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실패담 ❹ | 실패를 통과하며 알게 된 것들에 대한 기록
그리고 그 꿈이 이루어지는 순간의 장면들을 자주 상상했다.
눈을 감으면 선명하게 그려졌다.
마치 영화처럼.
내가 원하는 공간에서, 내가 원하는 사람들과,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일하고 있는 모습.
그 장면은 너무 달콤했다.
상상만으로도 심장이 뛰었다.
그래서 생각했다.
이 장면이 하루라도 빨리 현실이 됐으면 좋겠다고.
그 마음이 나를 움직이게 했다.
남들보다 두 배, 세 배는 열심히 일하게 만들었다.
하루 평균 19시간.
그렇게 15년을 쉬지 않고 일했다.
아침에 눈을 뜨면 바로 일을 시작했다.
밤에 눈을 감기 직전까지 일했다.
주말이라는 개념이 없었다.
토요일도 일요일도 똑같은 하루였다.
어렸을 때부터 혼자 시간을 보낸 적이 많았다.
가족 행사도, 친척 모임도 나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래서 명절이 뭔지 잘 몰랐다. 추석에 뭘 해야 하는지,
설날에 어디를 가야 하는지, 솔직히 관심도 없었다.
주말의 의미도 몰랐다.
금요일 저녁에 들뜬 사람들을 보면 이해가 되지 않았다.
각종 이벤트 데이도 마찬가지였다.
발렌타인데이, 크리스마스, 생일.
나에게 그런 날들은 아무 의미가 없었다.
오히려 연휴가 길어질수록 불편했다.
쉬는 게 어색했다. 가만히 있으면 불안했다.
빨리 다시 일하고 싶었다. 일을 안 하면 뒤처지는 것 같았다.
멈춰 있으면 꿈이 멀어지는 것 같았다.
왜 그랬을까. 지금 생각하면 답은 하나였다.
내가 꿈꾸는 그 달콤한 장면을 하루라도 빨리 손에 쥐고 싶었기 때문이다.
눈을 감으면 보이는 그 장면.
그게 현실이 되는 날. 그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는 마음.
그 마음이 나를 쉬지 못하게 했다.
두 배로 뛰면 절반의 시간에 닿을 줄 알았다.
세 배로 일하면 남들의 3분의 1 시간에 도착할 줄 알았다.
단순한 산수였다.
거리 나누기 속도. 속도를 높이면 시간은 줄어든다.
나는 그렇게 믿었다.
그런데 15년이 지나고 나서야 알게 됐다.
꿈에는 숙성 시간이 있다는 것을.
와인이 익는 데 정해진 시간이 있듯이,
된장이 발효되는 데 정해진 시간이 있듯이, 꿈도 익는 데 필요한 시간이 있다는 것을.
그 달콤함의 크기에 따라 정해진 시간이 있다는 것을.
아무리 빨리 가려 해도 단축할 수 없는 시간이 있다는 것을.
여기서 화성까지의 거리는 5,470만 킬로미터다.
지금 우리가 가진 기술로는 약 9개월이 걸린다.
이걸 6개월로 앞당길 수 있을까. 3개월로 줄일 수 있을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로켓 안에서 아무리 발을 동동 굴러도,
잠을 안 자고 밤새 버텨도, 창밖을 뚫어지게 쳐다봐도,
화성이 더 빨리 다가오지는 않는다.
우주선 안에서 뛰어봤자 우주선의 속도는 변하지 않는다.
나는 그걸 몰랐다.
그래서 로켓 안에서 미친 듯이 뛰었다.
더 빨리, 더 빨리. 남들보다 두 배, 세 배로.
쉬면 늦을 것 같아서 쉬지 않았다.
멈추면 뒤처질 것 같아서 멈추지 않았다.
혼자서 숨차게 뛰었다. 15년 동안.
친구의 결혼식. "미안, 그날 중요한 미팅이 있어."
부모님 생신. "조만간 시간 내서 갈게."
연인과의 약속. "이번 프로젝트만 끝나면."
매번 '나중에'를 말했다.
매번 '다음에'를 약속했다.
그 '나중에'는 계속 미뤄졌다.
그 '다음에'는 영영 오지 않았다.
전화가 왔다. 받지 못했다.
문자가 왔다. 답장을 잊었다.
점점 연락이 뜸해졌다. 그러다 끊겼다.
나는 몰랐다. 아니, 알았지만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지금은 안 돼." "성공하면 그때 다 만나면 되지." "일단 목표부터 달성하고."
그렇게 모든 걸 뒤로 미뤘다.
주말에 뭘 해야 하는지 몰랐다.
일하지 않는 시간을 어떻게 보내는지 몰랐다.
취미라는 게 뭔지 몰랐다. 그냥 쉰다는 게 어떤 건지 몰랐다.
가끔 억지로 쉬려고 해도 머릿속에는 온통 일 생각뿐이었다.
TV를 봐도 내용이 들어오지 않았다.
음악을 들어도 멜로디가 스쳐 지나갔다.
맛있는 걸 먹어도 무슨 맛인지 몰랐다.
몸은 멈춰 있어도 마음은 여전히 뛰고 있었다.
'지금 이 시간에 뭐라도 해야 하는데.'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는데.'
쉬면서도 쉬는 게 아니었다. 불안했다. 조급했다.
어느 날, 아무 이유 없이 문득 주변을 돌아봤다.
아무것도 없었다.
같이 밥 먹을 사람이 없었다. 갑자기 연락할 사람도 없었다.
주말에 만날 사람도 없었다.
연락처를 뒤져봤다.
이름은 많았지만 실제로 연락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오랜만에 연락하기엔 너무 오래됐고,
무슨 말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어색함을 견딜 자신도 없었다.
안부를 물을 사람이 없었다.
안부를 물어올 사람도 없었다.
그제야 알았다.
나는 꿈을 향해 달려간 게 아니었다. 일상에서 도망친 거였다.
빨리 도착하고 싶다는 핑계로, 성공해야 한다는 명목으로,
지금은 참아야 한다는 이유로.
사람도, 관계도, 쉼도, 소소한 기쁨도, 아무 이유 없이 웃는 순간들도, 전부 뒤로 미뤄버렸다.
"나중에." "성공하면 그때."
"지금은 안 돼, 나중에 다 할 수 있어."
수없이 되뇌었던 그 말들.
그 '나중'은 결국 오지 않았다.
아니, 왔다. 왔는데 아무도 없었다.
도착은 했다. 그런데 함께 기뻐해 줄 사람이 없었다.
그게 얼마나 허무한 건지, 겪어보지 않으면 모른다.
밥을 같이 먹는 사람, 별일 없어도 연락하는 사람,
특별한 이유 없이 만나는 사람, 그냥 옆에 있어주는 사람.
그런 관계들은 시간을 들여야 만들어지고,
시간을 들여야 유지된다.
나는 그 시간을 전부 일에 쏟았다.
관계에 줄 시간이 없었다.
아니, 없었던 게 아니라 주지 않았다.
그래서 일상이 사라졌다.
조용히, 천천히, 아무도 모르게.
정신 차려보니 텅 빈 공간만 남아 있었다.
지금은 안다.
꿈은 도착하는 게 아니라 걸어가는 거였다.
그 길 위에서 밥도 먹고, 사람도 만나고,
가끔은 멈춰서 쉬기도 하면서 천천히 가는 거였다.
길 위의 풍경을 보면서, 옆에 있는 사람과 이야기하면서,
때로는 샛길로 새기도 하면서.
그게 여정이었다.
나는 그 길 위의 모든 것들을 무시하고 도착점만 노려봤다.
풍경도 안 봤다. 옆 사람도 안 봤다. 오직 앞만 보고 뛰었다.
그래서 도착했을 때, 나는 혼자였다.
사업은 일상 위에서 굴러간다.
일상이 튼튼해야 사업도 튼튼하다.
일상이 무너지면, 결국 사업도 무너진다.
사람이 있어야 사업이 된다.
관계가 있어야 신뢰가 생긴다.
신뢰가 있어야 일이 이어진다.
나는 그걸 너무 늦게 알았다.
빨리 간다고 먼저 도착하는 게 아니다.
그 시간을 단축하는 방법은 없다.
다만 그 시간 동안 어떻게 사느냐의 문제다.
숨차게 뛰면서 주변을 다 잃어버릴 것인가. 천천히 걸으면서 일상을 지킬 것인가.
어차피 도착 시간이 같다면, 나는 이제 후자를 택하겠다.
지금도 나는 꿈을 향해 가고 있다.
하지만 예전처럼 뛰지 않는다. 걷는다.
가끔 멈춰서 주변을 본다. 밥도 제때 먹는다. 사람도 만난다. 주말에는 쉰다.
그게 느린 것 같아 보여도, 결국은 더 멀리 가는 방법이라는 걸 이제는 안다.
15년을 태워서야 배운 것이다.
사업실패담은 실패를 통과하며 남긴 기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