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선생님 글을 통해 많이 감사하고 도움받고 있습니다. 저는 50대이고요, 작년부터 지금까지 1년째 심리상담을 받고 있으며 불안과 갱년기 증상으로 가정의학과에서 처방한 갱년기 약을 먹은지 4개월 정도 되었습니다. 약 3년 동안은 번아웃증후군과 우울증으로 정신건강의학과에 다녔었습니다. 주치의가 해외연수를 가면서 약을 중단했고 괜찮았는데 또 점차로 2018년 대인관계와 나 자신의 무능력함을 느끼면서 점점 불안증세가 심해져서 정신과 약을 먹을까 하다가 계속 약으로만 해결할 일이 아니다 싶어서 작년부터 정신분석심리상담을 받고 있습니다. (약과 심리상담을 병행하면 제일 좋을 것 같기는 한데 아직은 상담치료만 하고 있어요)
선생님의 글을 읽으며 특히 도움 되었던 것이 “내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를 생각해보라”는 말씀이었습니다. 불안한 나를 왜 그러는 걸까? 하고 원인을 찾으려기 보다는 그래서 정말 내가 원하는 게 뭐지? 그걸 행동으로 옮기는것! 그래서 몇번 성공적인 적용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게 쉽지 않은것 같아요 계속 되는 훈련이 필요한것이겠죠? 특히나 기력이 약하고 지적, 육체적 노화 상태에 있다보니 자꾸 까먹고 습관대로 생각하고 고군분투중입니다.
특히, 문제에 봉착했을 때 마다 제가 원하는것이 무엇인지 잘 모르거나, 원하는게 실현가능하지 않은 것을 원하거나, 내가 원하는것이 잘못된것일수도 있다는 저에대한 불신등.... 또 문제가 발생하더라고요... 저 자신에 대한 밑바닥부터 올라오는 불신, 비하, 존중해주지 못하는 말들이 떠올라서 너무 피곤해지고 지레 포기하고 잠만 자게 되는것 같아요. 그래도 심리상담사의 도움으로 한 가지씩 들여다 보고있긴 한데요..... 아무튼 너무나 힘이 듭니다.
그런데 올 1월, 제가 컴퓨터를 잘 못해서 프로그램을 배우기 시작했어요. 집에와서 숙제는 하는중에 기능이 마음대로 안돼고, 머릿속이 캄캄하게 잘 모를때 마다 화(분노같기도 하고, 안으로 부터 뜨거운 열 같기도하고요)가 머리로 확 올라오면서 온몸으로(특히 등쪽부터 옆꾸리 팔쪽으로 퍼져나가는것 같이)퍼지면서 ”따끔 따끔거리는 통증”이 느껴지기 시작했어요.
그 이후 왜 이러지? 따끔거릴때 공통점을 관찰해보았더니요...제가 ‘지금 내가 이러면 안돼는데... ‘라고 생각을 한다든가, 열받는 큰아이(큰아이와 관계가 너무 안좋아서 죄책감있고 미움도 있는 상태)생각을 한다든가, 남편때문에 불안한 생각이 확 든다거나, 내가 해야할 일을 못하는 내 자신을 발견했다든가... 뭔가 제가 통제하지 못하고, 특히 제자신에 대해서 화가 날때였습니다.
열이 몸(등 중앙에서 바깥)쪽으로 발산되는게 느껴지면서 전체적으로 압정으로 콕콕찌르는 따끔거리는 통증이 동반되더라고요... 벌써 2개월째이고 하루에도 몇번씩 이 증상이 나타납니다. 그래서 통증의학과에 갔는데도 척추신경이 스트레스로인한 근육압박으로 아플수있다는데 특별한 처방은 없었어요.. 분명히 이게 저의 스트레스와 관련있는것 같은데 정신과에 가야 하는걸 까요? 정신과 전문의이신 두두선생님께 이 증상을 어떻게 하면 좋을찌 여쭤봅니다.
두두의 마음 편지)
안녕하세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이두형입니다. 그간 여러 증상과 그로 인한 불편함이,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과 나 자신을 위해 얼마나 노력해 오셨는지 사연을 통해 깊이 전해집니다.
우선 몸의 아픔에 대해서 먼저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우리는 다음과 같은 도식에 익숙합니다. 통증은 몸이 고장난 신호다. > 그러므로 통증의 원인인, 고장 난 신체 부분을 찾아내고 이를 고치면 통증은 멈출 것이다.
그러나 원인을 찾을 수 없는 통증이 종종 존재합니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신체의 고장 난 부분이 발견되지 않는' 통증입니다. 많은 분들이 속이 아파서, 어깨가 결려서, 두통이 심해서, 그 밖에 여러 이유들로 병원을 찾고, 할 수 있는 모든 검사를 시행하지만 특별한 원인을 발견하지 못하곤 합니다.
'검사결과는 정상입니다. 뚜렷한 이상은 없습니다.' 라는 말은 통증이 없다는 말과 같은 의미가 아닙니다. 통증은 분명히 실재합니다. 그리고 이상이 없다는 말은 보통은 좋은 의미겠으나, 이러한 경우에서는 오히려 환자를 더 불안하게 합니다. 왜냐하면, 이렇게나 아픈 나의 몸에서 어떤 문제가 발견된다면 '아, 이것 때문에 그렇게까지 아팠구나. 이제 이걸 치료하면 되겠지' 라는 생각이 들 것이나, 특별한 원인이 발견되지 않았다면 '나는 분명히 이렇게까지 아픈데, 왜 이상이 없지?' 라는 불안으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생각이 나아가면, 왠지는 모르겠지만 나 자신 전부가 이상한 사람으로 느껴지기도 하고, 이렇게나 고통스러운 증상이 애초부터 부정당한 듯한 절망감이 느껴지기도 하며, 끊임없이 어딘가가 잘못되었을 지도 모른다는 초조함에 시달려야 할 수도 있습니다. 이에 더해 주변으로부터의 오해, 즉 '별 문제도 없는데, 괜히 아프다고 한다.' 는 의심의 눈초리를 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통증에 시달리는 환자들의 상당수가 현대의학적 검사, 검진으로 그 원인을 특정할 수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즉 많은 환자가 실제로 통증에 시달리면서도 명확한 원인을 찾을 수 없다는 것이지요. 보통 이럴 때 우리는 다음과 같이 생각합니다. ‘이렇게 아픈데 이상이 없다니, 그건 아마 현대의학의 한계일거야. 그리고 반드시 원인을 찾아내고, 그 고장을 고쳐야지만 이 증상이 좋아질 거야.’
통증을 비롯한 신체 감각에 대해 우선 이해를 할 필요가 있습니다. 통증은 기본적으로 ‘위험 신호’ 입니다. 뇌의 통증을 느끼는 부분에서, 신체로부터 발생한 통증 신호를 느낄 때 우리는 아프다고 느낍니다. 그런데 만약, 특별한 문제가 없는데도 우리의 뇌에 통증 신호가 전달된다면 어떨까요?
‘환지통’ 이라는 말을 들어보셨는지요? 절단되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팔 다리가 아픈 증상입니다. 절단된 신체 부위를 관장하던 뇌의 부분에 통증 신호가 발생해서 생기는 현상입니다. 이렇듯 뚜렷한 원인을 찾을 수 없는 통증 역시, 그 기전 상 얼마든지 발생할 수 있습니다.
사연자분의 신체에는 무조건 아무 이상이 없으나 통증만 발생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자연자분이 아프실 이유가 없다거나, 그 고통이 거짓이라는 의미는 더더욱 아닙니다. 다만 ‘특별한 이상 원인을 찾을 수 없는 통증’ 이 얼마든지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이고, 이러한 통증을 우리가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에 대해 이야기를 드리고 싶습니다.
해결되지 않는 마음 속 갈등, 힘든 생각과 감정들이 억눌리면 신체적인 증상으로 발현될 수 있다는 것은 아주 오래 전 부터 관찰되어온 현상입니다. 뇌신경학적 발달로 인해, 이러한 부분에 여러 통증 회로, 뇌 속 신경전달물질들의 교란이 관여한다는 것이 밝혀지고 있습니다. 이미 경험하셨는지는 모르겠지만, 해결되지 않는 갈등 같은 스트레스 상황을 겪으셨을 때 증상이 더 심해지진 않으셨는지요. 쉽게 말하면, 마음이 아프다 보면 몸도 (꼭 고장 나지 않더라도) 아플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물론 통증은 그 자체로 고통이고 우리를 힘들게 합니다. 이러한 통증을 뿌리 뽑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마음이 힘들어 생기는 통증의 신체적 원인을 찾고 이를 없애고자 하는 시도는 종종 실패로 돌아갑니다. 이에 대한 명확한 원인이나 진단을 규명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고, ‘명확한 원인도 치료도 없는 신체증상을 어떻게든 없애야 한다고 생각하는 마음’ 그 자체가 우리에게 큰 스트레스가 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상황을 우리의 삶으로 확장해 볼 수도 있습니다. 글쓴이님께는 삶을 통제하고, 삶에서 일어나는 일들 (하시는 업무들, 가족 분들과의 관계 등...)이 나의 의도대로 이루어지는 것이 매우 중요해 보입니다. 물론 세상을 살아가는 모두가, 삶이 자신의 뜻대로만 이루어지기를 바라며 살아갑니다. 하지만 다음의 두 가지 부분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고 싶습니다.
하나는, 삶이란 애초부터 내가 원하는 대로만은 결코 이루어질 수 없다는 부분입니다. 특히 가족을 포함한 타인과의 관계에서 더욱 그러합니다. 우리의 하루, 삶에 관여하는 변수들은 거의 무한대에 가깝고, 모든 사람들의 가치관은 모두 다릅니다. 그러한 변수들이 모두 나의 생각대로만 이루어지기를 기대하는 것은 욕심이고, 만나는 사람마다 나의 마음만 같기를 바라는 것도 무리입니다.
그렇기에 ‘내 생각대로만 관계, 미래가 이루어지길 바라는 마음’ 은 애초에 실현 불가능한 이상에 가깝습니다. 그런데 만약 마음 속 깊이, 내가 생각하는 대로만 삶이 흘러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그렇지 않을 때 마다 심한 불안과 스트레스를 겪어야 할 것입니다. 혹, 글쓴이님께서 그러한 마음을 경험하고 계신 것은 아닌 지를 돌아보시면 좋겠습니다.
두 번째는, 삶이 내가 원하는 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것과 나 자신의 잘못 또는 스스로의 부족함을 자동적으로 연결 짓는 마음이 없는 지에 대한 부분 입니다. 불안이 심할 때 우리는 이러한 원인을 나 자신의 미흡함과 부족함으로 생각하려 하며 이를 찾고 교정하려는 시도를 하기 쉽습니다. 왜냐하면, 타인과 나의 외부 세계는 나의 의도대로 통제하기 힘든 반면, 나 자신은 비교적 나의 통제아래 두기 쉽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앞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삶의 모든 부분이 나의 뜻대로만 이루어지지 않는 것은 나의 잘못이나 부족함 때문이라기보다는, 본질적인 삶의 속성과 가깝습니다. 내 뜻대로, 내 마음 대로, 내 생각대로만 이루어지지 않는 삶 앞에서 지나치게 나의 잘못, 나의 부족함에 대한 생각에 빠져들고 스스로의 마음을 더욱 힘들게 하는 건 아닌 지를 한 번 떠올려 보시면 어떨까 합니다.
명확한 통증의 원인, 그리고 이를 해결할 수 있는 즉각적인 쪽집게 식의 방법을 전해드릴 수는 없어 저도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다만, 긴 글을 요약하자면, 아프다는 건 내 몸 한 구석이 고장이 났다는 신호일 수도 있지만, 마음의 아픔이 표현되는 신호일 수도 있습니다. 이를 있는 그대로 알아주시고, 몸이 아플 때는 그 이유와 해결책을 강구하려는 생각에 지나치게 빠져드는 대신 ‘그만큼 지금 내 마음이 힘들어 하는가 보다’ 라고 알아주시면 어떨까 합니다.
그리고 ‘아픈 원인은 무엇일까. 안 아프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의 관점에서 조금은 벗어나, ‘통증을 포함해 모든 삶이 나의 통제 아래 있어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불안해지곤 하던’ 마음 자체가, 애초부터 내가 삶에 지나친 요구를 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 지를 한 번쯤 살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조금 가벼운 마음으로, 스트레스를 받으면 몸이 좀 아파지기도 하고, 가족들이 내 말을 잘 안들을 때도 있고, 그렇게 매번 삶이 마음 같게만 흐르지는 않더라도, 사연에도 적어 주셨듯이 그저 내가 원하는 삶을 위해서 지금 할 수 있는 가장 작은 일을 차근차근 해 나가시면 어떨까 합니다.
그러다 보면 마음이 한 결 가벼워지실 수도, 어쩌면 지금 사연자님을 괴롭히는 통증도 차츰차츰 줄어갈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통증을 줄이기 위해서 이렇게 해야 한다는 또 다른 방법, 반드시 지켜야 할 의무를 말씀드리는 것은 아닙니다. 애초부터 삶이 완벽할 수 없음을 느끼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저 나의 삶을 조금은 가벼운 마음으로 한 걸음 한 걸음 살아가다 보면 한결 편안한 마음과 신체가 그 삶에 깃들지도 모른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아무쪼록 도움이 되시길 바랍니다. 사연자분의 삶이 늘 완벽하시기만을 기원하지는 않겠습니다. 다만 모든 것이 마음대로만은 되지 않을 지라도, 한 결 가볍고 평안하며, 또 행복한 하루하루가 이어지시기를 진심으로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