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무무 Sep 14. 2023

노예 12년

by 솔로몬 노섭

1820년, 자유 주와 노예 주의 세력균형 유지를 위해 미국 남북 지역이 타협을 합니다. 이 협정을 “미주리 개혁”이라고 하는데 남북이 타협한 결과, 북위 36도 30분을 기준으로 북쪽은 노예제가 금지된 자유 주, 남쪽은 노예제가 허용된 노예 주가 됩니다. 문제는 이에 앞선 1808년 미국에서 노예 수입이 불법으로 규정되면서 농장주들이 노예 수급에 어려움을 겪기 시작합니다. 이로 인해 노예 인신매매가 횡행하게 되고 이 책을 쓴 솔로몬 노섭에게는 공연을 미끼로 접근한 뒤 노예 수용소에 팔아넘깁니다.


이 책은 많은 분들이 영화로도 보셨겠지만 소설이 아닌 솔로몬 노섭이 겪은 이야기이자 본인의 야이리입니다. 1841년, 미국 뉴욕에서 가족들과 함께 살고 있던 비올리스트 솔로몬 노섭은 어느 날 낯선 백인들에게 공연 제안을 받고 워싱턴으로 향합니다. 공연 뒤 저녁 식사를 마친 노섭은 갑자기 정신을 잃게 되는데 다음날 불법 노예 수용소에서 쇠사슬에 묶인 채 마취에서 깨어났습니다. 노섭은 곧 노예 제도가 있는 주 가운데 가장 악명이 높은 루이지애나 주로 팔려가게 되었고 영문도 모른 채 그곳에서 인권모독과 무자비한 폭행을 감내하며 12년 동안의 노예 생활을 합니다.


노예로 팔려간 노섭은 플랫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달고 혹독한 노예생활을 견뎌야 했습니다. 끊임없이 구타를 당하며 고된 노동에 시달리던 노섭은 자유를 향한 희망만큼은 버리지 않았습니다. 전망대 건설 작업을 하게 된 노섭은 그곳에서 자신에게 우호적인 캐나다 출신의 백인 목수 사무엘 베스와 친구가 됩니다. 노섭은 자신이 납치당한 이야기를 베스에게 이야기를 하면서 자신의 가족들이 살고 있는 뉴욕 주 새러토가 스프링스로 편지를 보내달라고 부탁합니다. 탈출을 시도했지만 실패한 적이 있던 노섭에게 베스는 마지막 희망이었을 겁니다. 베스는 너무 위험하다며 처음에는 주저했지만 결국은 노섭이 부탁한 편지를 전해주기로 합니다.


노섭이 가족에게 쓴 편지를 통해 노섭의 지인은 지역 보안관과 함께 노섭을 찾아옵니다. 농장 주인과 함께 있던 노섭에게 보안관은 뉴욕에서 온 자유인의 신분이 맞는지 물어봅니다. 농장 주인은 노섭이 자신의 노예라고 주장했지만 보안관과 함께 온 노섭의 지인은 농장 주인을 막아서고 그의 탈출을 돕습니다. 이들과 함께 마차에 올라탄 노섭은 함께 일하던 노예 팻시와 마지막 포옹을 나눈 뒤 떠나고 꿈에 그리던 자유를 되찾고 가족의 품으로 되돌아옵니다. 이후 실제로 노섭은 노예 탈출 뒤 흑인 인권을 찾기 위해 평생을 바쳤고 이런 그의 삶은 사회적 억압에 맞선 흑인들의 저항 운동으로 이어졌습니다.



P : 배스도 감정이 격해진 듯 이제껏 누군가의 인생에 이토록 깊게 관심을 가진 적은 처음이라며 우정을 다짐했다. 그러면서 약간 우울한 어조로 자신도 세상을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는 외로운 사람이라며, 이제 늙어서 언제 이 땅의 여행을 끝낼지 모르는 판국에 혈혈단신으로 마지막을 맞이해야 하는데, 자기를 기억해 줄 사람 하나 없으니, 얼마나 보잘것없는 인생이냐고 한탄했다. 그래서 더욱 내가 자유를 되찾는 일에 도움을 주고 싶고, 국가적인 수치라고 할 수 있는 노예 제도에 맞서 계속 싸워나가고 싶다고 했다.



이 책은 흑인 문학의 선구자적인 작품으로 재평가받기 시작했습니다. 1984년에는 <솔로몬 노섭의 오디세이>라는 제목의 영화로 제작되고, 2014년에는 스티브 맥퀸 감독이 <노예 12년>이란 동명의 영화를 제작했습니다. 2014년 열린 제71회 골든글로브 시상식과 제86회 아카데미상 시상식에서 작품상을 수상하기도 합니다. 노섭이 자유인의 삶을 누렸던 뉴욕 주 새러토가에서는 매년 7월 셋째 주 토요일을 <솔로몬 노섭의 날>로 지정해 그의 뜻을 기리고 있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영화를 찍으며 생각한 것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