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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무 Oct 05. 2023

영화관을 나오면 다시 시작되는 영화가 있다

by 김호영

세상에는 많은 영화가 있지만 제가 생각하는 영화는 극장 안에서 그대로 끝이 나버리는 것과 극장 바깥으로 나와서도 계속 생각이 나고 한번 더 보게 만드는 영화가 있습니다. 어떤 영화는 팝콘과 함께 그 자리에서 소화되지만 어떤 영화는 스크린 바깥까지 스며 나와 저에게 계속 무엇인가를 떠오르게 하는 시간을 제공합니다. 전자가 더 나쁘고 후자가 더 좋은 게 아니라 그저 후자의 경우는 감독과 배우들과의 교감과 대화를 더하게 만드는 차이일 것입니다. 사실 여러 비평이나 감상들이 인터넷상으로 나돌아 다니지만 믿음이 가는 글을 찾기는 쉽지가 않습니다. 주례사 비평 같은 글들과 이해가 안 되는 악플 테러들 속에서 좋은 영화, 나에게 맞는 영화를 찾기란 쉽지가 않은데 서점에서 우연히 발견해 몇 페이지를 읽어본 이 책에서는 그런 점이 보이지 않아 좋았습니다.


이 책은 영화를 향한 자문자답이자 고백이며 그 영화에 대한 사유의 기록입니다. 영화를 영화답게 하는 조건들이 있는데 그중 저자는 극장이란 공간의 중요성을 언급합니다. 극장은 세상의 경계로 지정해 그곳에 입장한다는 건 또 다른 세계로 진입하겠다는 일종의 의식으로 여겨질 정도로 영화에 진심인 저자는 영화관을 나온 이후부터 시작되는 변화들에 대해 롤랑 바르트의 표현을 빌려 묘사합니다.



P : 무기력해지고 느슨해진 몸에 잉크처럼 번져오는 영화. 상영되는 동안 몰입과 거리두기 사이의 미묘한 파장을 만들어내다 객석을 빠져나오는 순간부터 심장과 머리에 스멀스멀 밀려드는 영화.



이 글이 좋은 이유 중 하나가 흑백영화나 고전이 아닌 비교적 최근 작품 11개를 실은 것입니다. 현재도 열심히 활동하고 있는 감독의 영화이고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작가가 고른 이유는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기 힘든 각박한 제작 환경 속에서도 자신만의 스타일로 최상의 결과를 만들어내고 있다는 점과 찬찬히 곱씹고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시간을 만들어주기 때문입니다. 일회성적인 작품들이 넘쳐나는 시대에 영화가 말을 걸고 이에 화답하는 풍경을 마주한다는 것 자체가 귀하고 소중하게 다가왔습니다.


저자는 프랑스에서 유학 생활을 하였기에 자신의 사유의 폭을 넓혀주는 체험을 프랑스 영화를 통해 발견했습니다. 개인 취향이 맞았을 것이고 그렇다고 프랑스 영화만이 가지고 있는 특징은 아닐 것입니다. 체험을 기반으로 한 출발이었고 어떻게 보면 한쪽으로 치우친 모습이 이상하게 저는 신뢰가 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토록 솔직하게 영화와 소통하는 사람을 주변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워서 그런지 신선하게 다가온 작가의 글을 단숨에 읽을 수 있었던 거 같습니다.



P : 마리아는 또 다른 자아들과의 투쟁에서 패배했을까? 모든 것을 다 잃었을까? 영화의 말미에서 그녀는 젊음을 떠나보내고 확실하게 늙음의 길로 들어서지만, 그럼으로써 자신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까지 되찾을 수 있는 힘을 얻는다. 결코 가볍지 않은 고통과 혼란의 시기를 겪었지만 마침내 젊은 날의 그림자들로부터 분리되었고, 그로부터 잃어버렸던 정신의 자유를 되찾은 것이다. <클라우즈 오브 실스 마리아>



11개의 영화는 아직 보지 못한 작품입니다. 영화가 무엇인지, 지금 내가 본 것은 무엇인지 한 번쯤 생각하는 시간일 수 있다는 생각에 올해의 마무리를 함께 할 예정입니다. 다시금 두근거리게 만든 영화에 대한 열정적인 에세이는 영화관에서 이전보다는 더 맑은 눈으로 영화를 만날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하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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