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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돌림의 아픔, 자꾸만 제 잘못 같습니다.

두두의 마음 편지

by 아는 정신과 의사


따돌림의 상처가 지워지지 않습니다.
그 과정에서 제가 잘못한 부분들이 떠오르고
이런 상처를 제가 자초한 것만 같아 제 자신이 싫어집니다.

해야할 일들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 아픔과 생각들로부터 벗어날 수 없어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조언을 구합니다.





두두의 마음 편지)


안녕하세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이두형 입니다. 우선 따돌림에 대한 제 생각을 먼저 전해드리고 싶어요.

우리는 모두 완벽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과 함께 잘 지낼 수도 없습니다. 만약 그것이 가능하다면 정치란 과정이 존재할 이유가 없겠지요. 세상에 존재하는 사람의 수만큼 가치관의 수가 존재하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이 서로 잘 어울릴 수 없고, 그럴 필요도 없습니다.

다만 성향이나 가치관, 생각의 과정이 다른 이들이 함께 생활하다 보면 마찰이 발생하기도 하고, 오해가 빚어지기도 하며, 갈등으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는 서로 다른 마음을 잘 조율하여 잘 지내보려는 선택을 할 수도 있고, 서로 업무적인 필요만을 나누는 선택을 할 수도 있으며, 가장 마지막에는 서로를 피하는 선택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따돌림이라는 것은, 내가 느끼는 대인관계 상의 불편함의 이유를 다름이 아니라 ‘상대방의 틀림’ 으로 온전히 규정해 버리고, 그것을 빌미로 나의 불편함을 외현화해 상대에게 쏟아내는 폭력입니다. 더군다나 다수의 여론을 형성하여 굳이 ‘상대방에게 최대한 폭력을 가하려는 형태’ 인 따돌림은 어떠한 논리로도 옹호되기 힘든 심각한 폭력입니다.

따돌림의 주체는 자신의 폭력을 정당화하기 위해 피해자의 부족한 부분을 늘 지적합니다. 피해자가 아무런 흠결이 없고 가해자는 부족한 점 투성이라는 뜻이 아닙니다. 따돌림을 당하는 이에게도 물론 부족한 부분이 있을 것이지만, 이는 가해자도 마찬가지라는 의미입니다. 따돌림을 당하는 피해자에게 미흡한 점이 있다는 것은 결코 따돌림의 이유나, 그 행위를 정당화 할 수 있는 수단이 될 수 없습니다.

장황하게 말씀을 드린 이유는 글쓴이님께서 따돌림을 받았던 이유를 나 자신에게서 찾고 있으실 것 같아서 입니다. 우리들의 마음은 보통, 외부로부터 감당할 수 없는 슬픔과 아픔이 주어졌을 때 이러한 고통을 유발한 ‘나의 잘못’ 을 찾으려 합니다. 외부의 요인은 내가 통제할 수 없지만, 나의 잘못은 내가 통제할 수 있을 것이란 믿음 때문입니다.

그러나 따돌림으로 인해 그렇게 크나큰 고통을 받았던 것은 내게 일어난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러한 사실이 나로부터 비롯되었다는 생각을 반복하면 할수록, 나 자신을 사랑하고 신뢰하는 것은 어려워집니다. 그토록 아픔을 준 주체가 바로 내가 되기 때문입니다.

다음의 생각을 진심으로 믿으실 수 있는 지를 한 번 되돌아보시기를 바랍니다.

‘나는 행복하기를 원한다.’
‘나는 행복하기 위해 노력하고 싶고, 그럴 자격이 있으며, 그럴 능력이 있다.’

사람은 자신에게 이득이 되는 행위를 하고, 손해가 되는 행위를 하지 않습니다. 과거의 아픔에 대해 자꾸만 떠올리고 고민을 반복하는 것은, 이러한 행위에 ‘숨은 이득’ 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어떤 문제를 마주했을 때, 이 문제에 대해 분석하고 고민하여 해결책을 찾으려 합니다. 그리고 마음에도 같은 공식을 적용합니다. 즉 과거의 나의 잘못을 복기하고, 이러한 실수를 반복하지 않음으로써 ‘다시는 이러한 아픔을 겪지 않겠다.’는 마음의 요구를 충실히 수행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내 마음의 고통이라는 ‘문제’ 를 해결하고, 현재의 삶의 문제도 풀어갈 수 있는 해결책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이러한 생각을 반복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는 잘 작동하지 않습니다. 과거를 바꿀 수 있는 방법은 없고, 그 때의 아픔을 되돌아가서 없앨 수 있는 방법도 없습니다. 또한 힘들 때의 생각에 빠져든다고 해서 힘들었던 원인과, 이를 반복하지 않을 해결책을 명확히 찾을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과거에 경험했던 따돌림의 아픔들은 ‘내 잘못에 대한 대가’ 라기 보다는, ‘사고’ 를 경험한 것에 가깝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연자 분께 다음과 같은 말씀을 전해드리고 싶습니다.

우선 과거, 그리고 그 때의 나의 잘못에 빠져드는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보아주시고, 그렇게 흘러가는 마음을 이해해 주시기를 권해드립니다. 그런 마음은 내 마음이 병들어서는 아닙니다. 단지 나는 행복하고 싶고, 과거의 고통을 다시 겪고 싶지 않았을 뿐이며, 그 방법으로 그때의 기억과 나의 잘못을 찾고 이를 해결하려 했을 뿐입니다. 단지 그러한 방법이 내게 행복을 가져다주지는 않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누구나 그렇듯이 나 역시 완벽하지는 않았다는 것, 그러나 완벽하지 못한 것이 잘못은 아니라는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시면 어떨까 합니다. 과거의 아픔이 나의 잘못이 아니었음을 굳이 확인할 필요는 없습니다. 단지 그런 사고와도 같은 과거의 상처로 인해 마음속에 아픔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지금, 여기에서, 이러한 내가 원하는 삶은 어떤 것이고, 어떻게 그에 다가갈 지에 대해서 생각을 해 보시면 좋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앞서 말씀드린 대로, 한 번 되새겨 보시면 좋겠습니다. 마음의 고통을 통제하고 싶은 마음에 아픔의 원인이 될 만한 나의 잘못을 찾고 있진 않았는지. 그리고 그러한 시도가 나 스스로가 나를 미워하는 것으로 이어지진 않았는지. 그리고, ‘나는 언제나 행복하고 싶었으며, 비록 잘 되지 않을 때도 있었지만 이를 위해 노력해 왔다.’는 것은 사실이 아닌지.

대인관계의 아픔은 부족한 나를 원인으로 하여 도출된 결과라기보다, 각각이 모두 다른 생각과 가치관을 가지고 함께 살아가는 인간이 살다 보면 경험할 수밖에 없는 숙명과도 같은 현상입니다. 사연자분은 아마도, 심지어 그렇게 아픔을 경험하던 그 때에 마저도, 행복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그 때의 최선의 선택을 하려 노력하셨을 것입니다.

아픔이 자꾸만 떠오르고 그 아픔으로부터 벗어나려 생각을 반복하는 것, 나의 잘못을 복기하는 것 역시, 결국 그러한 아픔을 마음속에서 완전히 지우고 행복하고픈 마음에서 이루어지는 과정일 것입니다. 그런 과정이 일어나는 것이 내가 부족하다거나, 마음이 병들었다는 증거는 아니며, 단지 그러한 방법이 나의 바램에 효과적이진 못했을 뿐입니다.

이러한 부분들을 돌아보시며 지금의 마음을 조금만 더 이해해 주시고, 스스로를 안아주실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이를 통해 마음에 조그마한 여유가 깃든다면, ‘아픔이 해결된 후에 생각하자.’ 고 미뤄두던, 내가 원하는 삶으로 향하던 한 걸음을 내딛어 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사연자분의 앞날에 평안과 행복이 깃드시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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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pixab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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