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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무 Oct 15. 2023

속죄

by 이언 매큐언

문학이 사랑받는 이유는 겉으로 드러나는 세계에 머물지 않고 인간들이 숨기고 싶어 하는 깊숙한 내면을 파헤쳐 보여주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세계 안에서 인간 세상의 민낯은 전형적이지 않고 작가들은 뻔하고 예측 가능한 것보다는 좀 더 충동적이고 모순 덩어리인 인간 마음의 꿈틀거림을 묘사하는 데 몰두합니다. 관찰의 재료는 주로 작가 자신의 내면으로 어린 시절부터 자신의 마음을 스쳐갔던 온갖 미묘한 감정과 충동 같은 것에서 드러나는데 질투, 선망, 열등감, 우월감, 증오, 살의 등등 자신을 주어로 해 털어놓긴 어려운, 날것의 내면적 충동에 상상력을 더해 증폭하고 변형시키며 등장인물들의 내면을 만들어갑니다.


이 책의 1~3부, 그리고 <1999년 런던>으로 되어있습니다. 소설 속의 소설이라는 메타 픽션을 띄는데 매큐언이 버지니아 울프에게서 영향받아 중간중간 의식의 흐름 기법이 쓰입니다. 1부에서는 1930년대에 신흥 부자 가문인 탈리스 저택을 배경으로, 13살의 어린 브리오니가 상상 속에서 지어낸 이야기가 어떤 사건들을 일으키는지 보여줍니다. 2부에서는 2차 세계 대전 중 전장으로 강제 파병된 로비의 시선으로 덩케르크 퇴각 장면과 함께 전쟁의 반인륜적이고 비극적인 참상을 그리고 3부는 속죄를 위해 대학을 가는 대신 간호학교에 가서 간호사가 되는 브리오니의 이야기입니다. 그다음 후기처럼 짧게 이어지는 <1999년 런던>에서는 77세의 노인이 된 브리오니가 앞서 1~3부의 이야기가 사실은 소설가인 자신이 쓴 속죄의 서사임을 밝힙니다. 책 속에서 브리오니는 허황되고 무절제한 상상력으로 치명적인 잘못을 저지릅니다. 상류층 집안의 브리오니는 가정부의 아들인 로비와 자기 언니 세실리아가 연애를 할 리가 없다는 계급적 무의식을 바탕으로 연인들의 실랑이를 오해하고 그 오해가 사실이라고 믿고 확신에 찬 거짓말을 합니다.


매큐언은 브리오니와 자신을 중첩시키고, 동일시합니다. 브리오니의 평생에 걸친 속죄의 노력은 다름 아닌 작가 이언 매큐언의 속죄의 과정입니다. 매큐언은 어린 브리오니를 통하여, 예술적 상상력이 내재하는 윤리적 위험성을 환기시킵니다. 브리오니는 평생을 통해 이를 극복해 나가고 성숙해 가는 것입니다. <1999년 런던>을 보면 자신의 소설에 대해 절대적 권한을 행사하는 작가의 지위에 그에 따른 도덕적 책임에 대해 질문합니다. “소설가는 세상의 진실을 어떻게 그려낼 것인가? 세상의 폭력과 비극은 왜 생겨나는가?” 매큐언은 그런 질문을 던지고 대답을 찾고자 합니다. 그의 대답 중 하나일 것으로 추정되는 글이 있는데 9.11 테러 당시 매큐언의 신문 사설이 그중 하나일 거라 생각됩니다.


가디언지 사설 : 즉, 다른 사람의 마음속에 자기 자신을 집어넣는 것이 감정이입의 본질이다. 이것이 공감의 기제이다. … 만일 비행기 납치범들이 그들 자신을 승객들의 생각과 감정 속에 상상해 넣을 수 있었다면 아마 계획을 진행하지 못했을 것이다. 희생자의 마음속에 일단 들어가면 잔혹해지기란 어렵다. 자기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의 마음을 상상하는 것은 우리 인간성의 핵에 자리한다. 그것은 공감의 본질이며 윤리의 시작이다.”


브리오니와 매큐언은 자주 오버랩됩니다. 그것은 브리오니와 매큐언 둘 다 소설가이기 때문이고, 속죄와 진실의 여정을 가기 때문입니다. 특히 매큐언은 소설의 2부인 덩케르크 퇴각 장면을 쓰기 위하여, 방대한 자료를 읽고 참고하며 진실을 드러내려 노력했습니다. 브리오니가 자신이 잘못을 저지른 로비의 입장이 되어, 그의 목소리를 되살려서 진실을 전달하려고 한 것처럼 말입니다. 소설을 쓰며 브리오니는 자기 삶에서 결여된 것이 결국 자기 인생의 뼈대였음을 깨닫게 됩니다. 그 이유는 브리오니가 속죄하는 마음으로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소설을 쓰면서도 진실을 고백할 용기를 갖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P : 그녀의 중편소설에 없는 것은 그녀의 삶에도 없었다. 그녀가 삶에서 정면으로 부딪치기 싫어했던 것은 중편소설에서도 빠져 있었다. 진정한 소설이 되기 위해 빠져서는 안 될 것이 바로 그것이었는데도 말이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 그녀에게 부족한 것은 소설의 뼈대가 아니었다. 그녀 자신의 뼈대, 그녀 인생의 뼈대였다.



이언 매큐언은 한 인터뷰에서 이 책을 쓴 의도가 "자기 자신에게 진실을 말할 때 얼마나 많은 용기가 필요한지에 대한 생각"을 다루고자 했다고 말입니다. 매큐언의 이 책은 흥미진진한 이야기 속에 소설가의 그러한 고민을 진중하게 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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