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를 설계하는 디렉터 JOHN의 창업현장노트
난 회, 스시에 즐거움을 느껴본 적이 없었다.
내가 즐기는 방식이 잘못됐나? 싶어서 마니아들을 따라가 함께 즐겨봤지만 크게 달라지는 건 없었다. 그래서 한동안 나와 물고기 날것은 인연이 없었다. 그냥 내 입맛이 거부하는구나... 싶었다. 그렇게 살았다.
그러던 어느 날 함께 맛을 즐길 줄 아는 지인으로부터 이런 말을 듣게 됐다.
그 당시 대화의 주제는 '홍어'였는데, 난 도저히 홍어는 먹을 수 없겠다는 의견이었고 그런 나에게 그 지인은 그래도 가장 홍어를 잘하는 곳에서 먹어보고 판단해도 좋겠다는 말을 해줬다. 그 이유는 어쩌면 진짜 맛있을 수도 있는 메뉴인데 몇몇 맛없는 곳에서의 경험을 기준으로 단정 짓기엔 아쉬울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일리가 있었다. 그래서 스시도 가장 맛있는 곳을 다시 찾아봤다.
그래서 알게 된 신라호텔 '아리아께'.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있다. '아리아께'는 내게 스시에 대한 생각을 180도 전환시켜준 오마카세 집이다. 그날 이후로 지금까지 난 스시를 제법 잘 즐기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사실... 매번 스시먹으러 신라호텔까지 가기가 좀 불편해서 강남 인근 오마카세 잘하는 곳을 찾아보게 됐다. 발견한 '스시기요세'. 압구정에 있던 오마카세 집이었는데 아! 앞으로 강남에서는 여기로 가야겠다! 싶을 정도의 맛이었다.
그렇게 난 스시 오마카세를 즐기며 지냈다.
그로부터 3년 후...
도산공원에 오픈 준비 중인 오마카세 전문점 프로젝트를 만나게 됐다. '스시결'.
외식공간 프로젝트를 맡았을 땐 그 매장 오너와 메인 셰프, 그리고 내가 함께 미팅을 해야 한다. 난 외식공간 프로젝트의 정석이라 생각한다. 오너는 운영적인 측면에서의 입장을 메인 셰프는 메뉴와 주방 기술적인 측면에서의 입장을 그리고 난 디자인적인 측면에서의 입장을 함께 나눌 수 있기 때문이다. 이 포인트는 굉장히 중요하다.
얼마 전 어떤 프로젝트를 거절한 적이 있었는데,
프로젝트는 상권 / 입지 모두 완벽한 곳에 오픈하는 와인&다이닝 숍이었다.
나름 매력적인 프로젝트였는데 거절한 이유는 오너들 문제가 컸다. 메인 셰프도 없이 치프 소믈리에도 없는 상태에서 전문적이지도 않은 오너들이 자본만 많다고 자랑하기 바빴다. 진심이 하나도 안 느껴졌고, 장난 같았다. 물론 그런 오너들을 상대로 돈만 벌라고 치면 얼만든지 벌어 볼 수는 있다. 하지만, 문제도 많이 발생하게 된다. 그런 프로젝트엔 처음부터 Join 할 생각이 없다.
하지만, '스시결'은 달랐다.
역시 사업을 제대로 할 줄 아는 오너와 함께 메인 셰프가 미팅 자리에 등장했다.
OMG. 그런데 이런 인연이! 스시기요세에서 내게 스시를 잡아주던 셰프님이 아니던가! 이제부턴 '스시결'의 메인 셰프의 입장이었다.
역시 메인 셰프가 함께 참석한 미팅 현장은 뜨겁다.
셰프는 자신이 책임지는 주방 설비에서부터 동선, 그리고 스시 bar에 대한 이미지와 기능적인 것까지 이미 머릿속에 준비된 것들을 쭈욱- 쏟아냈다. 그러면 난 리스트업을 하며 현실적으로 피드백을 이어나간다. 물론 그 가운데 오너와는 예산과 일정들을 공유해가며 프로젝트를 정리해 나간다.
난 이런 식의 프로젝트 진행을 굉장히 좋아한다. 주먹구구로 일하는 것보다 프로답게 일하는 게 좋기 때문이다.
셰프는 당연히 스시 bar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
최상으로 관리한 자신의 재료와 손 맛이 만나 손님께 전달되는 가장 중요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이 프로젝트에서도 셰프는 이 부분을 끊임없이 강조했다. 어떤 마감재로 됐으면 좋겠고, 어떻게 됐으면 좋겠고... 등등. 뿐만 아니라 이 부분에서는 시각적인 것 외에 더 많은 계획들이 필요하다. 이를테면, 손님 쪽 테이블 높이는 몇으로 할 것인지, 깊이는 어떻게 할 것인지, 츠케다이(스시를 셰프가 올려놓는 곳)의 높이와 폭은 어떻게 할 것인지 등 최상의 맛과 환경을 위해서 고려해야 될 사항들이 많다.
어떤 사람들은 '이 정도까지 고려해야 돼? 과연 손님들이 다 알까?' 하겠지만...
스시 오마카세 디너의 경우 1인분에 20-30만 원까지 하기도 한다. 과연 대충 할 수 있을까? 숫자로만 보자면 카페 평균 객단가를 1만 원이라 했을 때 20배가 넘으니... 인테리어에서도 얼마나 공들여야 맞겠는가!
그 모든 것들을 고려해서 최종 결과물을 만들었다.
오픈 이후 난 가끔 가서 스시를 즐기게 됐다. 강북에 아리아께가 있다면 강남에 스시결이 있다고 생각할 정도다. 모든 고려사항을 잘 해결하고 나니 그곳에서 먹는 스시가 정말 더 맛있게 느껴진다.
스시 오마카세 집 프로젝트를 맡으면 또 하나의 즐거움이 있다.
평소에 자주 다뤄보기 힘든 고급 자재들을 다뤄 볼 수 있다는... 지극히 개인적인 즐거움이자 아마... 이쪽 일을 전문적으로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느낄 즐거움일 것이다. 스시결 프로젝트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실제로 스시결에 사용된 천연대리석은 몇 천만 원짜리다.
스시결 메인 이미지 Cut이라고 생각하는 사진이다.
저 홀 끝에 걸린 천연 대리석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마치 한 폭의 그림 같다.
인공적인 것보다 역시... 자연물은 아름다울 수밖에 없다. 천연대리석의 힘. 시공하면서 너무 어려웠다. 저렇게 큰 한 장짜리 천연대리석은 무게가 보통이 아니다. 더 조마조마한 건 천연대리석은 쉽게 파손된다는 점이다. 그냥 가볍게 모서리를 퉁- 부딪히면 바로 쪼개진다. 한방에 몇 천만 원을 날리 수 있는 순간인 것이다. 이 대리석을 외부에서 가지고 들어오고, 설치하는 날엔... 이 작업밖에 할 수 없다. 어떠한 돌발변수도 일어나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식음공간은 각종 인허가 사항과 접촉된다.
1층이 아니라면 그리고 규모가 30평형보다 크다면? 소방 완비 대상일 가능성이 높다. 아니 가능성이 아니라 무조건이다. 그런데... 이 소방 완비 대상은 식음공간 프로젝트에서 큰 복병이 되기도 한다. 내 해석관이기도 한데...
일단 소방규정은 절대적인 규정일 수밖에 없다. 화재로 인한 인명피해는 무조건 막아야 하니깐... 절대적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디자인적인 고려나 실용적인 고려가 될 수가 없다. 그냥 압도적이고 절대적이다. 디자인적인 입장에서는 비상구 표시등이나 유도등 화재 감지기 등이 눈에 밟히긴 하지만 없어선 안될 안전에 관련된 부품들이니... 꼭 설비해줘야 한다. 그래서 이런 소방 관련 규정들은 무조건 따라야 하는데 가끔 식음공간에 있어서는 손해인 경우들이 많다.
이를테면, 이왕 매장 분위기를 위해선 창을 다 막고 싶은데 소방 규정상 일정 면적의 창은 무조건 확보해야 한다. 또한 소방 규정 때문에 사용하고 싶은 자재를 일정 면적 이상 사용할 수 없다. 뿐만 아니라 2층 이상의 경우 소방 피난처가 마련되어 있어야 하는데, 좁은 매장의 경우 그 면적이 너무 아깝다...
경험이 많다면 이런 규정들을 적절히 잘 활용해서 매장 분위기를 뽑아낼 수 있다.
이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오너의 두 가지 요청사항이 있었다.
첫 번째는 매장이 어두운 톤으로 꾸며졌으면 좋겠다. 두 번째는 뭔가 다른 오마카세 매장보다 특별했으면 좋겠다. 사실 많이 어려웠다. 쉬운 듯 하지만 명확한 정답이 없는 요구조건이기 때문에... 그 답을 찾으려면 수차례 회항을 해서 다시 출발해야 한다.
매장을 어두운 톤으로 만드는 건 어렵지 않았다.
그냥 톤을 어둡게 빼면 되기 때문이다. 어려운 건 어두운 톤 안에서 스시 오마카세가 맛있게 느껴져야 하고, 신선하게 느껴져야 하고, 쾌적하게 느껴져야 했다. 해결 방법은 분명 조명인데... 조명도 경험이 없다면 굉장히 어렵다. 그래서 이번엔 과감하게 조명을 정리해 버렸다. 하나로...
위 사진 속에서 조명이 보이는가?
매장을 많이 다녀본 사람이라면 쉽게 알아차렸겠다. '바리솔' 조명을 사용했다. 그것도 천장 전체에.
사실 처음 기획했을 땐 확신이 없었다. 하지만, 막상 불을 켜니 아주 환상적이다. 약간은 도박성 시도였긴 하지만 시도를 끝까지 할 수 있게 지원해준 오너에게 감사하다.
이렇게 오너의 지원과 메인 셰프의 기술력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설계에 반영한 나까지 함께 힘을 합쳐 멋진 프로젝트를 완성했다. 현재 '스시결'은 고객들에게 아주 좋은 평을 받으며 운영되며 인정받고 있고, 2022년 올해 멋진 결과를 만들어 낼 것으로 보인다.
식음공간은 마냥 멋만 추구한다고 성공적으로 완성되는 게 절대 아니다.
프로젝트에 임하는 내 철학은 그렇다. 식음공간은 기술적인 부분과 실용적인 부분, 그리고 시각적인 부분이 적절히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 그래야 최상의 결과를 만들 수 있다. 난 이런 균형을 이루어가는 과정을 정말 좋아한다. 그래서 이 일을 지속적으로 하는 것이다.
그리고 최초 내가 식음공간을 전문으로 공부하고 싶다 결정했을 때...
사람들이 사랑하는 누군가와 맛있는 것을 먹을 때 행복한 표정을 봤을 때... 그 표정을 짓게 해주는 그 공간을 사랑하게 됐다. 그 공간이 바로 식음공간이었다.
▶️ 스시 오마카세 전문점 '스시결'
▶️ 35평형
▶️ 설계기간 3주 / 시공기간 5주
▶️ 내부 인테리어 설계 / 마감재 선정 및 연출 / 디자인 감리 등
카페를 설계하는 디렉터 JOHN의 창업현장노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