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담
농담 - 밀란 쿤데라 [민음사]
정말 이 책의 제목처럼 쿤데라의 첫 소설이 이 작품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경악을 금치 못했습니다. 저에게 있어서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보다 훨씬 더 극적이라 생각을 했는데 그 이유는 마치 무대에서 펼쳐지는 연극을 보는 거 같은 인상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어떤 인물이 독백 혹은 방백을 하며 생각을 하고 주요 인물 간의 만남과 얽힘이 너무나 자연스러웠고 제일 중요했던 거는 펼쳐지는 공간이 한정되어 있다는 점에서 무대를 보는 듯했습니다.
책의 시간적 배경은 체코가 독일로부터 독립하고 사회주의 및 공산주의가 시대 이념이 되었을 때입니다.
그래서 현재 읽기에는 마치 과거에 쓰이고 지금 현재에는 잘 쓰이지 않는 낯선 단어들이 많이 등장합니다. 역사의 수레바퀴, 세계 동포 주의, 프롤레타리아 독재, 마르크스-레닌주의, 공산당, 트로츠키주의,
자아비판, 혁명, 정치범 등등 우리들에게는 잊힌 개념들이 나오는데 이런 용어들은 생소하게까지 느껴졌습니다.
이 책은 한 번의 농담으로 인생이 억울해진 남자 루드빅의 이야기입니다. 루드빅이 무심코 끄적거렸던 농담한 줄이 그를 수용소와 탄광으로 몰아내며 전혀 상상하지 못한 삶을 살도록 강요받습니다. 농담이라고 호소해 보지만 세상은 이미 그를 농담에 근거해 접수해 버린 지 오래 돼버렸습니다. 농담의 결과는 외부적 환경만 바꾸는 데에 그치지 않고 그의 정신에도 상당한 영향을 끼칩니다. 전에 없던 복수심과 억울함의 렌즈를 끼고 세상을 바라보기 시작합니다.
여기서 놀라웠던 것은 한 시대를 풍미했던 시대정신이 지나고 나면 모두가 변한다는 사실입니다. 심지어 상황도 달라지고 농담이 다시 농담으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는 세상이 돌아오기도 합니다. 하지만 루드빅은 아직도 과거에 매여 복수심을 버리지 못하고 자신을 옭아맨 상태로 지냅니다. 제때 행하지 못하고 미뤄진 복수는 환상으로 자신만의 종교와 신화로 바뀌어 버리게 되고 그것은 점점 더 복수의 처음 원인으로부터 동떨어지게 됩니다. 세월이 흐를수록 다시 되살릴 수도 다시 복구할 수도 없이 영원히 복수의 기회는 사라져 버립니다.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삶의 수레바퀴에 우리의 인생이 실려 있는지 쿤데라는 그것을 역사가 개인에 저지른 실수라고 말을 합니다. 역사는 원래 의지했던 가치들을 유린당한 삶으로 인도하고 루드빅의 삶을 장난처럼 농담으로 만들어 버리며 복수와 증오심으로 지옥 같은 삶을 살게 합니다. 역사의 수레바퀴였을 뿐이라고 말하는 쿤데라는 우리는 역사에 매혹되어 역사라는 말 위에 올라탔고 엉덩이 밑에서 움직이는 말의 몸을 느꼈고 그것에 취했는데 대부분의 경우 추악한 권력의 탐욕으로 변해갔습니다.
P : 거기에서는 슬픔이 가볍지 않고, 웃음이 비웃음이 아니고, 사랑이 우습지 않으며, 증오심이 맥없지 않고, 사람들은 온몸과 마음으로 사랑하며, 행복은 사람들을 춤추게 만들고, 절망은 다뉴브 강으로 뛰어들게 만들며, 그곳에서는 그러니까 사랑이 사랑으로, 고통이 고통으로 머물고 있었고, 아직 가치들이 유린되지 않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 노래들 속에 나의 출구가 있고, 나의 본원의 표지가, 내가 배반한 나의 집, 그러나 그렇기에 더욱 나의 집인 집이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나는 동시에 깨달았다. 이 나의 집은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며, 우리가 노래하는 것들은 모두가 단지 추억이고 기념물이며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것을 상상으로 보존하는 것일 뿐이라는 것을.
마치 최인훈 작가님의 <광장>을 읽는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우리도 그렇게 이념이 중요했던 시기가 있었고 이념으로 사람 목숨을 살리고 죽였던 시대도 있었고 모든 것이 낙관주의로 무장했던 세대도 있었습니다. 개인주의 잔재를 제거하고 전체성에 몰두했던 집단에 광적으로 집착했던 시절이 있었는데 쓰고 있는데 왜 아직 지금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듯한 착각도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