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린 에바디
몇 년 전 중국과 러시아가 안보리 회의에서 미얀마 개입을 반대하면서 사실상 UN이 미얀마에 대한 군 투입을 포기했습니다. 평화는 매우 근본적인 인간의 지고한 권리로 평화 없이는 표현의 자유나 정의 같은, 그 어떤 권리도 무의미하다고 말한 작가의 글이 떠올라 어제 다시 읽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이슬람 최초의 여성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이 책은 그녀의 삶을 이야기합니다. 시린 에바디는 행동하는 지성인으로서 인간의 존엄을 짓밟는 역사와 맞서 인권수호에 앞장서왔고 이 책은 그녀의 고독하고도 위대한 투쟁의 역사를 담은 회고록입니다.
1947년 그 당시 평범하지 않았던 남자와 여자를 차별하지 않는 가정에 태어나 독립심 있는 여성으로 자랐습니다. 테헤란 법과대학을 최우수로 졸업하고 23세에 이란 최초의 여성 판사가 되었지만 이러한 훌륭한 인재임에도 불구하고 1979년 이슬람혁명 후 “여성은 감정적이어서 법집행에 적합하지 않다”는 얼토당토않은 이유로 판사직을 박탈당합니다. 그녀는 그때를 회상하며 “내가 판사직을 박탈당하게 된 결정은 1980년 마지막 날에 있었다. 한 지방법원의 매우 큰 방에서였다. 그것은 회의라기보다는 해고 통고에 가까웠다. 숙청위원회 사람들은 나에게 의자도 권하지 않았다. 그중 두 사람은 내가 아는 사람이었고, 한 사람은 불과 1년 전까지 내 밑에 있던 후배였다.”라고 말했습니다. 이란 혁명은 변질되어 억압적인 분위기를 조성했고 뒤이어 발생한 이라크 전쟁으로 여성과 아동의 인권이 짓밟힌 참사를 저질렀습니다. 1992년 그녀는 약자들의 인권을 수호하는 인권변호사의 길을 걷기 시작했고 그 이후로도 계속해서 그녀는 위험하고 불합리한 문제에 직면하면서도 남성 중심 사회에서 소외되는 여성과 아동을 지키기 위해 끝까지 고군분투했습니다. 그녀는 실제로 “다음 처형할 사람은 시린 에바디”이라는 살해 계획 문서를 보고도 끝까지 인권을 위해 외로이 싸운 사람이었습니다. 잔인한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한 여성이 어떻게 평화를 지켜왔는지 이 책에서는 생생히 전합니다. 이란의 행동하는 양심으로 온몸을 다해 싸워온 그녀는 정부와 검찰이 국민들의 인권을 침해하고 있을 때 홀로 외롭고 용감한 싸움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녀의 삶을 통해 우리는 평화와 인권의 가치를 되새기며 그 소중함에 머리가 절로 숙여지고 있고 얼른 미얀마도 싸우는 민중들이 승리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P 193 : 당시 그러한 죽음의 공포 속에서도 가장 무서웠던 점은 희생자를 선택하는 기준이 불분명하다는 것이었다. 이는 분명히 정부의 책략이었다. 테헤란의 지식인과 작가들을 모두 공포 속으로 몰아넣어 그 누구도 감히 비판의 목소리를 내지 못하도록 만들기 위해서 말이다.
이 책의 원제를 직역하면 <깨어나는 이란 : 혁명의 기억과 이란>이지만 한국어판 출간 제목은 히잡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히잡은 무슬림 여성을 상징하는 의복이기도 하지만 그 자체만으로도 여성 인권에 대한 논란과 고민을 담고 있기 때문인 거 같습니다.
2009년 8월 만해대상(평화부문)을 수상하기 위해 한국에 온 적이 있는 그녀는 이미 5년 이상 딸들이 살고 있는 영국과 미국을 떠돌며 망명 아닌 망명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2017년 여름, 국경 없는 기자회 간부들과 함께 또다시 한국을 찾은 시린 에바디는 “나의 조국 이란에 자유와 민주주의가 어서 찾아오길 바란다. 나처럼 기약 없는 망명생활을 하는 이란인들을 기억해 주기 바란다”라고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그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고 오히려 더 악화되어 가는 현실이 씁쓸하기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