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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무 Jan 28. 2022

스토너

존 윌리엄스

책을 다 읽은 뒤에도 머릿속에 계속 남는 경우가 있습니다. 저 같은 경우에는 이 책이 그러했는데, 참으로 스토너 곁을 떠나기 힘들었습니다. 자기 일을 오랜 시간 해왔을 뿐인데 어느새 폭삭 늙어버린 자신의 모습을 거울로 통해 바라보는 삶이 소중하다는 걸 책을 덮은 후에 알아버렸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은 비범을 간직한 채 평범하게 사는 일이 아닐까라는 생각마저 들었던 이 책에서 끊임없는 자기 수양과 다독임, 그리고 생을 향한 긍정 없이는 어려울 거라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이 책은 주인공 윌리엄 스토너의 일대기입니다. 1891년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미주리 주의 대학에 입학하고 학자와 교수로서 연구에 매진하고 결혼해 아이를 낳고 1956년 죽음을 맞이하기까지의 이야기가 시간 순으로 펼쳐집니다. 대단히 특별한 사건 같은 거는 없습니다. 일상적인 날들 속에서 크고 작은 문제를 맞이하며 나아가는 인물을 보여주는데 한 길만을 걸어온 자의 생이 늘 그렇듯이 매일은 무료해 보이기까지 합니다. 돌아보면 한 방향으로 난 시간의 궤적이 제법 굵직하게 새겨져 있음을 보여주는 삶이었기에 작가는 “나는 그가 진짜 영웅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은 스토너를 슬프고 불행하다고 말하지만 내가 보기에 그의 삶은 아주 훌륭한 것이었습니다.”라고 말을 합니다. 스토너의 인생에 모험이나 혁명은 없습니다. 전쟁에 나가는 대신 대학에 남아 학자의 길을 걸었고 세상을 뒤집을만한 책을 쓰는 대신 평범한 논문형식의 책을 성실히 집필했습니다.


스토너를 보며 문제가 있을 때 자기 의견을 피력하거나 해결 방안을 모색하는 일만이 최선은 아니라고 다른 식으로 사는 자도 있는 법이라고 말을 하는 듯했습니다. 고통을 수렴하는 몸처럼 스토너는 견디고 기다립니다. 훗날 진정한 사랑을 만나지만 위험을 감수하며 그 사랑을 유지하는 대신 사랑을 놓고 한순간에 노인처럼 늙어버립니다. 그는 가질 수 있는 것을 무리해서 갖지 않았고 피할 수 있는 고난을 애써 피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묵묵히 자기 길을 갔습니다. 그렇다고 스토너의 인생이 무력하거나 하찮았다고 할 순 없습니다. 그는 삶이 주는 고통, 기다림, 인내, 사랑, 역경, 일, 열정, 후회, 두려움, 희망, 기쁨, 슬픔 등을 성실히 겪은 뒤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자기에게 주어지는 거라면 무엇이든 기탄없이 받아들였습니다.


스토너는 참을성이 많으며 진중한 사람이었습니다. 상황을 탓하지 않고 주어진 임무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었고 게으름과 무지를 싫어하며 고지식할 정도로 묵묵히 학문에 정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평범함의 지극함을 실천해 거의 성자처럼 보이는 생을 사는 사람이었고 자기 미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권력자를 향해 “자네가 내게 줄 수 있는 것이나 내게 할 수 있는 행동에 대해 조금도 신경을 써 본 적” 없노라고 말하고는 돌아서 나가는 평범한 듯 평범하지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생각해보면 애초에 우리들에게 평범이나 특별함 따위는 없을 겁니다. 평범도 특별도 바라보는 외부자의 판단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스토너는 스토너였고 자기 자신으로 살다 간 사람이었습니다.


P : 자신의 침묵이 설명보다 덜 구차하기를 바랐다.


P : 그는 또한 가르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실제로도 그렇게 되었지만, 거의 평생 동안 무심한 교사였음을 그 자신도 알고 있었다. 언제나 알고 있었다. 그는 온전한 순수성, 성실성을 꿈꿨다. 하지만 타협하는 방법을 찾아냈으며, 몰려드는 시시한 일들에 정신을 빼앗겼다. 그는 지혜를 생각했지만, 오랜 세월의 끝에서 발견한 것은 무지였다. 그리고 또 뭐가 있더라? 그는 생각했다. 또 뭐가 있지?

넌 무엇을 기대했나? 그는 자신에게 물었다.



몇년 전, 브레이브걸스가 역대급 역주행을 하는 중입니다. 좋은 노래와 좋은 가수가 인정받는 모습을 보니 반가웠고 기뻤습니다. 사실 진정한 역주행은 이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1965년에 나온 이 책은 당시 초판을 채 팔지도 못하고 출간한 지 얼마 안 되어서 절판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40여 년이 지난 어느 날 뉴욕의 유명 서점인 크로포드 도일의 서점 주인은 편집자에게 이 책을 소개합니다. 편집자는 놀래서 재출간을 하게 되었고 전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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