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 감상문

어둠 속의 항해

by 무무

어둠 속의 항해 - 진 리스 [창비]


잘 모르는 작가의 책을 읽는 거를 좋아합니다. 그 책이 분명 작가의 이야기가 아닐 거라는 것을 알면서도 저는 혼란에 빠져 작가의 인생은 어땠을지 제 마음대로 짐작을 합니다. 그래서 가끔 만나는 황량한 글들을 읽을 때면 가슴이 아려옵니다. 과연 이런 걸 쓰는 작가들의 마음속에도 고통과 고독과 상실이 가득할 거라는 생각에 감정이 이입되어 버립니다. 현재 아무리 AI가 김현식 님과 김광석 님과 거북이를 소환했어도 아직까지 글이라는 문학이나 책은 사람의 전유물이라고 생각이 들어서입니다.


진 리스는 이 작품을 자신의 작품들 중 최고의 작품으로 꼽습니다. 확실히 이 책은 작가의 자전적인 이야기가 들어서 고통이나 상실이라는 추상적인 개념이 전혀 뜬구름 잡는 것처럼 느껴지지 않고 가까이에서 만져질 듯한 감정들로 다가왔습니다. 젊고 불안한 어린 여자의 심리가 남자인 저에게도 그대로 다가왔고 책을 읽고 난 후 이 아이는 과연 잘 살고 있을까 하고 궁금해지는 책이었습니다.


서인도 제도에서 출생해 열여섯 살에 영국으로 온 진 리스는 외증조모에서 내려온 피부색과(크리올) 낯선 영어 발음으로 매우 어려운 젊은 시절을 보냈습니다. 책의 앞날개에 적혀 있는 바에 따르면 영국에 도착한 이후 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했고 왕립 연극학교에서도 언어 문제로 중도에 그만둘 수밖에 없었고 이후 코러스 걸, 마네킹, 누드모델 등의 일을 전전하다가, 부유한 연상의 연인에게 경제적으로 의존해야만 했고 10대 후반에 낙태수술을 경험합니다. 몸은 영국에 있지만 정처 없이 역마살이 낀 인생이었고 그 후 20여 년이 흘러진 리스는 이 책을 출간합니다. 당시 자신이 겪었던 혼란과 소외와 고독과 절망과 가난과 헛된 사랑과 실연과, 무엇보다 낙태의 경험을 오롯이 참으로 담담하게 이야기합니다. 주인공 애나의 입에서는 단 한 번도 고통스럽다 라는 이야기가 나오지 않는데 읽으면 때론 절박하면서도 아무렇게나 무책임하게 행동하고 발언하는 속에서 그녀의 감정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런던 속의 이방인이 절절하게 빠져있는 혼돈과 절망을 보며 가슴 저린 이야기를 볼 수 있습니다.


P 첫 문장 : 막이 내려와 그때까지 내가 알던 모든 걸 덮어버린 듯했다.


P 111 : 사람들은 ‘젊은’이라는 말을 하며 마치 젊다는 게 무슨 범죄라도 되는 양 굴지만, 정작 늙어가는 것은 항상 그리도 무서워한다. 나는 생각했다. ‘내가 늙어서 이 모든 망할 일이 다 끝났으면 좋겠어. 그럼 도무지 아무것도 아닌 일로 이렇게 침울한 기분에 빠져 있진 않을 텐데.’


많은 분들이 이 책을 페미니즘 문학의 대표 도서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런 생각을 가지고 읽다 보면 계속 고개를 갸우뚱하게 되었습니다. 애나의 삶이 아무리 기구하다지만 이런 의구심을 가지고 읽다 보면 때로는 소개 문구가 책을 편하게 읽는 데에 있어 방해하게 될 것입니다. 책을 덮고 생각해보면 페미니즘이라는 말에 너무 호도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애나는 여권주의를 위한 활동적인 삶을 피력하고 의지를 가지고 살아가는 여성으로 나타나지는 않습니다. 애나는 어쩔 수 없는 상황에 처한 여성의 현실을 잘 보여주고 있지만 제가 생각하는 이 책은 그 시대 식민지 출신 여성의 삶이 곧 시대의 여성의 삶의 역사로서 기록되었다고 생각합니다. 페미니즘이라는 작은 테두리 안에 놔둘 수 없는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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