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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무 Sep 21. 2023

레이싱 인 더 레인

by 가스 스타인

한 때 저에게는 너무나 사랑하는 강아지가 있었습니다. 태어난 지 100일 정도 때부터 같이 있었고 12년 동안 저와 인생을 같이 하였습니다. 재즈 음악을 좋아하기에 이름을 재즈로 지어주고 일상을 함께 하면서 친구가 되어 주었고, 여행도 같이 하며 특별한 나날들도 함께 했던 쏘울메이트였던 사랑스러운 리트리버였습니다. 혼자인 제 옆을 끝까지 지켜주던 사랑스러운 그 강아지도 어느 날 제 곁을 떠났습니다. 강아지도 사람만큼 오래 살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생각에 많이 울었던 기억이 납니다. 강아지와 같이 생활하는 건 어렸을 때는 한없이 귀엽다가 제 눈에 펀치를 날려 멍이 들어 주위에 이상하게 보이게끔 만들기도 했던 사고뭉치였다가도 나이가 들면서 더없이 나만을 이해해 주는 유일한 사람 같아서 마음이 아팠습니다. 어쩔 수 없는 이별을 앞둘 때의 슬픔은 말로 다 설명할 수 없을 정도였고, 아마 이런 이별을 또다시 겪을 수 없기에 저는 다시는 강아지를 키우지 못할 거 같습니다.


이 책을 보게 된 건 사실 영화를 통해서였습니다. 포스터에 있는 강아지의 모습이 제가 키우던 강아지와 닮아서였습니다. 책이 먼저 나오고 영화가 나왔다는 사실을 알고 책을 나중에 찾아보게 되었습니다. 영화도 그렇고 책도 그렇고 강아지 엔조의 눈으로 바라본 세상이었습니다. 영화와 책의 스토리는 거의 비슷합니다. 엔조의 주인 데니를 만나고 성장해 가는 가족들을 보여줍니다. 레이서였던 데니의 어려움을 겪는 과정에서 좌절하지 않고 옆에서 조용히 응원해 주는 엔조와 신뢰를 바탕으로 한 가정이 생겨 사랑스러운 가족을 꾸민다는 이야기입니다. 강아지의 눈으로 봐서 그런지 세상과 인생을 좀 더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따스한 온기를 느끼게 해 줍니다.


자신의 이름이 엔조 페라리에서 따온 강아지는 카레이서 주인의 영향으로 카레이싱을 주인만큼이나 사랑합니다. 무조건 빨리 달린다고 승자가 될 수 없다는 레이싱 경기에서 레이서가 전복을 피하기 위해 기술과 방법을 연마하듯 인생 역시 경험과 지혜로 역경을 헤쳐나간다는 점을 엔조의 입을 통해 이야기합니다. 카레이싱에 빗대어 인생을 표현한 문장들이 재밌고 가슴에 새기게 됩니다. 영화에는 안 나오지만 엔조는 사람이 되고 싶어 합니다. 실제로 몽골에서는 개가 죽으면 주인이 사람으로 환생하라는 덕담을 한다고 합니다. 그걸 엔조는 내셔널 지오그래픽 채널에서 보고 사실로 믿기도 합니다.



P :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조금 전에 한 일들을 기억하지 말 것. 기억하면 현재를 놓치게 된다. 데니는 늘 말했다. “아주 살짝, 페달이 달걀 껍데기인 것처럼 살며시 밟아야 해. 달걀을 깨면 안 되니까. 빗속에서는 그렇게 운전해야 하는 거야.”

기억하지 말아야 한다는 대목이 항상 맘에 든다.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조금 전에 한 일들을 기억하지 말 것. 기억하면 현재를 놓치게 된다. 레이싱에서 성공하고 싶은 드라이버라면 기억해선 안 된다. 데니는 레이싱을 움직임이라고 말한다. 한순간의 일부이며, 그 순간을 제외한 어떤 것도 인식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은 나중에 해야 한다.


P : 나는 준비가 됐다. 그런데… 데니가 너무 슬퍼한다. 그는 나를 몹시 그리워할 것이다. “넌 늘 나와 함께였어. 넌 언제나 내 엔조였지.” 맞다. 그랬다. 그의 말이 옳다. 데니가 내게 말한다. “괜찮아. 이제 가야 한다면 가도 돼.”

나는 고개를 돌린다. 거기, 내 앞에 내 삶이 있다. 내 어린 시절이. 내 세계가. 내 세상이 나를 에워싸고 있다. 내가 태어난 스팽글 들판 주변, 오르내리는 구릉을 뒤덮은 황금빛 풀이 바람에 흔들려, 그 위를 지나면 배를 간질인다. 하늘은 파랗고 태양은 또 얼마나 동그란지. 그 들판에서 잠시만 더 놀고 싶다. 다른 존재가 되기 전에 조금만 더 나 자신으로 있고 싶다.



엔조도 결국 저의 바람을 외면하고 끝을 향해갑니다. 주인의 삶이 나아질 때 즈음 이 사랑스러운 엔조는 인생의 마지막을 준비합니다. 데니는 꿈에 그리던 F1 레이서가 되었지만 더 이상 사랑스러운 엔조는 나오지 않습니다. 하지만 성공을 거둔 데니 앞에 어느 날 자신의 팬이라는 어린 소년을 만나게 됩니다. 그 어린 소년은 자신의 이름이 엔조라고 밝히며 데니를 바라보는데 눈이 참 비슷합니다. 사람보다 더 사람 같은 엔조를 통해 영화를 보던 순간, 책을 읽던 순간 그리운 저의 재즈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과연 제 강아지는 엔조처럼 행복했을까 미안하기도 했고 내 앞에 나타나 줘서 고마웠다고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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