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에마 미첼
얼마 전 잠시 언급했던 독특한 서점을 하는 친구는 베스트셀러보다는 반드시 세상에 널리 알려질 좋은 책들을 찾는 걸 낙으로 삼습니다. 언어를 사랑하는 그 답게 원문과 번역본을 한 달에 한 권을 선정해 같이 파는데 이달의 책이라며 보내준 이 책을 두여달 전에 선물로 받게 되었습니다. 자연, 과학에 약하다는 핑계로 잠시 미뤄뒀던 이 책이 책장을 지나칠 때마다 계속 눈치를 주는 거 같아 주말을 이용해 읽었는데 놀랍게도 저의 과거를 위로하는 책이 되었습니다. 왜 이 책을 선물로 주었는지 그 마음이 너무 고마워서 감동을 받기까지 하였습니다. 곧 다가올 10월에는 어떤 책이 등장할지 기다리고 있습니다.
P : 솔직히 말하겠다. 나는 지난 25년 내내 우울증 환자였다. 어떤 날은 머릿속에 음침하고 부정적인 모래 진창이 가득 찬 것처럼 느껴진다.
지금은 약을 먹고 있지는 않지만 저도 우울증과 불면증으로 인해 고생을 해왔기에 작가의 이런 고백이 낯설지 않고 반갑게 다가왔습니다. 작가는 우울증이 자신을 집어삼킬 것 같을 때 자연이 항우울제가 되어 주었다고 합니다. 그는 구원을 찾는 심정으로 숲으로 바다로 들판으로 향했습니다. 그곳에서 그는 자연이 주는 기쁨을 만끽하고 치유의 힘을 느꼈고 이 책은 그런 작가에게 반평생을 우울증과 힘겨운 사투를 벌여온 회고록이자 우울증을 겪는 동안 그가 마주한 자연에 대한 세심하고도 아름다운 관찰기입니다. 작가는 동식물과 광물, 지질학을 연구하는 박물학자이자 디자이너, 일러스트레이터이기도 합니다. 그는 꽃, 열매, 새, 동물의 모습을 사진으로 찍고, 그림으로 남기고 채집합니다. 전문성이 발휘된 이 책은 그림과 사진을 통해 우울증과 힘겨운 싸움을 벌이는 와중에 자연에서 발견한 희열과 기쁨이 고스란히 느껴집니다.
사실 자연이 갖는 치유의 힘은 과학적으로도 많이 논의되고 여러 책으로도 나왔습니다. 이 책에도 삼림욕의 효과, 피톤치드의 효능 등에 대한 언급이 나오고 흙과 가까이할 때 미코박테륨백케이 같은 토양 박테리아와 접촉하면서 세로토닌 분비를 증가시킨다는 어려운 내용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책은 자연이 만병통치약이라며 효능을 요란하게 강조하지 않아서 좋았습니다. 각종 의학적 자료들을 인용해 설득력을 더하면서도 자연에서 마주한 풍경과 생물들의 모습과 그것들이 내면에 끼친 변화를 섬세한 장식을 세공하듯 공들여 묘사하였습니다.
어느 해 10월에서 시작해 달마다 달라지는 저자의 심리상태 변화와 자연물의 변화를 기록했습니다. 10월은 가을이 깊어지며 겨울을 예고하는 달이 되었고 저자에게는 일조량이 줄어들면서 세로토닌 분비가 감소해 계절성 정서장애라는 일시적 우울이 찾아오는 시기이기도 했습니다.
P : 계절성 정서장애가 올해도 내 뇌신경에서 음침한 홍차처럼 우러나기 시작한 건 아닌지 두렵다
마치 저축을 하듯 자연 풍경을 눈에 담고 기록하고 채집하는 작가는 낙엽을 주우며 채집 황홀을 경험합니다. 인간이 새로운 환경을 탐험하고 자원을 찾아 나서면 도파민이라는 뇌신경전달물질이 분비돼 일시적 흥분을 느끼게 된다는 것인데 오래된 화석이 있는 절벽에서 주워온 조개껍질과 상어 이빨을 가지런히 늘어놓는 놀링(knolling)이라는 행위가 스트레스를 덜어주고 은근한 도취감을 준다고 말합니다.
책을 따라가다 보면 저자가 자연에서 얻는 황홀하고도 순수한 기쁨이 고스란히 전달됩니다. 숲에서 상모솔새를 보면서 샴페인 초콜릿 트러플을 먹을 때의 황홀함을 느끼고 11월의 햇살이 단풍잎을 관통하는 모습에서 그 어떤 스테인드글라스보다 환히 빛나는 감동을 작가는 느낍니다. 우리에게는 낯선 스노드롭 꽃 군락의 청초한 아름다움, 찌르레기 떼가 집단 비행할 때 눈앞에 펼쳐지는 장관 등이 사진과 더불어 정밀한 묘사로 우리에게 전달합니다.
P : 이 병은 내 인생의 절반이 넘는 시간에 걸쳐 삶을 온전히 누릴 능력을 빼앗았다. 숲 속의 새와 식물 사이에서 시간을 보내면서 그놈에게 한 방을 먹이며 우울증과 함께 산다는 게 얼마나 고단한 일인지 인정하면서 마음이 한층 가벼워진 것 같다
저자는 우울증과 더불어 살아가야 함을 인정하고, 자연이 주는 치유의 힘에 의지합니다. 전염병으로 새봄이 주는 기쁨을 만끽하기 어려운 이때 이 책은 우리에게 적잖은 위안이 될 거 같습니다. 저자가 우울증이 극심한 날이면 <영국 식물 컬러 소사전> 도판을 들여다봤던 것처럼 저는 이 책을 펼칠 거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