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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무 Nov 10. 2023

일기 여행

by 말린 쉬위

여러분은 일기를 쓰시나요? 저는 특별한 날이나 지나가는 주변 사람들에게서 무엇인가 떠오르거나 메모할 말을 들은 날이면 짧게 한 문장이라도 기억하려 합니다. 어제 같은 경우에는 친구와의 이야기 속에서 떠오르는 책을 메모하기도 했고 이전 써놓았다가 잠시 잊고 있던 이야기들을 다시 정리하기도 했습니다. 몇 줄 안 되는 짧은 글이라도 그때의 감정이나 생각을 정리하다 보면 감정과 생각이 깔끔하게 정리되는 느낌을 받습니다. 무엇인가를 끄적이는 일상도 소중하지만 영감이 될 듯한 이야기들이나 문장이 떠오르는 날이 쉽게 오지 않기에 펜을 꺼내거나 급하게는 핸드폰 메모장을 열어 오타가 생기든 말든 얼른 적어둡니다. 이 책들 다 읽고 공감 가는 번역가 선생님의 말이 있었습니다.



P :  우리 자신이 온전하게 자기를 만날 수 있는 시간은 일기장과 마주하는 시간이다. 공개를 목적으로 쓰는 글이 아니기 때문에 그 안에는 가식과 위선과 꾸밈이 있을 수가 없다. 인간의 진솔한 자기 고백이라는 점에서 일반 문학은 일기 쓰기에서 유래한다. 내면세계에 숨겨진 인간의 모습을 마주하는 일기는 진정한 자기 자신을 탐색하는 문학의 한 영역이 된다.



오늘은 일기에 관한 책입니다. 날마다 적어야 했던 일기는 사실 학창 시절의 숙제 같은 느낌이어서 싫었던 제가 어느 날부터인가는 뭔가를 적는 시간들이 소중하게 다가왔는데 이 작가도 그런 비슷한 감정을 느낀 듯합니다. 이 책은 일기 쓰기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어떻게 써야 하는지에 대한, 직접적인 실무를 다루고 있습니다. 저자는 일기를 쓰는 이유를 책 부제처럼 여성의 삶에서 중요함을 광범위한 참고 문헌으로 보여줍니다. 여성의 삶과 일기를 쓴다는 의미에 관해 설명하고 있지만 저자는 다른 한편으로 성별을 초월하여 일기 쓰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환영합니다.



P : 누구든 이미 거대한 세계적 공동체의 구성원이 된 셈이다.



공식적으로 기록되거나 출판되기 어려웠던 여성의 이야기는 내밀한 일기로 전해져 왔습니다. 이미 10세기 일본 궁중 여인들이 베갯머리 책으로 일기를 간직해 왔었고 숨죽인 채 꿋꿋이 적어 내려온 일기에 담긴 여성의 삶을 풍부한 사례를 통해 엿볼 수 있습니다. 저자는 수년 동안 “여성 일기 연구회”를 운영하며 다양한 일기를 읽었습니다. 일기에 적힌 건 아주 사적인 이야기지만 그 안에 사회의 억압과 제약, 결혼과 양육, 삶에서 마주하는 선택의 기로 등 여러 중요한 문제가 담겨 있었습니다. “가장 사적인 것이 가장 정치적이다”라는 68 혁명의 문구처럼 1970년대 페미니즘 운동은 일기를 통해 여성의 글을 해석하고 비평하며 여성의 관점에서 사회를 다시 돌아봤습니다.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솔직하게 털어놓은 버지니아 울프의 일기, 감옥 생활 중 쓴 일기를 그대로 출판한 루이제 린저의 <생의 한가운데> 등 다양한 여성 작가의 일기에서 발췌한 내용을 읽어볼 수 있었습니다.



P : 일기 쓰기는 가장 인류 평등주의적인 글쓰기 양식이다. 중요한 것은 필자가 누구인가 또는 필자는 무엇을 성취하였는가라는 것이 아니라, 일기 쓰기를 통하여 이룬 필자의 진실성, 솔직성, 통찰력의 정도이다.



작가는 일기 쓰기 행위를 통한 여행을 인류의 역사 속에서 찾기도 했지만 저에게는 그런 거창한 이유보다는 자신을 탐색하는 문학인 일기에서 우리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기회가 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변하지 않고 늘 내 곁에 있는 친구와도 같은 일기장을 통해 솔직한 나만의 목소리를 찾고, 억압받은 감정을 치유할 수 있을 것으로 봅니다.


책의 아쉬운 점은 여성에 국한된 일기 쓰기에 관한 내용이라는 점이었습니다. 그리고 읽을수록 확신한 것은 우리나라에 자랑스러운 일기 문학인 혜경궁 홍 씨의 <한중록>이나 허난설헌의 시에서도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내용을 찾을 수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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