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 감상문

새벽의 약속

by 무무

새벽의 약속 - 로맹 가리 [문학과 지성사]


요즘 고등학교 학생들을 보면 입시에 어머니의 정보력이 본인의 노력만큼 중요하다고 할 정도로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이야기를 수험생을 둔 직장 동료들에게 심심찮게 듣고 있습니다. 로맹 가리의 어머니는 <스카이 캐슬>의 어머니들이 울고 갈 만큼 극성스러운 여인이 있었습니다.


이 책은 로맹 가리가 1960년에 발표한 책입니다. 어머니인 니나 카체프와 자신의 성장기에 대해 상세히 서술한 자전소설입니다. 태생이 그렇듯 이 책을 구성하는 진실과 허구의 비율을 정확히 재단할 수는 없지만 분명한 것은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마흔네 살의 로맹 가리가 기억하고 있으며 계속 기억하기를 원하는 어머니에 대한 단상들과 우리들에게 전달하고 싶은 어머니의 모습이 뒤섞인 채 담겨 있습니다.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던 한 1914년에 모스크바에서 태어난 로맹 가리는 어머니와 함께 폴란드를 거쳐 프랑스로 이주합니다. 연극배우였던 니나는 로맹이 태어나면서부터 돈이 되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하며 혼자 로맹을 양육했고 그런 어머니에게 전적으로 의지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니나 이외에 로맹 가리와 함께했던 것은 유대인으로서의 차별과 가난한 자로서의 궁핍함, 이민자로서의 고독이었기 때문입니다. 특히 러시아 출신의 유대인으로서 이들의 정체성은 책에 나오는 것보다 훨씬 혹독하게 이들을 옭아맸을 것으로 예상되고 니나가 프랑스에 대한 맹목적인 애국심을 보이고 프랑스를 최종 정착지로 상정한 것도 1890년대 드레퓌스 사건 이후 유대인의 입지가 좋아졌다는 판단이 들어서 였습니다. 불편한 환경과 시선 속에서도 니나는 로맹이 어렸을 때부터 아들 본인에게는 물론, 주변의 모든 사람에게 프랑스 대사가 될 것이고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받을 것이고 위대한 작가가 될 것이라고 큰소리쳅니다. 특히 폴란드 윌노에서 니나가 불친절한 입주자들을 모두 층계참으로 불러내 아들에 대해 선언했던 일은 로맹 가리의 일생에 있어 가장 고통스러운 순간으로 기억된다고 후에 이야기합니다. “감히 너희가 누구와 이야기하고 있는 줄이나 아는 게야? 내 아들은 프랑스 대사가 될 사람이야!”라고 외치는 니나에게 사람들은 폭소하며 조롱과 멸시를 보냅니다. 이 날의 경험은 로맹의 정서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게 되는데 놀랍게도 이후 점차 조소에 전혀 개의치 않는 법을 배우게 됐다고 회상합니다. 게다가 그는 실제로 미국 주재 프랑스 총영사가 됐고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받았으며 세계적인 작가가 되었습니다.


로맹 가리가 작가가 되기로 결심한 데에는 니나의 역할이 컸습니다. 없는 살림에도 니나는 로맹의 손에 바이올린을 들려줬으며 발레를 가르치면서 어느 분야에 재능을 발휘할 것인지 유심히 지켜봤습니다. 사실 그는 그림을 좋아했고 곧잘 그리기도 했지만 그 꿈만은 화가에 편견을 갖고 있었던 어머니에 의해 죄절 되었습니다. 만약 니나가 고흐가 평생 가난에 시달리다가 서른일곱에 자살했다는 사실을 몰랐다면 로맹 가리는 화가로 이름을 떨쳤을지도 모를 거라고 생각이 듭니다. 그렇게 어머니가 좋아하는 생전에 부와 명예를 얻었던 빅토르 위고의 뒤를 따르게 되는 로맹 가리는 말하자면 <새벽의 약속> 은 어머니와의 약속을 하나씩 이행해가는 과정을 기록한 책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그것은 니나 사후까지도 계속되는데 그만큼 이 책은 기본적으로 사모곡의 성격이 강합니다. 그는 자신이 어머니에 대한 사랑을 확인하려는 듯 얼마나 절절한지를 강조합니다. 그것은 에릭 바르비에가 연출한 동명 영화의 회상 신 첫 부분에서 “그런 큰 사랑은 누구도 줄 수 없으리. 어머니라 해도”라고 표현한 것처럼 니나의 거대한 모성과 직결됩니다. 그 희생과 은혜에 보답하는 길은 곧 자신을 향한 어머니의 목표에 도달하는 것으로 여기고 그 약속을 향해 살아왔던 것일 겁니다.


P 283 : 어머니의 용기 안에 있는 어떤 것이 내게로 옮겨와, 내 안에 영원히 남았다. 지금도 어머니의 용기가 내 안에 깃들어 살며, 절망하는 것을 막음으로써 내 인생을 힘들게 하고 있는 것이다.


<자기 앞의 생>에서 로자 부인을 바라보는 모모의 시선은 니나를 바라보는 로맹의 시선과 많이 닮아 있기도 하고 생명에 대한 맹목적인 애정은 역시 어머니에게 배운 미덕입니다. 이 책을 발표한 지 약 20년 후 그는 스스로 생을 마감합니다. 어쩌면 어머니와의 약속을 이행하는 것을 목표로 살았던 그는 개인적으로 별로 행복하지 않았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