 잘하려는 마음이 지나쳐서 오히려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되는 안타까움입니다.
이에 대해 글쓴이님께 두 가지 말씀을 드리려 합니다.
첫 번째는 내 마음을 바라보는 관점입니다. 사연자분께서는, 예전에 제가 그랬던 것처럼 이렇게 완벽해야 한다는 생각에 드는 자신의 마음을 ‘문제’로 보고, ‘이러면 안 돼, 이러면 안 돼!’라고 스스로를 다그치고 계시진 않는지요? ‘그 일은 이제 생각하지 말자’ 라고 할수록 더 생각이 나고 ‘불안하면 안 돼’ 라고 스스로를 다그칠수록 더 불안해지며, ‘이제는 우울해지지 말자’ 라고 생각할수록 더 깊은 슬픔에 빠져드는 것이 사람의 마음입니다.
우리 마음에 떠오르는 감정이나 생각들은, 그것이 내 삶에 비록 좋지 못할 영향을 미칠 지언정, 그 자체는 자연스러운 것들입니다. ‘완벽하고 싶다.’ 는 것은 어떤 문제덩어리 생각이라기보다, 그 자체로는 자연스러운 생각인 것입니다. 누구나 주어진 일들을 완벽하게 잘 해내고 싶은 마음이 있지요. ‘더 이상 완벽에 집착하지 말자!’ 라고 마음을 먹는다면, 마음에는 당연히 ‘그럼 완벽하지 말자는 거야?’ 라는 반발심이 떠오르게 되고, 특히나 사연자님 처럼 완벽에 많은 의미가 부여된 상태라면 그러한 반발심이 더 심해져, 더욱 더 완벽해야 한다는 생각과 불안에 빠져들게 될 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나는 왜 자꾸만 완벽하려고 할까. 참 문제야. 이제는 그만해야겠다.’ 라는 생각 대신에, 단지 ‘누구나 그렇듯이, 나도 다른 이들에게 인정받고 사랑받고 싶었던 거구나. 내가 잘 해낼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싶었을 뿐이구나.’ 라고 완벽하려는 생각을 있는 그대로 따뜻하게 받아들여주시면 어떨까 합니다.
두 번째로, 완벽을 바라는 마음이 애초에 무엇을 위한 것이었는지를 되새겨 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나는 완벽하고 싶었던 것이 아니라, 행복한 삶을 살아가고 싶었던 거야. 그런데 어느 시점부터는, 완벽하지 않으면 불안한 마음 때문에 정작 왜 완벽하려고 했었던 지를 조금 잊었던 것 같아.’ 라고, 마음의 속도를 잠깐 늦춰 보는 것입니다. ‘잘 하려는 마음이 내 삶에 무조건 나쁜 건 아니고, 실제로 좋은 결과들로 이어졌기도 했어. 그렇지만 그것 때문에 불안이 심해져서, 정작 중요한 것들도 시도를 하지 못하고 있어. 완벽하지 못해 불안한 마음을 넘어, 내가 진짜로 원하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라는 생각을 찬찬히 떠올려 보시면 어떨까 합니다.
한 가지 비유를 드리겠습니다. 사막 한 가운데를 갈증 속에 해매다 며칠 만에 오아시스를 발견했다고 가정하겠습니다. 우리는 물을 어떻게 마셔야 할까요? ‘완벽하게?’ ‘팔과 손의 각도를 잘 계산하여?’ ‘가장 적절한 방법으로?’ 그보다는, ‘그냥’ 마셔야 할 것입니다. 살아가면서 우리가 해내야 할 많은 일들이 이와 같은 이치로 이루어집니다. 주어진 시간과 주어진 여건 아래에서, 굳이 ‘완벽히 잘 해내야 해!’ 라며 나를 독려하지 않아도,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노력할 뿐입니다.
제 개인적인 경험에서 우러나온 팁을 드리자면, 혹시 마음 안에 ‘보란 듯이 성공하려는 마음’ 이 있으시다면 이를 내려놓으시면 좋겠습니다. 당장 오늘 하루 동안의 나의 마음을 돌아보면, ‘다른 사람이 나와 나의 삶을 어떻게 볼 지’ 에 대해서 하루 종일 고민하지만, ‘다른 사람의 삶이 어떤지’ 에 대해서는 잠깐의 흥미를 기울일 뿐 이내 잊어버렸음을 알 수 있습니다.
‘보란 듯이’ 란 말 앞에는 ‘타인에게’ 라는 말이 숨겨져 있는데, 사실 내 인생은 타인에게는 흘러가는 가십거리일 뿐, 나만큼 내 삶을 주의 깊게 지켜보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아주 가까운 친구나, 심지어 가족이라 할지라도 말입니다. 여러 주위 사람들, 그리고 사회의 시선을 모두 만족 시킬 만한 삶을 일궈내는 것은 상당히 까다로운 일이지만, 나만의 만족을 구하는 삶을 찾아가는 일은 그보다는 한 결 가벼운 일입니다.
완벽을 위해 노력하는 마음은, 그 정도만 잘 다독인다면 ‘원하는 삶을 위해 열심히 노력할 수 있는 마음’, 내게 행복을 가져다 줄 마음이 될 수 있습니다. 지나치게 완벽에 몰두하는 마음을 돌아보고, 이를 따뜻이 다독여주며, 애초에 내가 완벽을 바랐던 이유인 ‘진짜 내가 원하는 삶의 모습’ 을 떠올리고 이를 향해 나아가는 하루하루를 보내 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사연자분의 앞날에, 사연자분께서 바라시는 소소한 삶의 모습들이 들꽃처럼 가득히 피어나시기를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