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지나간다. 심장을 옥죄던 그 모든 일들도 여지껏 다 지나갔다. 지나가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웃었고, 또 찾아오는 고통에 다시 심장은 옥죄어 왔다. 마치 근육 운동 처럼 수축과 이완을 되풀이 했던 나의 심장은 분명이 강해졌을텐데,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절망하는 것을 보면 내가 강해져 온 것 만큼, 세상도 나를 그 이상의 강도로 몰아 부치고 있는 것으로 봐야 할것이다.
다 지나간다. 하지만 다시 온다. 인생은 그것의 반복이다. 웃고 울고 웃고 울고 하다 보면 어느덧 나의 마지막 날을 만나게 될 테고,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들은 한치의 오차도 없이 이 섭리를 받아들이는 것이 숙명이다. 웃음이 울음보다 조금이라도 더 많았다면 좋았을 것이겠지만, 그것은 절대량의 비교라기 보다는 그것을 내가 얼마나 섬세하게 느끼고 받아들였느냐가 더 큰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 기쁨에 민감하고 슬품에 둔감한 사람이 있고, 슬픔에 민감하고 기쁨에 둔감한 사람이 있을텐데 난 후자에 가깝다. 이것 또한 운명인지라, 받아들여야 한다. 50년을 살아도 쉽지가 않다. 기뻐할 일 투성이에서 슬퍼할 일 한가지를 찾아내는데 탁월한 능력을 가진 나는 어찌 보면 저주를 받은것과 마찬가지 인데 이 또한 크게 보면 지나간다. 크게 보자면 나의 한 인생은 그리 길지 않을 테니깐.
다 지나간다. 그리고 많이 지나 왔다. 남은 시간이 그리 길지 않고, 그 시간을 어찌 살아야 하는지 생각해야 한다. 후회 투성이 이고, 결국에 그 후회를 모두 만회할 수는 없겠지만 이 쯤되면 어떤 구조적인 개선이 필요한지에 대한 대안이 필요하다. 난 지금부터 내가 가진 것들에 감사하고 기쁨으로 충만한 삶을 살아가겠다는 선언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 선언은 살면서 수 천번도 더 했고, 그럼에도 선언은 선언으로만 존재할 뿐이다. 깨달음이란 생각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직접적인 경험으로만 가능하다.
다 지나간다. 지나갔다는 이유로 난 그것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지나온 수많은 시간의 결과이다. 지금도 지나가고 있는 이 시간을 그냥 흘려보내지 않기 위해 좀더 민감하게, 설령 그것이 슬픔에 대한 민감함일지라도, 민감하게 이 강을 건너자.
다 지나간다. 그리고 또 온다.
다 지나간다. 그리고 또 온다.
다 지나간다. 그리고 무언가 깨닫게 되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