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도를 기다리며
고도를 기다리며 - 사무엘 베케트 [민음사]
제 지인 중에는 사람을 너무 좋아하지만 관계 속에서 여전히 상처를 주고받는 것이 힘들 때가 있다고 하시는 분이 있습니다. 저는 그럴 때마다 사람들은 다 생각하는 게 다르고 그러니 너무 많은 기대를 하지 말라고 조언 아닌 조언을 하지만 그분은 그럼에도 사람을 포기할 수는 없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그리고 어린아이처럼 막연히 언젠가는 서로 온전히 마음을 터놓고 지낼 사람을 꼭 만날 수 있을 거라 확신도 가지고 있는 듯했습니다. 언제 올지도 모르는 심지어 누군지도 모르는 이 책의 나오는 인물 고도를 기다리는 연극의 주인공처럼 기다립니다.
이 책을 알게 된 건 오래되었지만 읽은 거는 30살이 다 되서였습니다. 연극을 읽는다는 게 사실 저에게는 낯설어서 미뤄왔는데 우연히 뉴욕에 있을 때 한 서점에서 폴 오스터와 에드워드 알비의 베케트의 관한 강연을 듣고 읽게 되었습니다. 처음 읽기 시작했을 때는 당최 이게 뭔가 싶을 정도로 아리송했습니다. 배경 설명도 딱 한 줄, “시골길, 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가 전부였고 등장인물도 주인공 두 사람과 가끔 등장하는 포조와 러키, 그리고 소년 이렇게 다섯 명이 전부였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무슨 사건이 일어나지도 않고 대화에 맥락도 없이 그저 고도라는 사람을 기다리는 하루하루가 반복될 뿐이었습니다. 숨은 고도가 무엇일까 짧음 책이었기에 두 번을 더 봤고 해답을 찾지 못해 당시 인터뷰나 작가의 이야기들을 찾아보았습니다. 미국에서 처음 초연되었을 때 관객들과 언론들은 그 해답을 찾으려고 열을 올렸습니다. ‘참혹한 2차 대전을 겪으며, 전쟁이 없는 세계를 기다렸을까?’ ‘이 비참하고 부조리한 세계를 뒤로한 채 죽음을 기다렸던 것일까?’ 등등 많은 이야기들이 오갔었습니다. 언론에서 결국 베케트에게 고도가 누구냐는 질문에 베케트는 "내가 그걸 알았더라면 작품 속에 썼을 것"이라고 답을 하였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든 각자의 고도를 기다리는 동안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곁에 있는 사람과 말하고 또 말하는 것이라고 이야기하는 듯했습니다. 설령 그것이 아무 의미 없는 잡담에 불과하다 하더라도, 끝내 내가 기다리던 고도가 오지 않는다 해도 크게 중요하지 않게 여겨졌습니다. “말은 동작을 유발하고 살아있음을 증명한다.” 는 베케트의 말처럼 말하고 글을 쓰는 동안 우리는 분명 이 세상에 존재하는 인간일 것입니다.
P 51 : 포조 : 이 세상의 눈물의 양엔 변함이 없지. 어디선가 누가 눈물을 흘리기 시작하면 한쪽에선 눈물을 거두는 사람이 있으니 말이오. 웃음도 마찬가지요.(웃는다) 그러니 우리 시대가 나쁘냐고는 말하지 맙시다. 우리 시대라도 해서 옛날보다 더 불행할 것도 없으니까 말이오.
P 152 : 나 역시 다른 사람들이 바라보고 있겠지. 그리고 말하겠지. 저 친구는 잠들어 있다. 아무것도 모른다. 자게 내버려 두자고.
사뮈엘 베케트의 사생활에 대해서는 그다지 알려진 것이 없습니다. 심지어 그는 1969년 노벨상을 수상했을 때에도 시상식에 나타나지 않았고, 그 후에도 일체의 인터뷰를 거절한 채 폐쇄적인 생활을 해왔습니다. 베케트는 말이 많은 사람은 아니었고 대신 평생 글쓰기와 언어에 골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