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 감상문

페소아와 페소아들

by 무무

페소아와 페소아들 - 페르난도 페소아 [워크룸 프레스]


대부분의 사람들이 부모님들이 지어주신, 본인들이 직접 선택하지 않은 이름으로 살아갑니다. 가끔씩 이름이 한 사람의 정체성을 결정하기도 한다고 생각이 들 때도 있는데 지난번 페소아의 이야기를 하며 70개가 넘는 이명을 사용했다고 한 적이 있습니다. <불안의 서>에서의 한 문장, “nomen set omen” 이 문장을 있는 그대로 보면 ‘이름은 하나의 징후다’라고 해석할 수도 있고 ‘이름이 모든 것을 말해준다’ 로도 해석이 가능합니다. 결국 이름은 우리가 우리에게 입히는 그림자라고 말한 어느 작가의 이야기가 어느 정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책은 페소아의 그 수많은 이명으로 써왔던 소설, 희곡, 평론, 편지, 일기 등 다양한 글들을 모은 것입니다. 잘 알려진 이명 외에도 토머스 크로스, 헨리 모어, 안토니우 모라, 바롱 드 테이브까지 잘 알려지지 않았던 이름으로 발표했던 글들이 있습니다. 몽테뉴를 닮았던 그는 자아라는 수수께끼를 받아쓰는데 누구보다 몰두하여 자신을 여러 가지 색깔로 입혀진 누더기라며 그 다른 모습들을 표현하기 위해 이름을 달리 하여야 했습니다. 자신 안에는 다른 방식으로 생각하는 여러 사람이 있다고 밝힌 페소아는 알렉산더 서치가 되어 애드가 앨런 포를 연상시키는 소설을 발표하기도 하였고, 과격한 충동주의자로 빙의해 활화산과 같은 시를 쓰기도 하였습니다. 때로는 짝사랑에 빠진 19살 소녀처럼, 때로는 다른 이명들에게 영향을 준 상상 속의 전원시인을 만들기도 했던 그는 자신 안에 모순되어 있는 충돌과 기질을 인정하며 여러 명의 나를 창조해냈습니다. 수십 개의 이명보다 놀러웠던 건 역시 문학적 인물로 그려낼 수 있었던 힘이 컸습니다. “가장 강인한 자보다 가장 복잡한 자가, 가장 자유로운 자가 아니라 가장 조화로운 자가 초인” 이라며 늘 말하고 다녔습니다. 평생 수십 개의 이명 사이를 오가며 살았지만 단 한 사람만을 사랑했던 사람이었고, 포르투갈 시인의 내면 여행을 즐기던 작가는 50이 채 되기도 전에 세상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그의 문장 중 영감을 많이 불러일으켰던 것 중 하나는 “내가 참 낯설다.”입니다. 많은 작가들에게 영감이 되는 문장이 되어 특히 얼마 전에 소개를 했던 <리스본행 야간열차>로도 이어지기도 했습니다. “우리가 우리 안에 있는 것들 가운데 아주 작은 부분만을 경험할 수 있다면, 나머지는 어떻게 되는 걸까?” 하는 문장에서 페소아의 앞선 말이 시작되었다고 작가가 밝힌 적이 있습니다. 나 자신도 알지 못하는 또 다른 나를 발견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게 만든 책이었습니다.


P 142 : 감각 주의자들은, 무엇보다도 먼저, 데카당들이다. 그들은 데카당주의와 상징주의 운동의 직속 후계자들이다. 그들은 '인류, 종교, 조국에의 절대적 무관심'을 주장하고 선언한다. 때로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이 반감을 확증하기에 이른다.


P 162 : 남는 것은 작은 감정들이다. 어느 시골 들판에 부는 조용한 산들바람이 내 영혼을 휘저을 수 있다. 멀리서 터져 나오는 동네 음악대의 연주가 내 안에서 온갖 교향악 연주보다 더 풍부한 반향을 일으킨다. 문가에 서 있는 늙은 여인이 나의 가슴을 정으로 녹인다. 내 앞에 서 있는 남루한 아이가 나를 깨우쳐준다. 참새가 전깃줄에 앉아 쉬는 것에 나는 기뻐한다. 그것이 진실 그 자체와 얽혀 있어 풀리지 않는 하나의 장면처럼.


페소아라는 성은 포르투갈에서도 흔치 않은 성입니다. 사람을 뜻하는 단어인데, 한 개인의 삶은 호명되는 이름의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믿었던 그였기에 그의 이름을 스스로 그렇게 선택했다고 생각이 듭니다. 이름이 영혼을 그대로 재현하고 발현하기를 원했던 페소아였기에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