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두의 마음 편지
첫째 아이가 자폐 진단 받을 때는 둘째를 생각하지 않고 이 아이만을 잘 키우자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아이가 먼저 세상을 떠났어요.
논문을 찾아보니 첫째아이가 자폐일 경우 형제 자매도 자폐일 가능성이 높다고 합니다.
혹시.......첫째 아이가 자폐라 둘째 계획을 보류하거나 포기하는게 맞나요? 정말 미안한게 엄마가 첫째 아이에게 아픈 몸을 줘서 미안한 마음뿐인데 혹시나....생기지도 않은 둘째가 아플까봐 미안할 따름 입니다.
하필 논문이나 자료들에서는 유전 가능성. 형제자매시 발병 가능성이 너무 크다고 하니 절망적입니다. 혹시라도 저랑 비슷한 생각을 하셨거나....아니면 희망적인 이야기라도요...ㅜㅠ
찾아보니 형제자매가 둘다 자폐인경우가 있어서 낳고 또 걱정할까봐요. 임신기간 및 아이가 조금만 발달이 늦어도(만3세까지?) 거의 4년인데 그 기간을 못 버틸까봐요......
첫째때 느낀 감정은 죽음은 두렵지가 않은데 죽음에 가까워지는 것 같은...그 죽을꺼 같은 감정과 슬픔이 힘들었어요. 신랑은 둘째를 원합니다.
두두의 마음 편지)
안녕하세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이두형입니다.
말씀에 앞서, 아가의 행복을 진심으로 기도해 드리고 싶습니다. 험한 세상보다 훨씬 더 아름답고 평안한 곳에서 평온하고 행복한 마음으로, 잘 지내고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사연자분, 그간 너무도 힘드셨을 것 같습니다. 어떤 말로도 위로가 되지 않겠지만, 글쓴이님의 마음을 진심으로 위로해 드리고 싶습니다.
정신과 의사로서 드릴 수 있는 이야기는 불편한 사실들입니다. 자폐는 유전적 성향이 강한 질환이고, 연구에 따르면 자폐아동의 형제자매의 경우 말씀 주신것처럼 자폐 이환 확률, 그리고 다른 선천적 질환 및 학습관련 질환의 발생 확률이 증가하는 것으로 보고됩니다.
또한 어머니가 출산을 한 후 충분히 회복하는 기간을 두지 못해 모체의 건강이 손상된 상태, 그리고 많은 스트레스 역시 태아의 건강에 좋지 못한 영향을 끼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과학적 사실 외에, 저 역시 한 아이의 부모로서, 어려운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사연자님 부부께 아이란 어떤 의미일까요?
아이를 낳고 기르는 것이 부부를 더 불행하게 만들 것이라 예상하고 출산하는 부모는 없습니다. 대게 우리는 아이를 키우는 행복, 아이가 부모에게 선사하는 기쁨을 상상하며 아이를 가지고 또 낳습니다.
그러나 양육은 기쁨으로만 가득한 과정이 아닙니다. 부담스러운 책임과 의무가 가득합니다. 선천적으로 몸이 약할 수도 있고, 자주 아플 수도 있고, 학습 능력이 떨어질 수도 있습니다. 부모와 갈등을 빚을 수도, 비행으로 가슴을 아프게 할 수도 있지요. 혹은 아이가 당하는 억울한 일로 인해 마음이 찢어지는 아픔을 겪기도 합니다.
그래서 사연자님 부부께 아이란 어떤 의미인지를 여쭈어 보았습니다. 첫 아가의 빈 자리를 메우고 싶은 마음이 큰 것인지, '어떤 아이라도' 내 아이이기에 그를 낳고 키우는 것이 어떤 행복과 불행을 떠나 내게 중요한 삶의 의미인 지를 생각해 보시면 어떨까 합니다. 감히 제가 아이를 다시 가지시는 것이 맞다, 틀리다를 논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제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사연자님 부부 두 분의 마음이 만나는 지점을 찾는 것입니다. 부부가 함께 아이를 간절히 원하고 잘 키우려는 마음을 가득히 시작해도, 양육이라는 현실은 녹록지 않고 고됩니다. (아이의 예상치 못한 아픔을 포함하여) 생각하지 못한 일들로 눈물짓는 날들이 있을 지도 모릅니다. 힘듦이 예상되니 무조건 피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남편분의 마음과 생각은 어떤 것인지, 나의 생각과 마음은 어떤지에 대해 지레 짐작하기보다 함께 깊이 이야기를 나눠 보시면 좋겠습니다.
아이가 더없는 삶의 기쁨과 의미를 주는 것도 사실이지만, 저는 반드시 부부에게 아이가 있어야 행복하고 의미있는 삶을 살아갈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만 부부가 어떠한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아이를 간절히 원하고 또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다면, 그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더라도 함께 헤쳐나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역으로, 두 분 중 한 분이라도 심적으로, 혹은 체력적으로라도 이를 충분히 감내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시다면, 이는 어쩌면 또다른 불행의 씨앗이 될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니 세상의 기준, (가족, 배우자를 포함한) 타인의 기준이나 원하는 것 을 잠시 내려두고, 진정으로 지금 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 어떤 것이 행복인지를 먼저 생각해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옳고 그름은 없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고민하고 생각한 바를 바탕으로 배우자분과 깊이 이야기를 나눠보시고, 부부에게 가장 행복이 되는 선택을 하시기를 기원드립니다.
아이가 함께이든 그렇지 않든, 두 분 만의 행복과 평안이 피어나시기를 기도 드립니다.
(사진 출처: pixaba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