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르막길

안면마비 환자의 출산기

by 심수미

출산 사흘째에 접어든다. 뭔지 모를 벅찬 감정+불에 데인 것 같은 고통이 지나가고 이제 약간 제정신이 돌아와서 기록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비로소 든다.


어젯밤, 그러니까 제왕절개 수술 후 약 36시간이 지나고 무통주사를 떼었다. 무통주사 별로 효과가 없다고 생각했었는데 완전히 떼니까 그나마 그게 있어서 덜 아팠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침대에 기대고 앉고 서는 그 모든 과정에 배에 힘이 들어가야 하는데 그 때마다 상처 부위가 불에 지지는 것처럼 아팠다. 복부 내 여기저기가 욱신거렸다. 아마도 팽창됐던 자궁이 수축되고, 주변으로 밀렸던 장기가 제자리를 찾아가는 과정일 것이다. 빠른 회복을 위해서는 부지런히 걸어야 한다고 해서 틈나는대로 걸었다. 한 손으로 링거 지지대를, 한 손으로 남편 손을 붙잡고 병원 복도를 힘겹게 한발 한발 오가면서 11년 전의 '버진 로드'를 떠올렸다.


우리가 원래 골랐던 결혼식 축가 곡은 가수 정인의 '오르막길'이었다. 당시 축가를 부탁했던 분에게 결혼식 직전 일주일인가? 앞두고 무슨 일이 생겨서 부랴부랴 대타를 알아보느라 식 당일에는 다른 곡이 연주됐지만 아무튼 준비하는 내내 흥얼거렸던 멜로디는 '오르막길'이었다. "이제 끈적이는 땀 거칠게 내쉬는 숨이 우리 유일한 대화일지 몰라~" 이 가사가 실감나는 순간이었다. 각자의 일만 열심히 해온 우리는 사실 연애 때와 크게 다르지 않은 느슨한 삶을 살아왔다. 이제는 신생아와 씨름하는 숱한 불면의 밤을 함께 보내게 되겠지. 그 놈이 장성하여 사춘기를 무사히 지날 때까지.


이 병원 복도는 사실 2021년 가을에도 남편 손을 부여잡고 힘겹게 걸은 적이 있다. 당시엔 자궁 근종이 갑자기 거대해지면서(코로나 백신 후유증이 아닌가 생각한다) 극심한 복통과 염증반응을 일으켜 제거 수술을 받았었다. 당시 내 나이 만 서른 일곱. 주치의 교수님은 "수술은 잘 되었다"며, 혹시 출산 계획이 있다면 더 늦기 전에 하루라도 빨리 난임센터를 찾아가라고, 넌지시 잔소리를 하셨었다. 그 때는 귓등으로 듣고 넘겼다. '마흔 살 돼서 낳을지 말지 생각해도 늦지 않아' 라고 합리화를 했었다. 그때 진지하게 임신준비를 했더라면, 최소한 안면마비는 겪지 않았을텐데 하는 후회도 든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너무 피가 뜨거웠다. 아마도 임신에 성공했더라도 지금처럼 감사해하지 않았을 수 있다. 나의 성장 기회를 박탈해간 방해물 정도로 여겼을 가능성이 크다.



안면마비 발병 1년 6개월차. 아직 100% 회복된 게 아니어서 평소에도 조금 스트레스를 받거나 몸이 피곤하면 바로 오른쪽 얼굴 근육이 뻣뻣해지고 떨리는데, 수술을 받았으니 당연히 지금도 좋지 않은 상태다. 사실 조금 전, 새벽 1시에 눈이 떠진 것도 꿈인지 실제인지 혼동되는 오른쪽 얼굴 경련 때문이었다. 그래도 감사하다. 나에게는 안면마비가 삼신할미나 다름 없는 것. 인생의 우선순위를 재정비하게 됐고, 덕분에 찰떡이를 만났다. 얼굴이 영영 돌아오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그래서 약간은 귀찮고 성가신 일들이 있더라도, 충분히 상쇄할 수 있는 또 다른 기쁨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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