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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무 Nov 28. 2023

알렙

by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과거에는 눈으로 보이지 않은 세계를 그림과 과학적으로 설명하려 하였습니다. 17세기에 현미경이 사용되면서 상상력을 동원할 필요 없이 직접 볼 수 있게 되었지만 우리는 여전히 지구의 생명체 중 최소 90프로는 육안으로 확인을 못합니다. 분명 우리 주변에 존재하지만 우리가 볼 수 없는 것들을 보르헤스는 문자화하려고 노력했고 그의 영향으로 건축이나 미술 등에서는 시각화하려고 노력하였습니다.


일반적인 우리들이 보기에 난해하기 그지없지만 작가들의 작가인 보르헤스의 책 중 <알렙>은 많은 작가들에게 영감을 준 책인 것은 분명합니다. 단편만으로 모든 것을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 했던 이 책은 절대 가볍지 않고 오히려 백화점 같은 다채로움을 보여줍니다. 탁월한 지적 유희를 선보이는가 하면 독특한 아이디어에서 시작된 신선함을 보여주는데 소설이라는 가상의 이야기 안에서도 실제와 허구를 마구 섞어 실감 나게 들려줍니다. 소설이라고 하기에도, 철학이라고 하기에도, 그렇다고 인문학이나 에세이라고 하기에도 애매한 이 책은 작가의 방대한 지식의 창고를 통해 엄청난 세계를 하나씩 펼쳐 보입니다. 사상뿐만 아니라 기존의 학문적 이론을 마구 뒤엎을 수 있는 가상의 이론들은 전혀 허무맹랑하지 않고 그럴 수 있다고 착각이 들어 흥미진진하게 모든 이야기들 안에 빨려 들어갑니다. 탁월한 이야기꾼인 보르헤스는 허풍마저도 진실처럼 만들어 낼 수 있는 작가, 거짓말을 논리적으로 증명시켜 낼 수 있을 것만 같았습니다. 그의 글은 마치 장편 소설을 발췌한 듯한 느낌이 있습니다. 마치 필요한 내용만 뽑아서 핵심적인 부분만을 들려주는 것처럼 느껴지는 각각의 단편들은 짧은 페이지로 구성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이야기들이 압축된 것 같아서 그가 하고 싶었던 메시지를 짧은 지면 위에 담아내고 있습니다. 



P : 아무리 길고 복잡한 운명이라고 할지라도 모든 삶은 실질적으로 단 하나의 순간으로 이루어진다.


P : 나는 내일이면 죽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미래에 다가올 세대들에게 하나의 상징이 될 것이다.



알렙(알레프:aleph)은 헤브라이어 첫 번째 알파벳이자 처음이라는 뜻을 가졌습니다. 모든 각도에서 본 지구의 모든 지점들이 뒤섞이지 않고 있는 장소로, 현실과 초현실, 과거와 미래, 모든 시대의 장소와 사건을 한데 모으는 이야기를 쓰려고 했습니다. 저는 사실 온전히 이해했다고도 말을 못 하겠고 과연 읽은 것은 맞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생각해 보면 보르헤스의 작품들은 애초에 머리로 받아들일 수 있는 게 아닐지도 모릅니다. 모든 역사와 시간을 동시에 본다는 것은 존재하며, 동시에 존재하지 않는 것을 이해한다는 이야기지만 이것을 말과 글로 설명하려 할 때 인간은 수십 만년 동안 갈고닦은 언어의 기술이 아무짝에도 쓸모없다는 사실만을 깨닫는다고 생각합니다. 저뿐만 아니라 감히 생각하건대 보르헤스조차도 마찬가지였을 것입니다. 그는 말과 글이 아무리 뛰어나다 하더라도 결국 언어의 테두리 안에서 알렙이 할 수 있는 최선의 표현은 모순이거나 야심 차지만 빈약하기 그지없는 말들이라고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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