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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무 Sep 27. 2023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

by 하인리히 뵐

가짜 뉴스의 정의를 보면 누군가 의도적으로 유포한 거짓 정보입니다. 분명한 의도가 있고 사람들의 눈을 속이기 위해 있을 법한 이야기를 보여주는데 과연 우리는 진짜와 가짜를 구분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뉴스와 신문들을 보다가 다른 매체와 비교를 해보게 되고 한 가지의 팩트가 이렇게 여러 개의 이야기가 되는지 답답한 마음에 이 책을 꺼내게 되었습니다.


일요일 낮 신문기자 퇴트게스가 총에 맞아 사망합니다. 그날 저녁 살인자는 자수를 하지만 살인을 전혀 후회하지 않는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잔혹해 보이는 이 살인자는 사실 수요일까지만 해도 너무나 평범하게 살아가는 27살 여자였습니다. 가정부 일을 하며 성실하게 살던 카타리나 블룸은 수요일 밤 댄스파티가 있는 곳에 갑니다. 그녀는 괴텐이라는 남자를 만났고 자신의 집에서 하룻밤을 보냅니다. 다음날 아침 괴텐이 떠나자마자 경찰이 들이닥칩니다. 그는 살인혐의를 받는 은행 강도였고 경찰은 그녀가 그의 도주를 도왔다고 여겨 연행합니다.


이 현실도 믿기지가 않은데 그녀에게 더 큰 일들이 나타납니다. 그것은 신문 1면을 장식한 헤드라인이었습니다. “강도의 정부 카타리나 블룸이 신사들의 방문에 대해 진술을 거부하고 있다.” 차이퉁은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기사를 쓰는 걸로 유명한 타블로이드 신문이었습니다. 퇴트리스는 경찰들에게 정보를 듣고 혐의를 마치 사실인 거처럼 둔갑시킵니다. 기자는 이혼 경력이 있는 카타리나가 신원이 수상한 사람들을 여러 만나왔고 범죄 연관성을 보여줍니다. 확인을 거치지 않고 한 사람의 사생활을 공개해 버린 것입니다. 기자 정신이 투철한(?) 퇴트리스는 전남편과 어머니까지 찾아갑니다. 기자는 인터뷰하는 사람들에게 덫을 놓았고 그들은 인공저수지의 물고기처럼 미끼를 물어버렸고 악랄한 기사로 더 잔인하게 카타리나를 짓밟기 시작합니다. 심지어 어머니는 기자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충격을 받고 사망에 이릅니다. “카타리나 블룸의 첫 번째 희생자는 바로 그녀의 어머니다. 그녀는 어머니의 죽음 앞에서 전혀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는 것은 거의 극도에 변태에 가깝다.”라는 기사 제목으로 신문에 싣습니다. 많은 대중들은 기사만을 믿고 카타리나에게 극도의 살의를 느낍니다. 수요일부터 일요일 아침까지 짧은 시간에 카타리나는 강도의 정부, 허영 가득한 이혼녀, 어머니의 죽음에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는 사이코패스가 되어 결국 기자를 살해한 살인자가 됩니다. 작가는 카타리나 블룸의 살인을 통해 눈에 보이는 폭력을 보여주면서 그녀가 겪은 눈에 보이지 않는 폭력, 인격살인을 보여줍니다.


이 책을 시작할 때 재밌는 글이 있습니다. “이 이야기에 나오는 인물이나 사건은 자유로이 꾸며낸 것이다. (중략) <빌트>지와의 유사점이 있다고 해도 그것은 의도한 바도, 우연의 산물도 아닌, 그저 불가피한 일일 뿐이다.” 이 이야기 덕분에 차이퉁과 빌트가 더 연결이 되었습니다. 실제로 하인리히 뵐과 <빌트>는 적대적인 관계였습니다. 1960년대 후반 독일에서는 나치 세력 청산을 주장하는 학생 운동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빌트지에 속해 있던 <액셀 슈프링거> 사의 신문들은 학생운동을 폭도로 모는 프레임을 씌어버립니다. 그리고 어느 조그마한 도시에서 시민 한 명이 은행강도에 의해 사망하는 사건이 벌어지고 그때 <빌트>지에서는 이 사건을 “바더 마인호프 그룹”이라는, 학생운동으로 시작한 과격 테러 조직의 소행이라고 보도합니다. 사람들은 이 그룹이 무고한 시민을 죽였다는 기사에 아무 의심 없이 믿었습니다. 아무런 확인 절차 없이 근거도 없는 가짜 뉴스였습니다. 그때 하인리히 뵐은 <슈피겔>을 통해 빌트지의 근거 없는 보도를 멈추라고 기사를 씁니다.


기사가 나오고 작가는 독일에서 테러조직을 옹호한다고 엄청난 비난을 받아야 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허위보도를 일삼은 언론과 의심하지 않는 대중들을 돌려까기 위해 이 책을 냅니다. 언론의 폭력을 문제 삼은 하인리히 뵐의 이 책은 당대의 가장 진보적이고 비판적인 문제작이었을 뿐 아니라 현재에도 시청률과 판매 부수에 죽고 사는 상업주의 언론의 실상을 폭로하는 데 매우 큰 효과를 발휘하고 있습니다.


카타리나 블룸의 실제 모델은 당시 언론의 피해자였던 페터 브뤼크너라는 교수였습니다. 바더 마인호프 그룹의 일원들에게 숙식을 제공했다는 언론의 보도에 교수직에서 해임되고 대중들의 비난을 받았던 사람입니다. 시간이 흘러 무혐의 처분을 받고 복직도 하였지만 회복불능 상태가 되어버렸습니다. 끝내 어떠한 명예에 대한 보상받을 수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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