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복치

안면마비 환자는 피곤하면 안돼

by 심수미

십년도 훨씬 전에, 우리가 갓 사회에 발을 디뎠던 무렵 친한 친구들과 공동으로 글쓰는 온라인 공간을 개설한 적이 있다. 그때 블로그 이름이 '몰라몰라 개복치'였다. 유난히 스트레스에 취약하다고 잘 알려진 물고기 개복치, 학명이 귀엽게도 몰라몰라Mola mola다. 학교를 벗어나 매일 매일 새로운 난관과 스트레스에 직면해야 했던 우리는 '에라 모르겠다'의 마음으로 '몰라몰라 개복치'를 채택해 간판으로 내걸었었다.


글 쓰겠다는 다짐이 늘 작심삼일로 끝나듯 우리의 블로그도 그리 길게 운영되지는 않았다. 그리고 나는 개복치는 커녕 돌쇠처럼 살았다. 스트레스, 당연히 받았고 몸도 힘들었지만 매번 "아닌데 난 안 힘든데??"를 외치며 스스로를 속였다. 취재를 마치고 회사로 들어가는 길에 탄 택시가 접촉 사고가 났어도 당일 기사 마감이 급하다며 "저는 괜찮으니 그냥 갈게요"하고 총총걸음으로 다른 택시를 붙잡아 타고 떠났었다. 매해 건강검진에서 안좋은 게 하나씩 늘어나도 '올해도 열심히 살았다'는 징표인 양 술자리 안줏거리로나 삼았다. 기자들은 대부분 위염 식도염 장염 같은 것들을 기본적으로 달고 산다. 무슨 보이스카우트 배지 모으듯이 질환들이 늘어나는 것을 무심하게 받아들였었다.

그러다 어제 새벽 '이제 진짜 개복치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양껏 먹이고 응가 싼 엉덩이를 세면대에서 잘 닦아 기저귀도 뽀송하게 갈아주었는데도 아기는 침대에서 깊이 자지 못하고 칭얼댔다. '원더윅스'라고, 생후 5~6주쯤에 일종의 성장통처럼 이유없이 우는 시기가 찾아온다고 한다. 한쪽 어깨에 걸쳐 안아 토닥여주고 숨소리가 쌔근쌔근 규칙적으로 변했다 싶어 아기 침대에 뉘이면 이내 '흐엥~'하고 울었다. 어스름하게 밝아오는 거실 소파에 앉아 아기를 토닥이는데 오른쪽 눈썹과 입가 근육의 연합운동이 평소보다 심하게 느껴졌다. 피곤하다. 피곤하면 이렇게 얼굴부터 신호가 온다. 아기를 토닥이던 손으로 얼굴을 주물렀다. 아기는 너무 귀엽다. 가슴이 뻐근하게 행복하다. 하지만 행복은 행복이고 피곤은 피곤이다. 예전처럼 이 피곤을 없는셈 치고 외면할 수 없게 됐다. "나는 할 수 이쒀"를 외칠 수 없게 되었다. 안면마비 환자의 삶이야말로 개복치같다,고 생각했다. 스트레스와 피곤에 몸이 바로 반응한다. 모르고 넘어갈 수가 없다. 산후도우미 이모님 고용 기간이 끝나면 혼자서 어떻게든 해보려 했던 생각을 바로 접었다. 엄마에게 일주일에 3~4일은 우리집에 와달라고 SOS를 쳤다.

후유증이 남은 오른쪽 얼굴을 보고 우울할때마다 좋게 생각하기로 한다. 내가 무리하지 않도록, 스트레스 관리 잘 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성능 좋은 경고장치를 받은 셈 치자. 귀찮고 거추장스러워도 장기적으로는 더 큰 우환을 막아줄 것이다. 안면마비 때문에라도 나는 더 많이 엄살을 피울 수 있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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