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개

by 이언 매큐언

by 무무

한 사물이나 사건을 바라보고 있는데 다르게 느끼거나 다르게 기억하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따라서 분명 같은 공간에 그것을 바라봤는데도 불구하고 해석이 갈리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정답이 없기에 서로 틀린 것이 아니고 다름을 이해해야 하기에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기억을 맞추거나 의견을 조율할 경우들이 그래서 생겨나는 거 같습니다.


이 책은 내면의 변화로 악을 이겨내야 한다고 생각하는 존과 외부의 질서로 하여금 악을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버나드 이 두 부부의 이야기입니다. 작가는 좀 더 이들을 객관적으로 보기 위해(?) 제러미라는 사위의 관점에서 이야기가 진행이 됩니다. 때는 바야흐로 동독과 서독이 대립하던 시대로 두 부부의 이념은 같지만 이념을 대하는 태도에서 차이성을 나타내며 대립을 합니다. 제러미가 이야기하듯 문명에는 이상과 현실 이론과 활동이 공존해야 되는 것인데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고 존중하지 못하는 모습을 두 부부는 보여줍니다.


두 노부부는 1944년 런던에서 처음 만나 전쟁이 끝나고 결혼한 버나드와 준은 공산주의 이념으로 세상을 바꾸겠다는 꿈과 새로운 생활에 대한 기대에 부풀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신혼여행 직후 각각 합리주의자와 신비주의자, 인민위원과 요기, 활동가와 기권자, 과학자와 직관론자 양극의 성향을 알게 되고 서로 다른 길을 걷습니다. 서로 다른 생각을 평생 살면서도 떨어지지 못하는 두 부부를 제레미는 의아해하면서 따로 각자의 이야기를 듣고 적습니다.


그리고 두 부부가 신혼여행에서 어떠한 사건이 있었음을 깨닫습니다. 프랑스 남부의 인적 없는 산길에서 두 마리 검은 개의 형태로 나타난 악과 조우한 후 신의 존재를 인지하고 초월적인 세계에 눈을 떴다는 준과 그것은 굶주린 들개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고 코웃음 치는 버나드였습니다. 과연 이 개는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요? 사실 잘 모르겠습니다. 확실한 거는 양극단에 선 그들이었지만 그들은 결국 같은 노력을 해왔고 같은 것을 추구하며 살았던 것이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비록 형태는 달랐지만 그들은 각각 자신의 삶을 지키기 위해 분투하였습니다.


P 26 : 어디에도 누구에게도 속하지 않았다는 정서적인 공허함은 내게 지적으로 큰 영향을 미쳤다. 나는 애착이 없고 아무것도 믿지 않았다. 그것은 내가 의심 많은 사람이어서도 아니고 이성적인 호기심이라는 쓸모 있는 회의론으로 무장하거나 모든 주장을 다양한 각도에서 바라봐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해서도 아니다. 내게는 대단한 대의도, 항구적인 원칙도, 이렇다 할 근본적인 사상도 없었고, 진심으로, 열렬히 혹은 조용히 옹호할 수 있는 초월적인 존재도 없었다.


책에서 질문을 던집니다. “근본적인 이념이 비슷함에도 불구하고 왜 갈등이 일어나는 것일까?” 사람이 근본적으로 가지는 삶의 태도와 방향성은 타협점을 찾아내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 삶의 태도는 스스로의 정체성을 규정하고 존재의 이유를 정립하기에, 특히 가지고 있는 가치관이 뚜렷하면 뚜렷할수록 타협점은 더더욱 찾기 힘들어집니다. 저도 물론 말로는 유연한 사고를 해야 한다고 말도 하고 가지고 있는 생각의 불확실함을 알고 있으면서도 다른 형태의 삶의 태도를 마주 했을 때 불편함을 느끼기도 합니다. 그래도 이제라도 다른 생각을 만나면 자극을 받기도 하며 나이가 들어갈수록 그 생각들이 모여 또 다른 생각을 정립할 수 있게 도와준다고 믿으려고 합니다. 정말로 헤겔이 말한 정반합 이론처럼 인생은 반대되는 생각과 만나 합의점을 찾아가는 그 과정의 연속 일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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