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로맹 가리
한 작가를 좋아하고 그 사람의 전집을 만나게 될 때는 기대가 커집니다. 모든 걸 완벽하게 할 수 없는 게 사람이듯이 로맹 가리의 작품 중 가장 실망하면서 읽었던 책이기도 했습니다. 우리와 조금 다른 정서의 책을 만나 낯선 문화와 책 속에서나 있을 법한 말투로 대화하는 두 사람과 너무나 이국적인 장면들, 예를 들어 분홍색 푸들과 침팬지가 파소도블레를 추는 무대가 왠지 상상이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오래도록 한 여자만을 사랑한 남자가 여자의 빛 없이는 못 산다며 처음 만난 여자와 밤을 보낸다는 이야기가 저에게는 한 번도 생각지도 못한 딴 세계였습니다.
마흔다섯의 항공기 조종사 미셸은 그의 인생에서 가장 힘든 불행에 취해 있던 날, 우연히 다른 불행 속에 허우적 대고 있는 리디아를 만납니다. 미셸은 사랑하는 아내의 죽음에서 멀리 달아나려는 중이었고, 리디아는 남편과 딸을 잃은 슬픔에 사로잡혀 있었고 그런 두 사람이 하룻밤을 같이 보냅니다.
미셀은 불치병으로 죽음을 앞두고 있는 아내 야니크의 요구로 두 가지 조건에 동의합니다. 첫째는 무의미한 삶의 연장을 포기하고자 하는 아내에게 남편으로서 현장으로부터 없어져야 한다는 것이었고 두 번째는 미셀이 다른 여자를 만나 사랑을 이어감으로써 자신의 죽음 후에도 남편 미셀의 삶에 존재하는 사랑이라는 사랑의 빛을 계속 유지하길 바랐습니다. 둘은 합의하였고 미셀은 예정대로 알리바이를 성립시키기 위하여 카라카스행 비행기를 예약하고 공항으로 갔으나 망설이게 됩니다. 결국 다시 발길을 돌려 죽음을 준비하는 아내가 있는 집으로 향합니다. 공항에서 택시를 잡아탄 미셀은 집 앞에 도착하여 택시에서 내리다 빵, 달걀꾸러미를 들고 길을 지나던 리디아와 만나게 됩니다. 리디아와 미셸은 우연히 만나 잠깐 대화를 나눈 후 헤어집니다. 남자는 품위나 예의 때문에 그녀를 놓쳐버릴까 걱정이었고, 여자는 아닌 척했지만 사실 그에게 주소를 적어주면서 자신의 집에 찾아오기를 원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미셸은 망설이다 리디아가 있는 집으로 찾아갔을 때 여자는 갑자기 흐느껴 울기 시작합니다. 6개월 전에 그녀에게 닥친 불행은, 여전히 그녀를 괴롭히고 있었고 그녀는 행복해지고 싶은 생각 따윈 전혀 없다고 말을 합니다.
이 책의 제목에서 나온 빛은 아마도 눈을 뜨게 하는 빛이 아니라 너무 강렬해서 눈을 감게 만드는 빛이라 상대방이 견디기 어려웠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사물에 비추어서 관찰자가 보게 하는 빛이 아닌 관찰자에게 비추어 주위를 못 보게 하는 빛이라 남자 주인공의 처지가 이러한 강렬함과 몰입을 이끌고 있을 겁니다. 여자에게서 빛을 발견해야 하는데, 자신의 빛으로 여자를 비추면서 사랑을 찾으려 하니 어려워 보였습니다. 하지만 원래부터 미셸도 진정한 사랑을 구했는지는 의문입니다. 단지 자신의 본능을 따랐을 거라 생각이 들었기에 번역자가 말한 “여자의 관점에서 쓰였다면 <남자의 빛>이 제목이 되었을 것이다. “는 의견에 공감합니다.
P : 어떤 남자가 한 여자를 자신의 온 눈으로, 온 아침으로, 온 숲으로, 들판으로, 샘으로, 새들로 사랑했다면 그는 오히려 자신이 그 여자를 충분히 사랑하지 않았다고 느끼는 법이오. 이제 시작이고 세상이 해야 할 일로 가득하다고 여기는 거요.
P : 삶에서의 모든 성공은 실패한 실패일 뿐이라고 누가 말했는지.
실망한 책을 소개하는 이유는 그의 밑바닥에 깔린 보이지 않는 절망이 보였기 때문입니다. 이 책은 1977년, 진 세버그와 이혼 직후에 출판하게 됩니다. 진 세버그가 생을 마감하고 로맹 가리는 쾌락적 여성편력을 이어갑니다. 용서받을 기회를 이미 놓쳐버린 자의 넋두리로 쓰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들어 측은하게 여긴 책이기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