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남편을 혼을 낸다(고 한다)
"애가 태어나면 그냥 아내에게 매일 혼이 난다고 생각하면 돼."
예전에 아내의 출산을 앞둔 후배와 함께 왁자지껄 모인 자리에서 애아빠인 다른 후배가 이렇게 말했었다. "주로 뭐 때문에요?" "딱히 이유는 없어. 뭘 해도 혼이 나고 뭘 안하고 가만히 있어도 혼이 나." 와하하 웃음이 쏟아졌고, 대부분의 애아빠들은 격한 공감의 표시로 고개를 끄덕거리고 있었다. 그때는 그냥, 한국 남자들이 흔히 술자리에서 늘어놓는 집안 권력관계에 대한 농담의 일종이라고만 여겼었다. 늙으나 젊으나 똑같구만. 속으로 조용히 남자들을 흘겨봤었다. 그런데 그 후배의 말은 과장이 아니었다. 몇 차례나, 똑같은 문장을 남편의 입에서 직접 들었다. "너는 찰떡이를 낳은 이후 거의 매일 한 두번씩은 나를 혼내고 있어."
남편은 가사노동과 육아에 꽤 적극적인 사람이다. 따로 말하지 않아도 세탁기 건조기를 돌려서 빨래를 개고, 근무일에도 다음날 일정이 비교적 빡빡하지 않으면 밤에 아기를 데리고 자며 새벽 수유를 책임진다. 내딴에는 늘 그런 남편에게 '고맙다' '최고다' '00동 양관식이다' 등등 찬사를 늘어놓았다(고 생각했다.) 그러니 억울했다. 나는 화를 내지 않았는데? 혼을 내지 않았는데? 그냥 말한건데?????
처음에는 내 말투와 태도가 본디 글러먹은 것은 아닌가, 인생을 반추해보았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회사 선후배들에게 또는 업무상 만나는 많은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면서 살아왔던가? 세상이 나에게 왜이렇게 거칠게 구는지 억울했었는데 사실은 나의 호전적인 말투 때문이었던가? 그러다 곰곰히 더 생각해보니, 내가 화가 나 있는 건 사실인 것 같았다. 아침 저녁으로 젖병 설거지를 하고, 청소기를 하고 바닥을 닦고 이유식과 침이 범벅이 된 빨랫감들을 손빨래하고.. 아침에 눈을 떠서 밤에 잠들기 전까지 종종거리며 집안일을 하는 일상에 화가 나 있었다.
남편은 자주 말한다. "그냥 하지 말고 좀 쉬어." 나를 배려해서 하는 말이겠지만 속에서 은근한 화가 치민다. 내가 안하면 누가 하는데??? 아기가 없던 시절의 나는 일주일에 한 번씩 도우미 이모님이 해주시는 청소로 충분했지만, 내 새끼 입에 먼지 구덩이 들어갈 생각을 하면 자꾸만 수시로 청소기를 물티슈를 손에 잡게 된다. 거실에 깔린 아기용 매트를 벅벅 닦으면서 이렇게 엄마의 길을 답습하는구나 생각한다. 엄마도 자주 화를 냈었다. "아유 돼지우리가 따로 없네!" 어린 나는 "좀 지저분하면 어때서!? 엄마도 그냥 쉬면 되잖아!!"라고 짜증으로 맞받았었다. 그때의 나는 몰랐지. 화장실 세면대에 부엌 싱크대에 물때가 이렇게 자주 끼는지.
엄마의 삶을 닮아간다는 그 자체가 어쩌면 화의 가장 큰 근원일수도 있겠다. 내가 내심 안타까워했던, 집안에 갇힌 삶에 가까워질까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