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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무 Aug 30. 2023

이것은 물이다

by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

누군가에게 어떠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이해시키고 교훈적인 이야기를 전달하는 것은 굉장히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저 자신도 스스로 이해하지 못하는데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만한 무엇인가를 이야기한다는 거 자체도 못하겠고, 누구보다도 그런 이야기를 듣는 것도 별로 좋아하지도 않는 성향이지만 누군가의 연설이나 토론을 보면 고개를 끄덕이고 되새기고 싶은 말이나 글들이 눈에 뜨일 때는 있습니다.


아마 제 인생에 제일 첫 번째로 감명을 받은 이야기는 찰리 채플린의 <위대한 독재자>였습니다. 비록 연기이기는 하나 감독부터 주연까지 혼자 했었던 그의 행보를 봤을 때 마지막 장면은 저는 최고의 연설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누군가에게 가르치려고 하지 않았던 코난 오브라이언의 다츠머스 대학교 연설문도 재밌었고 정치적 노선을 떠나 노무현 대통령의 독도 연설문은 저에게 뜨거운 감정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습니다.


이 책은 우리나라에서는 이제 겨우 사람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한 데이비스 포스터 월리스의 2005년 캐니언 대학교의 연설문입니다. 책은 140쪽 분량이지만 사실 조그마한 책과 자간이 커서 삼십분이면 읽을만한 분량 정도입니다. 이 짧은 글에서도 저는 큰 울림을 받았습니다. 어린 물고기가 던지는 “도대체 물이란 게 뭐야?”라는 질문으로 시작하는 이 책은 크게는 생각하는 법을 배운다는 의미가 무엇인지로 뻗어 나가 아직 순수한 청년들에게 자신이 깊이 성찰한 인생의 교훈을 온 마음을 다해 전합니다. 아직은 세상 밖을 온전하게 경험해 보지 못한 어린 물고기들이기에 애당초 그것에 대하여 진지하게 생각하는 일이란 쉽지 않을 거라는 노파심에 사실 물은 그들에게 더없이 당연한 세상이어서 구태여 따져볼 일이 없었을 거라고 이야기합니다. 나이 든 물고기는 알려 주고 싶은 물, 그들이 마주할 앞날에 대하여 큰 세상에 대하여 말합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물속에 살고 있으면서 정작 물이 무엇인지를 모르는 물고기는 저랑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실(물)이라는 것은 그 대부분이 엇비슷한 일상과 그것의 권태로운 반복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것이 너무 익숙하고 진부한 것이기 때문에 오히려 생각이라는 것을 하기가 가장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실제로 그것에 대해 거의 생각하지 않지만 일상과 그 반복이야말로 우리 인생에서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면 그것들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사느냐 하는 것은 정말 중요한 일이 아닐지 질문을 던지는 듯했습니다.


월리스에 따르면 그것은 곧 어떻게 생각하는지와 무엇을 생각하는가에 대해 선택하는 방법을 배운다는 것입니다. 생각하는 방법은 곧 선택하는 방법이라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습니다. 어떤 현실과 맞닥뜨렸을 때 이를 다르게 생각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 다른 생각을 의식적으로 선택하며 살아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우리는 늘 같은 방식으로만 생각하게 되고 그것은 사실상 생각을 하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P : 진정한 교육의 진가에 관해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이 내 뜻입니다. 성적이라든가 학위와는 아무 상관도 없습니다. 다만 깨어 있는 의식에 관한 것입니다 ― 너무나 당연한 현실이고 근본적인, 우리 주위 환히 보이는 곳에 있지만 그래서 오히려 잘 보이지 않는 숨어 있는 현실, 매일 끊임없이 그 존재를 스스로 깨우쳐주지 않으면 발견하지 못하는 그런 현실, 그런 현실을 알고 살아가는 각성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것이 물입니다.”



천재들은 왜 그렇게 단명을 하는 것일까요?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도 46세에 나이에 스스로 안타까운 선택을 한 천재였습니다. 장르에 얽매이지 않고 여러 글들을 썼고 철학이 취미였습니다. 토머스 핀천의 후예로 불리며 미국 현대문학의 새로운 장을 열 것으로 기대를 한 몸에 받았습니다. 하지만 10대 때부터 불안장애와 우울증을 앓았고 각종 중독과 공포증에 시달렸으며 복용하던 우울증 약이 더 이상 소용이 없게 되어 세상을 일찍 떠났습니다. 우리나라에 하나씩 그의 에세이들이 출간되고 있어서 반갑지만 더 이상 그의 아름다운 글을 볼 수 없다는 게 마음이 아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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