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래도 책 읽을 때 커피가 없으면...
(일 년 내내 아아를 선호하는 우리 얼죽아 올케는 캘리포니아 오래 살다가 겨울이 긴 주로 이사를 가서
아직도 얼죽아로 잘 살고 있는지 갑자기 궁금하네.)
몇십 년째 따뜻한 캘리포니아 살고 있지만, 뜨거운 커피를 마실 수 있는 날을 최대한 늘리려고 노력하는데, 더위도 잘 타고 땀도 잘 나는 편이라 쉽지 않다.
오늘같이 더운 날 아침에는 우선 뜨거운 커피를 진하게 내려놓고 잠깐 고민하다가 얼음을 부어버린다.
아침부터 땀이 나면 귀찮고. 찝찝하고.
더운 날은 책 읽기도 쉽지 않다.
아이들도 동네 수영장에 수영하러 나가지 않는 이상 집에만 있을 테고
오늘 같은 주말은 남편도 집에서 게임을 하거나... 별 쓸데없는 일로 시간을 보낼 테고
나는 안방에 들어와서 읽다만 수십 권의 책 중에 뭘 하나 골라서 읽을까 생각 보는데...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책을 읽기 시작하면 읽다가 재미가 없어도 오기가 생겨서 꼭 끝까지 읽어서 끝장을 봤는데,
이제 나이가 마흔이 지나면서 나에게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거나 재미가 없는 책에 오기를 부려 시간을 투자하는 것이 정말 효율적으로 시간을 쓰는 일일까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면서, 아무리 내가 돈을 주고 산 책이라 해도 나에게 별 유익이 없으면 중간에 끊고 더 이상 읽지 않게 되었다.
그래도 추리고 추려서 읽기는 시작했는데 아직 끝내지 못한, 하지만 언젠가 끝내고 싶은 책들이 있는데, 아직도 한가득이다.
이 이야기를 하려던 것이 아닌데.
커피로 글을 시작했으니, 커피와 잘 어울리는 책 이야기를 해볼까.
특히 아이스커피가 어울리는, 젊고 상큼한 작가의 글이거나, 더운 여름, 또는 바다가 연상되는 글이어도 좋겠다.
아니면 칼라로 블루. 아 블루!
이은혜 작가의 블루를 통해서 온갖 시크함과 쿨함과 감성 충만한 연애 감정을 학습한 세대로써
지금 새롭게 읽었다간 너무나 오그라드는 코멘트들로 가득한 책을
나는 백 프로 추억으로, 십 대 때의 나의 마음 그대로 읽기 때문에, 아직도 아름답고, 애처롭고, 눈물 나고, 너무나 너무나 멋진 것이니...
나를 위해서 내가 만든 아이스커피에, 이가 시린 이유로 빨대를 꽂고 커피 한 모금을 머금고,
"으아 시원하다!"라고 감탄을 하는 아줌마였다가
야리야리하고 예쁘고 조각 같은 얼굴의 주인공들이 글썽이는 눈물을 보고 다시 십 대로 돌아가본다.
나는 이제 십 대로 넘어가려는 아이들의 엄마가 되었어도
이렇게 순식간에 나를 순수청년으로 돌려놓을 스토리와 비주얼을 제공하는 책이 있으니 얼마나 감격스러운지.
선배를 오빠대신 형으로 부르는 게 왠지 더 쿨 해 보이고 반존대가 멋져 보였던 그 시절이 엄마도 있었지.
('간지 난다'라는 말이 너무나 쓰고 싶은데, 이제 이런 일본말을 아무 때나 쓰면 안 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어서 조심스럽다...)
"아니.. 줄리처럼 어릴 적에 발레를 시작한 천사를 알아..."
"차라리 자라지 말 걸 그랬어 연우야..."
"... 내 대신 하늘이 울어주고 있어 여긴..."이라는 오직 승표의 비주얼을 가진 사람만이 느끼하지 않게 던질 수 있는 멘트에 마음이 저렸었지.
7권에서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고 중단되어 버린 블루였지만,
갓 이민온 미국에서 힘든 사춘기를 보내던 나에게
엄마 따라갔던 한국마켓에서 발견하고
너무나 예쁜 커버(승표 얼굴. ㅎㅎ)의 블루 OST 음반을 소중히 가져와서
블루 스토리 속의 시 같은 노래들로 가득했던 90년 중반의 몇 달이 있었었네...
이제 20년 지나서 그때 샀던 CD는 찾을 수도 없어 한동안 들어보지 못한 블루 OST 노래들을
이제 유튜브로 들을 수 있다니.
색이 이미 노랗게 바래버린 20년 전의 만화책과
캡슐 커피머신과, 자동으로 얼음을 만들어내는 냉장고와 원하는 노래를 타입 하면 바로 틀어주는 유튜브와
때맞춰 나온 여름 블록버스터 영화를 보러 집을 비워준 집 남자들의 도움으로
소녀 감성에 잠시 젖게 해 주어서 오랜만에 마음이 몽글몽글.
이제 영화 보고 집에 와서 밥 찾을 남자들을 위해
승표와 하준이와 태양! 을 생각하며 저녁을 지어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