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책으로 태교하기
"나는 그들이 하는 농담이나 말의 뉘앙스를 100% 이해하지 못하니까, 어쩔 수 없이 외로워질 때가 있거든. 그럴때마다 이 사진을 봐. 우주에서 보면 지금 여기 이곳의 내가 얼마나 하찮고 별 게 아닌지를 생각해. 한 10분 아무 생각 없이 이 사진을 보면 괜찮아지더라구."
한국에서 석박사를 마치고 미국에서 워킹맘으로 살고 있는 친구가 작년에 내게 해줬던 말이다. 그녀와 점심을 먹으며 이 이야기를 들은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나는 안면마비에 걸렸다. 고슴도치처럼 얼굴에 30개 가까운 침을 매일 맞아도 나아질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고 그저 막막하기만 하던 시절, 나는 자주 이 사진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우주에서 내려다보면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말을 곱씹었다. 전혀 다른 시공간의 차원으로 도피하고 싶었다. 자연스럽게 우주과학, 천체물리학 관련 유튜브 컨텐츠도 찾아보게 됐다.
그렇게 열심히 본 채널 중 하나가 성균관대 물리학과 김범준 교수님의 '범물리'다. 정말 쉽고 다정하게 풀어서 설명해주신다. 올해 초에 출간된 '세상은 왜 다른 모습이 아니라 이런 모습일까?'도 구어체의 친절한 과학책이다. 옛날에 배웠을 것이 분명한(기억이 가물가물한) 법칙들과 함께 이러한 법칙이 어떤 과정을 거쳐 도출됐는지에 대한 배경 설명이 흥미롭다. 무엇보다 내가 배운 법칙들은 2000년대 이전까지의 기준이기 때문에, 2000년대 이후 어떤 새로운 발견들이 더해졌는지를 알아가는 재미도 쏠쏠하다.
작년에는 심란한 마음을 외면하고자, 도피처 삼아 어려운 책을 일부러 읽었다면, 요즘에는 사실 다른 꿍꿍이가 있다. 일부러 과학 관련 책을 찾아 읽으면서 자주 배를 두드리고 찰떡이에게 말을 건다. "재밌지????!!!!"
남편과 나는 둘 다 확신의 문과생이다. 어릴 때부터 책을 좋아했고 활자를 좋아했다. (남편은 심지어 수능을 볼 때까지 주기율표를 외우지 못했다고 고백했다.) 하지만 지금도 문과생이 먹고 살기 힘든 세상인데, 20년 후는 얼마나 더 어려울까 솔직히 걱정스럽다. 찰떡이는 이과형 인재로 키우고 싶다는 야심찬 소망을 품고, 나름의 과학책 '태교'를 하고 있다. 어쩌면 내가 어릴 때부터 접한 책이 문과형 도서밖에 없었으니 문과형 인재로 성장한 것이 아닐까? 어릴 때 과학 책을 자주 접하게 해주면 관심사가 달라졌을 수도 있지 않을까? 이런 희망사항을 늘어놓으면 육아 선배들은 하나같이 웃으며 고개를 가로젓는다. "나도 너랑 똑같은 생각을 했었는데…."
그래, 많은 것 바라지 않을게. 건강하게만 나와다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