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팀을 출입할 때 검사들이 흔히 윤석열 대통령을 두고 하는 말은 ‘사시를 9번이나 봐서 법조문만큼은 누구보다도 빠삭한 양반’이라는 거였다. 실제로 그는 취재차 질문을 할 때에도 내가 궁금한 것에 즉답을 하기 보다는 배경 법조문들을 장황하게 설명하는 일이 자주 있었다. 국정농단 사건 이후 이른바 ‘적폐청산’으로 불린 MB정부~박근혜정부의 청와대·국정원·국방부 등에 대한 수사가 사실상 윤석열 중앙지검장 지휘 아래 광범위하게 이뤄질 때, 정치권에서 제기하는 ‘정치 보복’ 프레임을 반박하며 오직 법과 원칙에 의거하여 진행하고 있다는 설명이었다.
그래서 2024년 12월 3일 밤 10시 30분, 계엄령을 발표하는 윤석열 대통령의 모습을 보고 더욱 분노했다. 법을 누구보다도 잘 안다는 사람이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지? 박근혜 정부의 ‘계엄령 검토 문건’ 수사 당시 해외 도피해버린 조현천 등의 기소 필요성을 강조하며 열변을 토했던 그 양반이 맞나? ‘검토’만으로도 사법처리 대상에 올랐다는 사실을 잘 알면서 지금, 그것도 물리적으로 정부 존립 위협도 없는 상황에서 단지 야당의 의정활동으로 예산안이 막히고 주요 정부 인사들 탄핵안이 표결에 부쳐졌다는 이유로 계엄을 진.짜.로. 선포한다고???
황당하기 짝이 없어서 헛웃음만 나왔다가, 종결어미에 ‘처단한다’는 말이 반복돼 있는 계엄사령관의 포고령을 보고 슬슬 공포심이 올라왔다. 계엄군이 국회 진입을 시도하며 유리창을 깨고 들어가는 모습을 보면서는 애가 탔다. 국회, 정당 활동 및 집회 시위 등 일체의 정치활동 금지가 포고령 1번이었으니, 잡아갈 명분은 충분했다. 이대로 계엄군이 국회의원 줄줄이 체포해서 의결정족수에 못 미치게 되면, 계엄령이 확정되면, 앞으로 세상은 어떻게 되는 거지? 포고령에는 언론과 출판은 계엄사의 통제를 받는다, 사회 혼란을 조장하는 집회 행위는 금지된다고 명시돼 있었다. 그러니까 대통령에 반대 목소리를 내는 일체의 활동은 ‘반국가세력’으로 낙인찍겠다는 소리였다. 영화에서만 보고, 책으로만 읽었던 그 모든 국가권력의 횡포가 코앞으로 다가온 느낌이었다.
정말 다행히도 190명의 국회의원들이 본회의장에 모여서 계엄 해제를 결의했다. 대통령은 나흘만인 12월 7일에서야 사과문을 발표했다. ‘국정 최종 책임자인 대통령으로서의 절박함’으로 계엄을 선포했다면서, 자신의 임기를 포함한 정국 안정 방안을 ‘우리 당’에 일임하겠다고 했다. 이 역시 황당하기 짝이 없다. 헌법 1조 2항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국민으로부터 선출된 대통령이 자의로 권력을 특정 정당에 이양할 권한은 어디에도 없다. 그저 대통령이 궐위되거나 직무 수행이 불가능한 경우 국무총리, 또는 법률이 정한 국무위원의 순서로 그 권한을 대행한다(헌법 71조)고만 돼 있을 뿐이다. 8년 전 2016년 11월, 박근혜 전 대통령은 3번째 사과문을 발표하며 “임기 단축을 포함한 진퇴 문제를 국회 결정에 맡기겠다”고 했다. 최소한 삼권분립 체제에 걸맞게 ‘의회’의 결정을 따르겠다고 한 이 때의 사과문보다 윤석열 대통령의 사과문은 훨씬 편협하고 치졸했다.
당초 계엄령 발표에 반발했던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는 이 제안을 덥석 물었다. 대통령은 모든 직무에서 배제될 것이며, 자신이 국무총리과 상시 소통하면서 “경제, 외교. 국방 등 시급한 현안을 논의하고 대책 마련해서 한 치의 국정공백도 일어나지 않게 하겠다”고 단언했다. 대체 무슨 권리로? 한 대표를 선출한 사람은 국민의힘 당원들이지 국민이 아니다. 대통령을 직무 정지 시킬 권한도 없고 그 효력에 대해 장담하기도 어렵다. 법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사람들이 이렇게 ‘눈 가리고 아웅’식으로 어떻게든 틀어쥔 권력을 놓지 않으려 애쓰는 모습에 분노했다.
왜 저런 판단을 내렸을까. 어떻게든 박 전 대통령의 전철을 밟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고 생각했다. 국정농단 모든 수사가 마무리된 이후 한 관계자는 “절대 쉽지 않은 수사였다. 많은 우연 가운데 하나라도 ‘삐끗’ 했었어도 혐의를 입증하기 쉽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러니까 박 전 대통령이 만약 순순히 사과하지 않았다면, 독일 도피 중이던 최순실 씨에게 “들어오라”고 지시하지 않았다면, 당시 여당이 끝내 탄핵안에 찬성하지 않고 버텼다면, 그래서 박 전 대통령이 통수권자로서 권한을 내려놓지 않아 수많은 증인들이 훨씬 눈치를 보면서 입을 닫았다면...특검 수사는 난항을 겪었을 것이고 당연히 헌법재판소의 탄핵 판결도 이끌어내기 어려웠을 거라는 소리다.
이 과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박영수 특검팀의 수사팀장-부팀장 출신 대통령과 여당 대표다. 그러니 잘못을 인정하지도 권한을 내려놓지도 않고 일단 ‘버티기’에 돌입한 것 같다. 대외 신인도가 급전직하로 추락하고, 그래서 안 그래도 트럼프 당선 이후 불확실성의 소용돌이에 빠진 한국 경제에 빨간 불이 켜지고, 국내 혼란이 최악으로 가중되더라도 아무 상관없다는 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