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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무 Oct 29. 2023

고골 단편집

by 니콜라이 고골

예전에 헌법재판소 우측 담장을 끼고 들어가면 골목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신기한 간판이 하나 있었습니다. 코 모양을 한 예술작품이 간판이 들어가야 할 자리에 붙어 있었고 이름도 <카페 코>라는 작고 이쁜 카페가 하나 있었습니다. 그 조형물은 커다란 두 개의 콧구멍도 시원하게 보이고 마치 술 취한 어른의 딸기코를 연상시키듯 작은 숨구멍들까지 세밀히 표현해 놓았는데 지금은 제가 알기로는 없어진 걸로 알고 있습니다. 저는 이곳에 머물러 한참을 바라보며 사진도 찍었고 이곳에 코를 붙여 놓은 이유가 너무나 궁금해서 카페 안으로 들어가 바리스타들에게 여쭤봤지만 그 어떠한 답변도 들을 수 없었습니다. 그나마 납득이 갔던 이야기는 커피를 파는 카페다 보니 향과 관련 있으니 코를 붙여 놓았을 것이라는 추측을 했지만 저는 구석에 꽂혀 있던 책에서 다른 이유를 찾게 되었습니다. 니콜라이 고골의 책이 두권 꽂혀 있는 거 보고 사장님은 고골의 팬이었을 것이고 특히 그의 작품 중 하나인 <코>를 좋아하셔서 그렇게 지었을 거라고 생각을 하였습니다.


1809년에 태어나 1852년까지 살았던 고골은 작품을 통하여 주로 부패하고 부조리한 욕망과 그로부터 헤어 나오지 못하는 속물근성의 인간상을 주로 그려 왔습니다. 국내에서는 <외투>가 아무래도 제일 많이 읽혔지만 프랑스에서 학생들이 반드시 읽어야 하는 작품 중에는 1836년에 발표한 <코>라는 단편이 있습니다. 냄새를 맡는 기능으로만 알고 있는 신체 기관인 사람의 코가 작품의 주인공으로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얼굴에 붙어 있던 코가 어느 날 이유도 없이 떨어져 나와 하나의 인격체로 변신하여 거리를 배회하다가 결국은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다는 이야기인 이 단편은 잘린 코가 주인공임에도 흉측하게 느껴지는 것보다 오히려 친근하게 다가왔습니다. 그리고 왜 하필 코였을까 라는 의문으로 이어졌고 찾아보니 원래의 제목은 코가 아닌 <꿈>이었다고 합니다. 꿈속에서나 일어날 만한 이야기니 적당한 제목일지도 모르지만 평소 단어를 가지고 노는 것을 좋아하던 고골은 러시아어로 꿈이라는 단어는 “Son”이라 표기에서 거꾸로 읽으면 코라는 뜻의 “Nos” 가 됩니다. 반전의 제목은 꿈을 뒤집어 코로 만든 것이었습니다.



P : 미소는 더욱 환해졌다. 그러나 금세 불에 덴 사람처럼 놀라 물러섰다. 자신의 코가 없다는 것을 기억해 낸 것이다.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그는 제복을 입은 신사에게 대놓고 5등 문관으로 행세하는 비열한 사기꾼일 따름인 너는 아무것도 아니며 그저 내 코에 불과하다고 말할 요량으로 돌아섰다. 그러나 이미 코는 사라지고 없었다. 아마도 누군가를 방문하기 위하여 급히 떠난 게 틀림없었다.


P : 어쨌든 간에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이 이야기에도 무언가 있는 것이다. 누가 뭐라고 해도 세상에 이와 비슷한 사건은 일어난다. 드물지만 일어나는 법이다.


P : 그러나 하나, 둘, 이것저것 고려하여 생각해 본다면, 심지어…. 하기야, 상식에 어긋나는 일이 일어나지 않는 곳이 또 어디 있겠는가? 어쨌든 간에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이 이야기에도 무언가 있는 것이다. 누가 뭐라고 해도 세상에 이와 비슷한 사건은 일어난다. 드물지만 일어나는 법이다.


1915년에 카프카가 <변신>을 발표했을 때 전 세계가 충격을 받았는데 이 책은 1836년이니 당시 사람들은 시대를 앞서간 이 작품을 어떻게 받아들였을지 상상조차 하기 힘들 정도로 재밌습니다.


절대적 까칠함을 자랑하던 나보코프는 생에 단 한 편의 전기를 쓰는데 그 대상은 고골이었습니다. 그는 여타 다른 전기들과는 다르게 고골과 함께 독자 앞에서 자신의 모습을 과감하게 드러냈습니다. <롤리타>를 쓰기 전 유명하지 않던 나보코프는 고골의 인생을 죽음에서부터 시작해서 170여 페이지 분량의 짧은 전기로 완성을 합니다. 일말의 자비도 없는 나보코프의 주인공들과 달리, 자신의 문학적 선배를 존경하고 애정하나, 불행하게도 고골의 삶 자체가 이미 고골스러웠다고 말하며 유일하게 존경했던 작가의 인생을 우리에게 보여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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