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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무 Oct 23. 2023

마음의 파수꾼

by 프랑수아즈 사강

문학을 조금 안다고 자부심을 가졌던 철없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책에는 빠져 있지 못하고 스토리텔링이 중요한지 주제가 사회에 메시지를 던져 주는지 혹은 그것이 독자들에게 전달이 잘 되는지 등등을 따지며 쓸데없이 분석을 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때 저에게 프랑수아즈 사강을 알려주던 친구가 있었습니다. 비록 같은 단어로 설명이 되더라도 실제로 느끼는 감정은 다르기 때문에 비평가나 남들이 하는 말을 귀 기울일 필요가 없다고 말을 하며 건네준 책이 이 책의 원본이었습니다. 당시 사강의 책을 연속으로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같은 수업을 듣던 몇몇 친구나 교수님은 사강은 그저 연애소설이나 쓰는 문학적으로 가치가 없다고 평가를 하였습니다. 저에게는 책의 재미를 알려주었던 소중한 작가이기에 그런 비판을 향해 뭔가를 보여주고 싶었고 이 책을 그들 앞에서 발표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인물들의 감정 묘사가 뻔하지 않고 독특한 부분이 있고 당시 짜인 틀에 박히지 않아 그것들을 가볍게 무시하고 자신만의 스타일로 이야기를 이끌어 간다고 어필했습니다. 간결하고 불필요한 인물 묘사 따위가 없기 때문에 읽고 나면 아쉬운 감정이 들기도 하지만 짧은 글 안에 모든 걸 이야기하기 때문에 상관이 없다는 말과 함께 좋은 책이라고 어필했던 추억이 있습니다.


이 책은 인생에 대한 환상을 벗어버리고 담담한 시선으로 사람의 고독과 사랑의 본질을 그린 책입니다. 도덕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감성과 섬세한 심리묘사가 특징인데 할리우드에서 시나리오 작가로 일하는 45세의 도로시와 그녀의 연인인 영화사 대표 40세의 폴이 우선 등장합니다. 둘이 함께 탄 차에 어느 날 한 젊은 청년이 LSD에 취해 뛰어들게 되고이 청년이 도로시의 집에서 살면서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교통사고의 대가로 도로시는 이 청년 뤽을 보살필 의무를 지지만 점점 의무를 지나 미묘한 감정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도로시 주변의 사람들이 하나둘 죽기 시작하는데 알고 보니 뤽이 도로시를 불쾌하게 만드는 사람들을 셋이나 살해하고 자살이나 사고로 위장했던 것이었습니다. 뤽은 도로시 주선으로 영화배우로 성공하여 부자가 되지만 결혼한 폴과 도로시에게 애원하여 그들과 함께 살고 싶어 합니다.



P : 사람이 삶을 사랑할 때 삶이 발산하는 매력을 나는 결코 제대로 묘사할 수 없을 것이다. 낮의 아름다움, 밤의 혼란, 알코올과 쾌락이 선사하는 현기증, 부드러운 바이올린 소리, 일이 가져다주는 흥분, 그리고 건강. 각자의 앞에 놓인, 자신에게 주어진 그 모든 거대한 시간 속에서 스스로를 생생하게 일깨우는 믿을 수 없는 그 행복을.



사강이 쓴 작품들의 제목은 모호하면서도 암시적입니다. 감탄할 만큼 작품에 꼭 들어맞으면서도 동시에 한없는 여운을 남깁니다. 모두 정확한 말이면서도 아리송한 말들이 많은데 "태양의 소리" 같은 말은 이해하기 곤란한 모호한 표현들이 많습니다. 태양에게는 소리가 없겠지만 시적 감각을 지닌 사람이라면 천체들이 돌아가면서 내는 듯한 우주의 소리를 상상하게 됩니다. 사강의 문학에서도 그런 모호성이 기묘한 효과를 냅니다. 단지 표현뿐만이 아니고 행복 추구와 고독이 어울리며 빚어내는 모호성이 사강의 작품에서 느껴집니다. 그녀의 고독감은 노곤하고 부드럽고 이에 따르는 슬픔은 권태로우면서도 아늑하며 아름답기까지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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