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랜도
올랜도 - 버지니아 울프 [솔]
이 책이 알려지기로 퀴어 문학, 여성문학, 페미니즘 문학이라는 이유로 피드에 올리기 망설였습니다. 그런 말을 좋아하지 않는 저는 그저 읽고 받아들였던 부분만을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버지니아 울프는 40세가 되던 해에 비타 색빌 웨스트를 만났습니다. 얼마 후 둘은 연인이 됐으며 두 사람은 열정적으로 사랑했고 서로에게서 예술적 영감을 선사했습니다. 이들의 만남은 두 작가의 예술 세계를 꽃피우는 계기가 됐고 둘의 사랑이 끝나갈 무렵, 울프는 이 책을 통해 비타를 불멸의 존재로 완성시킵니다.
이 책은 16세기부터 20세기 초까지 400년 가까이 젊음을 유지하고 살면서 남성에서 여성으로 성전환하는 영국 귀족 올랜도의 전기입니다. 가장 매혹적인 부분은 아무래도 소설의 중반, 올랜도가 꼬박 일주일을 죽은 듯이 자고 일어나 남성에서 여성으로 변화한 스스로의 모습을 확인하는 장면이었습니다. 제가 주목한 부분은 올랜도 본인과 그를 오랫동안 따르고 사랑했던 개와 사슴은 그를 똑같은 사람으로 받아들인다는 점입니다. 반면 그를 잘 몰랐던 사람들과 그의 성전환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사람들은 예상대로 편견을 가지고 바라봅니다. 그가 처음부터 여자였을 것이라고 주장하거나 지금 이 순간에도 여전히 남자라는 것을 증명하려고 애씁니다. 사람들은 때로 익숙한 세계에 안주하기 위해 타인의 존재를 지워버리는 폭력을 서슴없이 발휘합니다.
남성으로 살 때에는 단 한 번도 자신의 성별을 예민하게 인식할 필요가 없었던 올랜도는 여성이 된 이후로 매 순간 자신의 성별을 인식하게 됩니다. 코르셋을 조여야만 껴입을 수 있는 불편한 옷과 여성으로서 수행해야 하는 수많은 법도들과 자신을 향한 차별적 말과 행동이 그러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국가는 그로부터 재산을 회수하려 하고 성별이 바뀌었기 때문에 아예 그를 죽은 사람 취급마저 합니다. 백 번 양보해 설사 동일성을 인정한다 하더라도 18세기 영국은 여성의 재산권을 인정하지 않았으므로, 그가 남자와 결혼해서 아들을 낳지 않는 이상 재산을 유지할 수 없다고 강제합니다.
이처럼 울프는 올랜도의 성전환이 바꿔놓은 미래를 그리면서 울프의 말처럼 같은 사람을 성기에 따라 남성과 여성으로 구분한 뒤 차별하는 가부장제 사회의 정상성의 규범에 질문을 던집니다. 그 속에서 여성을 제2의 성으로 만드는 문화적이고 제도적인 조건들을 탐색합니다. 100년 전 쓰인 이 책은 금 우리에게 여전히 생명력을 가지는 이유는 성에 관한 관습적인 사고방식이 여전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P 첫 문장 : 그는 ― 당대의 복장으로 남녀를 구별하는 것이 좀 모호하기는 했지만, 그가 남성이라는 것은 어김없는 사실이었으므로 ― 서까래에 매달려 흔들거리고 있는 한 무어인의 머리를 겨냥해 검을 내리치고 있었다.
P 205 : 그녀는 바지의 시계 주머니에서 시계를 꺼냈다 -물론 한낮 정오의 빛이었다. 이처럼 산문적이고, 이처럼 평범하고, 이처럼 해가 뜨고 지는 것에 무덤덤하면서, 저것처럼 영원히 존속하도록 만들어진 것은 없을 것 같았다.
이 책을 꺼내며 이야기를 던지는 게 조심스러웠습니다. 하지만 꺼낼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많은 제약에 묶여있던 여성들의 삶을 생각해봐야 했습니다. 왜냐하면 여성들만의 문제가 아닌 우리 모두의 문제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다행인 건 이전에는 직업적인 면에서의 불균형만을 이야기를 했다면 요즘은 특히 젊은 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일상에서 느끼는 거북함과 불편함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계속 이야기하고 그 불편함을 해소해 나간다면 자연스럽게 없어질 문제도 많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언어는 의식의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저조차도 낯부끄러워질 때가 있습니다. 무의식적으로 이야기했었고 그런 생각들이 드니 나도 차별의 주체일 수도 있겠다 싶었습니다. 지금은 저의 행동이나 말을 수정하려고 노력하는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