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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무 Nov 01. 2023

생각하기/ 분류하기

by 조르주 페렉

저는 적는 습관이 있습니다. 아무렇게나 적는 노트, 이 노트에는 날짜를 적은 다음 아주 사소한 것들을 적습니다. 예를 들어 오늘 해야 할 일, 마트 가서 고기, 이런 것부터 읽어야 할 책 제목과 작가의 이름을 채워 넣기도 하고 음악 제목, 가사, 읽었던 책의 문장들을 꾸깃꾸깃 옮겨 놓습니다. 그러다가 책을 쓰기로 혼자 마음을 먹고 6개월 정도 고민을 하다 생각나는 단어들을 모으기 시작했고 장면들을 문장들로 그리기도 합니다. 비록 어딘가에 막혀 완성은 못했지만 5-60 페이지까지 적어낼 정도의 원동력이 되는 것은 아무렇게나 적는 메모장이었습니다.


이 책은 글을 쓰려는 분들에게 안성맞춤인 책입니다. 비교적 짧은 생을 살고 더 짧은 작품 활동을 한 페렉의 글에 대한, 또는 단어들을 모으는 생각들을 볼 수 있는 작품입니다. 1976년부터 1982년까지 여러 신문과 잡지에 발표한 글 13 편을 그가 사망한 뒤 책으로 엮은 것인데 표제작으로 삼은 <생각하기/ 분류하기>는 그가 죽기 몇 주 전에 출판한 마지막 글의 제목과 같습니다. 그는 요즘 우리들이 하고 있는 독서모임 같은 것을 하나 하고 있었는데 작가, 화가, 수학자, 음악가 등으로 이루어진 실험 문학모임 “울리포” 의 멤버로 활동하였습니다. 그곳에서 그는 온갖 문학적 실험에 몸을 던졌는데 이 책에서 그 내용들을 엿볼 수 있습니다.


이 책에는 작가를 꿈꾸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내용이 나옵니다. 작가들이 찾는 말들 속의 우여곡절, 즉 할 말을 찾는 과정들이 나옵니다. 수많은 말들의 더미에서 동요와 주저함을 볼 수 있고 차후에 무엇인가를 뜻하게 되거나 쓰려고 하는 것들을 뚜렷이 드러내 줄 말 하나가 틀림없이 있을 것이라며 순간이 떠올리는 단어나 문장들을 찾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글 하나를 완성하려면 무수히 많은 시간과 글들이나 생각을 요하고 여차 저차 해서 완성된 글이 나옵니다. 하지만 페렉은 그런 완성된 글보다는 아쉽게도 사라지고 삭제된 문장이나 생각들에 주목을 합니다. 그의 말에 따르면 무엇이라 정의할 수 없고, 분류할 수 없는, 정리할 수 없는 찰나의 사유를 고스란히 받아 적는다면 어떤 글이 나올지 고민한 흔적에 대한 이야기를 이 책에 담고 있습니다. 아마 모든 사람들은 생각을 합니다. 그 생각들은 결국 잊어버리게 되고 기억을 한다 하여도 바로 글이 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작가들은 단어나 글, 또는 스토리를 기다리는 과정이 제일 힘들다고, 가장 고통스럽다고 토로합니다. 그가 말한 작품화하지 못한 변방의 영역으로 요약된 채 목록화하지 못한 영역, 하잘것없는 일상의 틈새를 그는 이곳에서 보여줍니다.



P : 동시에 기억의 파산 같은 것이 일어나리라. 모든 것을 적어두지 않으면 달아나버리는 이 삶에서 아무것도 붙잡을 수 없다는 듯, 나는 잊는다는 것에 두려움을 느끼기 시작했다.(…) 내가 남긴 흔적을 잃어버리면 어쩌나 하는 공포심에 사로잡혔기 때문에 나는 광적으로 보관하고 분류하게 되었다. 나는 하나도 버리지 않았다.


P : 내가 생각할 때 나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내가 생각하지 않을 때 나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이 순간에조차 내가 생각할 때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생각할 때 나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김영하 작가님에게는 “절대 쓰지 않을 책들의 목록”이라는 노트가 있다고 합니다. 그저 생각나는 것을 아무렇게나 막 적을 수 있기에 그 노트에는 온갖 허망한 것들이 그 노트 안에 있다고 합니다. 십 년 동안 묵혀두었던 구상에서 나온 책 중 하나가 <살인자의 기억법>입니다. 여러분도 글을 쓰고 싶으시다면 절대 쓰지 말아야 할 노트에 머릿속으로 지나가는 또는 앞에 보이는 무엇인가 하나 적어보는 것으로 시작해 보면 어떨까요? 지금은 그저 몇 문장이나 단어로 밖에 구성이 안되지만 어느 날 갑자기 쓸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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