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는 어려워
개고(改稿) 작업까지 마쳤다. 출판사의 검토 결과에 따라 흐름을 재정비하고 추가하거나 뺄 원고, 문장들을 조율했다. 초고를 보낸 지 몇 달이 지난 뒤인 데다 대략의 교열을 거쳐 e북처럼 디자인이 입혀진 pdf 파일을 넘겨보니 독자의 입장에서 나도 다시 새롭게 읽게 됐다. 너무 저자세로 썼던, 자책하거나 스스로를 비하하는 표현들을 덜어냈다. '왜 이렇게까지 스스로한테 못되게 굴었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쓰고 퇴고하는 과정에서 내가 제일 많이 위로받았다. 열심히 재밌게 보람차게 살았던, 잊고 있던 순간 순간들을 꺼내어 먼지 털고 광을 냈다. 그리고 더 더욱 잘 살아내야겠다고 다짐했다.
8월이 정신없이 바빴다. 우당탕탕 급하게 여행 계획이 급조되어 스위스에 다녀왔다. 아기가 곧 '엄마 껌딱지'가 될텐데 그전에 자유 여행을 다녀오라며 엄마가 등을 떠밀어줬다. 친정엄마가 3일, 휴가를 낸 남편이 5일간 나눠서 아기를 봐줬다. 언니와 아빠를 모시고 렌트카를 빌려 프랑스 샤모니 몽블랑에서 3박 4일, 융프라우 근처 그란델발트에서 2박 3일을 지냈다. 그리고 깜짝 놀랐다. 이렇게나 비현실적으로 아름다운 풍경이 눈 앞에 있는데도 빨리 집에 가고 싶었다. 그저 아기가 보고싶었다. 이제 나는 '아기 낳기 전의 나'와 완전히 다른 사람이구나, 절감했다. 아기가 태어나면 엄마도 같이 태어나는 거라고 하더니 정말이었다.
다녀오자마자 대학원 수업이 시작되었다. 올 가을학기부터 카이스트 과학저널리즘 석사 과정에 다닌다. 얼굴이 고장난 방송기자로서 어떻게든 '활로'를 찾아야겠다는 조급한 마음이 있었다. 지난 초여름 면접장에서 한 교수님은 같은 워킹맘 입장에서 걱정이 되셨는지 "아기가 너무 어린데 정말 괜찮으시겠어요? 내년에 다시 오시는게 어때요?"라고 물어보기도 했다. 첫 수업을 들은지 4주가 지났고 그 교수님의 걱정어린 눈이 자꾸 떠오른다. 틈나는대로 아기를 친정집으로 실어 나르며 도움을 받고 있는데도 제출해야 할 과제와 조발표가 층층이 쌓여있다. 만나는 사람마다 '은중과 상연'이 재밌다고 난리이지만 도무지 넷플릭스 시리즈를 틀을 여유가 없다.
그래도 재미있다. 거의 6~7년 전부터 기자들끼리만 모이면 하던 답 없는 한탄- 뉴미디어의 부상과 외면받는 레거시 미디어의 현실-을 어떻게든 학문적으로 고민하고 활자로 풀어내는 작업을 하고 있다. 이 시간들이 내년 복직 이후 실무에 어떻게 활용될지는 또 다른 문제이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