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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는 정신과 의사 Sep 30. 2018

스스로가 싫다. 세상이 가혹하다. 미래가 두렵다.

(2) 자동적 사고의 교정

https://blog.naver.com/dhmd0913/221363924308(

(1편 링크, 브런치에도 있습니다.)


 ( 사진 출처: https://pixabay.com)


  어떻게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 옳을 까. 정답은 없다. 정답은 그 사람만의 정답일 뿐이다. 하지만 오답은 있다. 처한 환경, 당면한 일, 타인의 의도 등에 대해, 인지 왜곡을 통해 굳이 부정적으로 곡해하는 것은 틀린 답이 될 수 있다. 이를 과감히 '오답'이라 단정하는 것은 1) 이러한 시각이 사실과 벗어나 있는데, 2) 심지어 스스로가 원하는 생각의 방향이 아니기까지 하기 때문이다. '저 사람은 나를 싫어하는 구나' '이건 시도해 봤자 어차피 잘 안될 거야' '이번에도 왠지 시험에 떨어질 것 같아' 정말 그럴까?

 인지 왜곡을 다루기에 앞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전 글에서도 강조한 바와 같이) 이는 억지로 긍정적인 시각을 주입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대신 왜곡된 인지 구조가 '실제보다 더' 삶을 부정적으로 속삭일 수 있기에, '굳이 더욱 부정적으로는 보지 않도록' 한 번 더 숙고해 보자는 것이다.

 '오늘 유독 걔의 안색이 좋자 않다. 요즘 따라 나를 볼 때 마다 그랬다. 아침에 일부로 신경 써서 반갑게 인사했는데, 본 척 만 척 하고 지나갔다. 불쾌하기도 하고, 미움을 산 것인지 걱정된다. 최근에 조금 이야기가 잘 안통하는 느낌이긴 했지만 그동안 사이는 꽤 좋았다. 아니, 나만 그렇게 생각했던 건가? 앞에서는 반갑게 웃고 지냈지만, 뒤로는 사실 나를 싫어했던 걸까? 서로 좋은 사이라고 생각했던 건 혼자만의 착각 이었구나, 오전 내내 마음이 무거웠다. 그리고 오후에 동기로부터 그 친구가 오래 만나왔던 인과 헤어졌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흔한 경험의 예다. 사람은 보고 싶은 대로 본다. 첨언하면, 사람은 보고 싶은 대로 보며, 볼 수 있는 만큼만 본다. 삶이란, 그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을 속속들이 파악하기엔 너무도 복잡하고 다면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아는 만큼만, 생각이 닿는 만큼만, 볼 수 있는 만큼만의 사실들로 전체의 삶을 판단해 버린다. 심지어 의식하기 힘들 정도로 짧은 시간 만에. 이러한 사고의 흐름은 지금까지의 경험을 바탕으로 짜여진 인지 구조를 바탕으로 한다.

  위의 예를 복기해 보자. 인사를 건넸는데 친구가 제대로 대꾸도 않고 지나쳐 버렸다. 이는 사건이다. 불쾌함, 불안, 걱정 등은 감정이다. 최근의 관계 양상, 말이 잘 통하지 않았던 때, 같은 여러 생각들도 꼬리를 물 듯 스쳐간다. 생각에 주목해 보자. '나만 친한 사이라 생각했던 건가? 사실은 나를 싫어했나?' 의문형으로 떠오르지만 은연중에 '사실로 인식' 하는 생각들이다. 이렇게 의식화되면 차라리 다행이다. 더 많은 생각들이 의식에서 감지되지 조차 않은 채, 더 깊은 마음의 수준에서 저절로 '옳다고 간주' 되어 처리된다. '그 친구가 나를 싫어하나? > 걔가 나를 싫어하는구나.' 거의 자동적이다.

 이렇듯 자동적으로 평가, 처리되는 생각들을 말 그대로 '자동적 사고' 라 한다. 자동적 사고는 의식화와 검증을 피해가는 경우가 많기에 위험하다. 보통 우리는 익숙하지 않은 일, 예컨데 차를 구입하거나 보험을 가입할 때는 꼼꼼하게, 요모조모를 따져보고 결정한다. 반면 일상적인 생각들은 잘 검토하지 않는다. 연인을 대하고, 친구를 사귀고, 가족과 대화하는 등의 평범한 (그렇지만 중요한) 일들에 대해서는, 미리 가지고 있는 익숙한 생각의 패턴으로 급히 결론을 내 버린다. 조금만 사고를 지연해서 곰곰히 복기하면 다르게 생각해 볼 여지가 있는 일들을, 부정적으로 판단할 소지가 많다. 특히 생각은 감정과 상호작용하기 때문에, 속상한 감정이 들수록 부정적으로 생각을 처리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상기의 예에서, 친구는 나를 싫어하는 것일까? 결론적으로는 아닐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실연 때문에 요 근래 제 마음이 아니었겠지. 하지만 그 사실을 알기 전, 아침에 인사를 잘 받아주지 않은 시점에서의 판단은 어떨 까? 그가 나를 싫어한다고 생각할 만한 이유들이 몇 있다. 하지만 '그동안 같이 어울리며 즐거웠다, 함께 보낸 시간이 꽤 된다,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눈 적도 몇 번 있다' 등등, 싫어하지 않는다고 생각할 이유들도 제법 있다. 급히 판단내리지 (사실 판단이란, 언제 내렸는지도 모르게 마음속에 이미 결론지어져 자리 잡고 있는 경우가 많다.) 않고 곰곰히 생각했다면 아마 고민이 되었을 것이다. 그가 나를 싫어하는 지, 싫어하지 않는 지.

  됐다. 여기까지만 왔다면 다 한 거다.

 달라진 게 아무것도 없는데, 뭘 했다는 걸까, 뭐가 다 됐다는 걸까. 자동적 사고, 풀어 쓰면 '마음속에 무심코 사실로 믿고 넘어가버리는 여러 가지 생각들'의 존재를 느낀 것으로 충분하다. 아, 살아가다 보니 나도 모르게 결론짓고 넘어가 버리는 것들도 있구나, 무심코 함부로 판단하곤 했었을 수도 있겠다, 하고 말이다.

 조금만 감정을 내려두고, 조금만 속도를 늦추어 생각들을 찬찬히 되짚어 보면 어떨까. '그는 나를 더이상 사랑하지 않는 게 분명해' 라고 생각하기 전에 잠깐만 멈추고 따져보는 것이다. 어차피 복기하지 않는 자동적인 생각들은 마음 속에서는 이미 100% 진실로 받아들여진다. 수 많은 변수로 점철되는 삶에서, 애초에 무조건적인 진실이라는 것이 존재할까? 결국 동일한 결론에 도달하더라도, 그것이 100%가 아니라 '90%는 사랑이 식은 게 맞는 것 같은데, 10% 정도는 아닐 수도 있겠다.' 라고 떠올려 볼 수 있다면 충분하다. 무조건 맞는 것을 대할 때 보다, 조금이라도 아닐 수 있는 것을 생각하는 감정의 농도는 훨씬 옅다.

 보통 우리는 우리의 생각을 확신할 만한 이유를 찾는 데 익숙하여 반대의 이유를 고찰하는 것을 등한시 하는 때가 많다. 특히 그 생각이 강렬한 감정 (사랑, 분노, 불안, 좌절 등)과 결부되어 있다면 더욱 그렇다. 그렇기에 마음이 어지러울 수록 때론 침착해야 한다. 호흡의 속도를 늦추고, 감정의 불길을 가라앉히고 찬찬히 돌아보는 것이다. 진짜 그런 걸까? 결코 억지로 좋은 쪽으로 볼 이유는 없다. 문득 떠오른 이 생각이 전부 맞는 걸까? 아무리 100% 다 옳은 것 같더라도, 1%라도 아닐 가능성은 없을까? 돌아볼 필요가 있다.

 조금 더 나아가 보자. 왜 이런 왜곡된 시각이 만들어지는 것일까. 부정적인 인지 구조를 형성하는 데 영향을 미치는, 좀 더 본질적인 흐름이 있다. 여러 자동적인 사고를 파생시키는 마음의 근원을 스키마 (schema)라 한다. '나는 사랑 받을 자격이 없다나는 무능하다',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일그러뜨리는 스키마의 가장 흔한 형태다.

 '시크릿'이라는 책이 한참 유행한 적이 있었다. 요지는, 바라는 바와 원하는 모습을 상상하다 보면 실제로 그렇게 된다는 것이다. 어릴 때 처음 이를 접했을 때는, 솔직히 흘려들었다. 오컬트로 보였다. 하지만 지금 복기하면 상당히 일리가 있다. 나는 사랑 받을 자격이 있다, 나는 해낼 수 있다 고 '진심으로 믿는 것' 은 의외로 어려운 일이며, 그러한 마음은 삶에 큰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스스로가 사랑 받을 자격이 없는 이유, 무능한 이유는 귀신같이 찾아내고 납득하지만, 그 반대의 이유는 찾으려노력하지도, 또 잘 믿지도 못한다. 그렇지 않은가.

 살다 보면 사랑받지 못하는 일, 미움 받는 일, 무능으로 인한 실패는 당연히 일어난다. 그러한 과거를 근거로 자신을 굳이 '그런 사람'으로 생각할 이유가 있을 까. 소위 사랑 받는 사람, 유능한 사람 들도 자주 미움 받거나, 실패한다. 스스로를 어떤 사람으로 간주할지는, 어쩌면 맞고 틀림의 문제가 아닌 선택의 문제일 수 있다. 삶의 여러 경험과 상관 없이 '나는 가치 있는 사람해낼 사람' 으로 믿어도 된다. 누구나 이를 비웃고 부정할 수는 있지만, 누구도 이를 막을 수는 없다. 과연, 이제까지 성공한 순간이 없기 때문에 (물론 이에 대해서도 고민이 필요하다. 정말 스스로를 긍정할 만한 상황이다 경험이 단 하나도 없었을 까?) 그렇게 생각하면 안되는 것일까?

 아니다. 실패는 실패 그 하나만을 증명할 뿐, 를 규정하지 못한다. 다만 생각은 스스로를 규정한다. 실패했지만 '아직 해내지 못했을 뿐이다' 라고 생각한다면, 다가올 기쁨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 된다.  실연했더라도' 안타깝게 이번은 인연이 아니었지만, 사랑 받을 자격이 없기 때문은 아니다' 라고 생각한다면, 다가올 진정한 연인을 기다리는 것이 된다. 스스로를 독려하고 부족한 부분을 개선하려 노력하는 것과, 부정적인 일부를 확장하여 자신 전체를 매도하는 것은 다르다. 오히려,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열망은 스스로에 대한 긍정을 먹고 자란다.

 부정적인 생각이 떠오를 때, 혹시 그것이 왜곡된 마음의 틀을 거쳤기 때문은 아닌지 돌이켜 보자. 강렬한 감정이 덮쳐 온다면, 무심코 그에 매몰되기 전에 혹시 스쳐간 왜곡된 생각은 없었는지 짚어 보자. 억지로 좋게 보려 하는 대신 그만큼 마음이 고생했구나, 힘든 일이 많았구나, 스스로의 지친 마음과 속상한 감정을 먼저 위로해 주자. 그리고 찬찬히 따져 보자.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고 결론 지을 만한 일인지를. 물론 세상은 자주 나를 괴롭힌다. 하지만 나 자신은 스스로를 괴롭히지 않고 보듬어 줄 수 있도록, 마음의 틀에 낀 성에를 조심스레 닦아 보자. 



*
다음은 흔히 관찰되는 자동적 사고의 예 들이다.

1) 과잉 일반화 (overgeneralization)
일부의 경우에 들어맞으면, 아주 조금만 비슷한 경우라도 들어맞는다고 생각한다.

2) 자기 참조 (self- reference)
스스로가 타인의 관심의 초점이며, 나는 불행의 원인이다.

3) 재앙화 (catastrophizing)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며, 해당 상황이 일어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생각한다.

4) 이분법적 사고 (dichotomous thinking)
모든 일을 한쪽 극단 또는 다른 쪽 극단으로 믿는다. (선과 악, 흑백 논리, 진영 논리)

5) 인과성의 영속성 가정 (assuming temporal causality)
예전에 진실이었던 것은 언제나 진실이다. (충분한 근거 없는 예측)

6) 선택적 추출 (selective abstraction)

실패나 좌절한 것만을 선택적으로 중요하게 간주하여 생각한다.

실패나 좌절한 것만을 선택적으로 중요하게 간주하여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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