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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무 Oct 09. 2023

오에 겐자부로 단편

by 오에 겐자부로

작가들이 책을 낼 때 가장 힘들다고 토로하는 것이 다 쓴 원고를 고치는 일이라고 합니다. 아마 오에도 그 부분이 힘들었을 테지만(추정), 그는 쓴 책의 개정판이 나올 때마다 수정하는 걸로도 유명합니다. 오에는 책을 펴내며 작품을 계속 고칠 때마다 구두점의 위치와 어순을 바로잡고 심지어 원래의 설정이나 내용도 변경을 합니다. 그는 이에 대해 "세부를 정확하게 하고, 현재 사회를 살아가는 내가 지금 쓰는 언어의 감각으로 고쳤다."라고 인터뷰를 했는데 노벨문학상을 받은 거장의 작가정신이 드러나는 에피소드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그의 책을 볼 때 반드시 몇 번째 개정판인지를 확인해야 하는 수고로움이 있습니다.


오에는 2011년 3월 동일본 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고 직후, <만년 양식집>을 집필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책이 발표되고 그는 60년 작가 생활을 마무리한다고 발표합니다. 마지막 글을 마친 작가는 새로운 작업에 착수합니다. 그는 단편 중 23편을 직접 뽑아 <오에 겐자부로 자선 단편>이라는 책을 출간했고 그대로 번역한 것입니다. 사실 그는 저에게 있어 장편소설 작가의 이미지가 강하지만 이 책이 좋았던 이유는 그의 문학적 토양을 일궈낸 시작점을 볼 수 있어서입니다. 도쿄대학 재학 당시 쓴 <기묘한 아르바이트>부터 1992년 발표한 <마고 왕비의 비밀 주머니가 달린 치마>까지 그의 시작점부터 노벨문학상을 받기 직전까지의 단편이 이 안에 있습니다.


그는 단편집을 수정하면서 스스로에게 어떤 소설가이고, 어떤 시대를 표현해 왔는가라는 물음을 던졌습니다. 오에는 자신의 모든 단편소설을 객관적인 시선으로 다시 읽기 시작했습니다. 작가가 된 지 얼마 안돼 시점에서는 사르트르와 실존주의의 영향을 강하게 받아서 암울한 상황에서 저항의 의지조차 품지 못하고 무기력하게 살아가는 동시대의 젊음을 감금 상태로 표현 한 모습도 보입니다. 어느 정도 작가로서 궤도에 오른 후에는 생과 사의 절실함을 그 특유의 생생한 문체로 차곡차곡 쌓아서 보여줍니다. 오에가 평생 동안 문학으로 극복하고자 애쓴 삶의 명제들을 엿볼 수 있는 작품들도 보입니다. 노벨문학상을 안겨준 <개인적인 체험>을 쓰기 직전인 90년대 단편 작품들에서는 마지막 단편소설가로서의 오에를 볼 수 있는 작품들도 볼 수 있습니다.



P : 개들은 몹시 지저분했다. 온갖 종류의 잡종이 거의 다 모여 있는 듯했다. 그런데 그 개들이 서로 굉장히 닮아 있다는 게 신기했다. 대형견에서 소형 애완견까지 또한 대부분을 차지하는 중간 크기의 비슷비슷한 잡종 개들이 말뚝에 묶여 있었다. 도대체 어떤 점이 닮은 것일까? 나는 개들을 살펴보았다. 모두 볼품없는 잡종인 데다가 바싹 말랐다는 점이 닮았나? 말뚝에 묶인 채 적의라는 감정을 완전히 잃어버린 점일까? 우리도 저렇게 될지 모른다. 적의라는 감정은 완전히 잃어버린 채 무기력하게 묶여 서로서로 닮아 가는, 개성을 잃어버린 애매한 우리, 우리 일본 학생. 그러나 나는 정치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 나는 정치를 포함해서 대부분의 일들에 있어 열중하기에는 너무 젊었든가 너무 늙었다. 나는 스무 살이었다. 기묘한 나이였고 완전히 지쳐 있었다. 나는 개들의 무리에 관해서도 금방 흥미를 잃었다. - 기묘한 아르바이트



일본인들 사이에서는 누구나 오에의 책을 한 권씩 가지고 있지만 정작 읽은 사람은 없다는 농담이 있습니다. 중년 이후 발표된 그의 소설은 묵직하고 진지하고 폐쇄적이었고 여기에 자체적으로 첨단 문학이론을 소설에서 실험한 듯한 느낌까지 있어 만만히 읽을 수가 없는 것도 사실입니다. 시종일관 견지하고 있는 진보 평화주의라는 신념도 그를 좀 더 다가가기 어렵게 만들기도 합니다.


그런데도 제가 좋아하는 이유에는 그의 책에는 일본적인 냄새나 아시아적 지역성이 별로 느껴지지 않습니다. 독자들보다는 이야기에 신경을 썼고 불편을 감수하더라도 독자 스스로에게 사다리 하나씩을 만들어 그가 설정한 좌표에 올라가도록 만들었습니다. 저도 그 사다리에 오르기까지 많이 망설였지만 한 발자국만 발을 옮기면 거장의 아름다운 문장의 세계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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