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 감상문

프리모 레비의 말

by 무무

프리모 레비의 말 [마음산책]


참 읽기 힘든 작가의 책들이 있습니다. 문장이 어렵거나 해석하는 데 있어서 부자연스러운 거는 이해하지만 작가의 고통이 그대로 캐릭터들이나 과거를 들으면 왠지 아픔이 전달이 되는 거 같아 읽기 힘들었습니다. 여러 작가 중 한 명은 프리모 레비입니다.


그는 나치의 유대인 학살장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화학자이면서 작가입니다. 그는 1944년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수감돼 11개월을 보냈고 이후 우리들이 잘 알고 있는 <이것이 인간인가>, <주기율표> 등과 같은 고통스러운 경험을 바탕으로 한 작품을 썼습니다. 극도로 내성적인 성격이어서 글쓰기만이 수용소의 참상을 증언하면서 트라우마를 치유하는 과정이었습니다. 세계적인 작가가 되고 시간이 흐르면서 다른 사람이 보면 그의 상처는 치유되는 듯했지만 어떤 노력과 시간도 끔찍한 기억을 지워주지 못했습니다. 결국 평생을 시달리다 수용소에서 나온 지 40여 년이 지난 1987년 4월 11일 스스로 극단적인 선택을 했습니다.


이 책은 그가 세상을 떠나기 전 자신의 자서전을 준비하면서 자료로 남긴 인터뷰 모음집입니다. 레비는 10여 년간 우정을 나눈 문학교수이자 평론가인 조반니 테시오와 자서전을 쓰기로 했고 두 사람은 그 책을 서로 <승인된 자서전>이라 부르며 일을 진행했습니다. 레비는 1987년 1월부터 테시오를 만나 소형 녹음기를 사이에 놓고 자신의 삶을 이야기하기 시작했지만 안타깝게도 세 번으로 끝났고 세상을 떠나기 며칠 뒤에 만남이 예정되어 있었지만 영원히 그 약속은 지켜지지는 못했습니다. 결국 이 책은 두 사람의 대화를 담은 마지막 인터뷰이자 완성하지 못한 자서전이 되어버렸습니다. 자서전을 위한 인터뷰였던 만큼 이 책에는 레비의 가족과 학창 시절 등 평범한 일상과 추억을 떠올리는 그의 인간적 면모가 드러납니다. 잘 몰랐던 행복한 시간이 있었음에 안도를 했지만 그저 수용소에 끌려가지 전까지의 이야기였고 이후 우리가 그의 책이나 티브이 인터뷰들을 통해 알려진 상상하기도 어려운 끔찍한 경험을 한 후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짙은 어둠이 드리운 거 같았습니다.


안타까웠던 사연은 아우슈비츠로 이송되기 전 레비는 포소리 수용소에 임시로 수용되는데 포솔리는 그의 동료이자 연인이었던 반다 마에스트로가 생을 마감한 곳이기도 한 곳이어서 레비는 "포솔리에서 탈출을 시도하지 않았던 점을 제가 저지른 수많은 잘못 중의 하나로 기록해야 할 것"이라고 후회를 합니다.


P 10 : 레비는 절도와 분별력이 있고 겸손했으며 아주 친절했다. 나는 레비의 책에서 볼 수 있는 정확한 표현뿐만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 대한 그의 꼼꼼한 지식과 선명한 기억에 매료되었다. 또한 환대의 태도와 정확하고 간결하지만 적잖은 우울이 스며든 언어로 의사소통할 수 있는 분명하면서도 특별한 능력도 매력적이었다. 획일화된 틀을 피하고 풍요롭고 화려하지만 절제된 언어, 우아하게 표현된 말, 사물을 글쓰기의 토대로 삼는 능력 말이다.


여행을 하다 보면 작가들의 고향을 가게 됩니다. 존경하는 작가에게 경의를 표하기 위해 사전에 조사해서 시간만 허락이 된다면 들립니다. 고향인 이탈리아 토리노에 가면 그의 무덤이 있습니다. 그곳에서 장미꽃 하나를 놓으며 왜 그렇게 세상을 떠났는지 묻고 싶었습니다. 잘 버텨왔다고 생각한 게 실수였나 되짚어 봤습니다.


그가 세상을 떠나기 11년 전 비슷하게 수용소를 체험한 유대인 작가 장 아메리가 자살하자 레비는 “인생에서 목적을 가지는 것은 죽음에 대한 최선의 방어다. 그리고 그것은 수용소에서 만의 일이 아니다.”라고 쓴 일이 있습니다. 수용소에서의 최우선적 목적은 물론 인간적 존엄을 잃지 않고 살아남는 것이었고 이후 인생 최대의 목적은 레비의 경우 증언을 통한 인간성의 재건이었습니다. 아메리의 자살에 유감을 표하며 살아남은 자의 의무를 강조했던 레비가 그렇게 세상을 떠나 더 의문들이 있었습니다.


지금 우리 세대들은 독일인은 참으로 반성하는 자들이라고 생각하지만 30여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무지라는 방패 뒤에 숨어서 나치의 만행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려 하는 모습을 심심찮게 볼 수 있었습니다. 심지어 “가스실은 없었다” 고 아우슈비츠 부정론 내지는 수정주의 역사관이 있던 그 시절에 아마도 레비의 가슴에는 못을 박는 기분이었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